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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0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30 - 새로운 시작

2023년 6월 11일 일요일


 브런치에는 글이 매일같이 올라오지만 저녁에 일기를 쓰는 건 오랜만이다. 나의 꾸준함은 3개월 정도밖에 안 되는 듯하다. 일기를 숙제처럼 미뤄놔서 어느 세월에 다시 제 날짜를 찾아갈지 모르겠다. 하루, 이틀 빠지다 보니 어느덧 몇 주치가 쌓였고 자그마한 눈덩이가 구르고 굴러 큰 눈덩이가 되어 버렸을 쯤에서야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무엇이 문제였던 건지 나의 집중을 분산시킬 만한 일들을 많이 벌여놓아서 그런지 에너지가 고갈되었던 상태였다. 막상 해보고 싶었던 걸 도전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문을 연다는 건 많은 힘이 필요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에서 두려움이 점점 커져가며 이유도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최종목표는 수익화를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있어도 나의 성격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없다. 가만히 손 놓고 앉아있는 것보다 무언가를 해야 마음이 편했다. 이러지 않기로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또 스스로를 괴롭히는 중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마치 관객 없는 무대에 홀로 서서 연극을 하고 있는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반응 없는 공간에서 묵묵히 하고만 있으니 들뜬 마음이 어느샌가 가라앉아버렸다.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나도 사람인지라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나를 열심히 알리거나 그런 노력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게 귀찮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또 막상 쉬자니 마음이 편하지 않은 그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오늘에서야 매너리즘에 빠졌던 내가 다시 기운을 차려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솔직히 매번 비슷한 상황이기도 하고 진전도 없어서 일기를 계속 써야 되는지 고민도 되었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쉽기도 하고 중간에 잠시 엉뚱한 길로 빠진다고 해도 끝까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10시 40분부터 재활이 있어서 어제보단 비교적 여유롭게 준비를 했다. 몸을 닦이고 기저귀를 가는 것쯤은 이제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든다. 몇 달을 하다 보니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침마다 스스로를 세뇌시킨다. 여기서 더 이상 힘든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것이라고 말이다. 인생을 버티면 버틸 일만 생기고, 인생을 즐기면 즐길 일만 생긴다는 마음가짐으로 거울을 보며 미소를 한번 짓고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넘어야 할 큰 산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콧줄을 빼는 것 말이다. 더 이상은 지체를 할 수 없다. 이번달 내로 진전이 없으면 다음에 뱃줄을 달기 위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씹고 삼키는 연습을 시키기 위해서 바나나 반 개를 먹였다. 동생 한입, 나 한입 하면서 사이좋게 갈라먹었다. 이렇게 마주 보며 먹는 모습을 보여야 승부욕이 생기는지 평소보다 더 열심히 먹는다.


 조금 더 자극을 주기 위해서 웨하스도 먹여 보았다. 부산 백병원에서는 연하 검사를 진행할 때 웨하스를 먹인다면서 다른 병실로 옮긴 아주머니께서 주고 가셨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웨하스를 동생 손에 쥐여줬더니 입으로 갖다 댔다. 하나를 통째로 다 넣으려고 하길래 조금씩 먹으라고 했더니 그제야 반입을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잘 씹고 삼키는지 확인을 해보니 입안에 남아있는 것 하나 없이 깨끗하게 씹고 삼킨다. 맛있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또 남은 반입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3-4개 정도를 먹은 것 같다. 더 먹을 거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길래 남은 건 내가 다 먹었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조만간 콧줄을 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재활 시간에는 콩주머니를 상자에 옮겨 담는 것을 했는데 그전보다 훨씬 집중도가 높았다. 내가 며칠씩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아진 것 같다. 이제는 오른손도 미세하지만 조금씩 힘을 주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콩주머니를 쥐어주면 잡았다가 팔을 상자 쪽으로 들어주고 놓으라고 하면 손가락에 힘을 풀었다. 아직까지 팔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손가락을 살짝 접는다거나 펴는 정도까지는 할 수 있다. 물론 완전하게 주먹을 쥐거나 다 펴는 것은 아니지만 오른손을 아예 못 썼다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마치 기적과도 같았다.


 요즘 들어서 동생과 함께 듣는 영상이 바로 끌어당김에 관한 것들이다. 평소에도 나는 원래 이런 것들을 재밌어했지만 내 동생은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기적이든 끌어당김이든 믿는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게 없지 않은가. 동생과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끼고 강제로 듣게 하는 중이다. 막상 들려주니 동생이 싫어할 것 같았는데 집중하며 듣길래 같이 명상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동생과 상상 놀이를 펼쳤다. 동생에게 눈을 감아 보라고 했더니 순순히 감는 모습에 왜 이렇게 말을 잘 듣냐면서 웃었더니 동생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광안리로 놀러 가는 거야. 너 가봤지?”

“끄덕”

“광안대교 기억해?”

“끄덕”

“자, 그럼 시작할게. 우리는 지금 광안대교가 보이는 카페 안에 들어왔어. 나는 시원한 에이드를 시킬 거고 넌 뭘 시킬래?”

“...”

“내가 카드를 들고 카운터에 주문하러 걸어가면서 이렇게 외쳤어. “ “너는 뭐 먹을래? 빨리 정해.”


 내가 빨리 주문을 하라고 재촉하니 동생이 입을 벙긋거리며 무언가를 말했다. 정확하게 네 글자를 말하는 것을 보았는데 아쉽게도 나는 고요 속의 외침 제일 못한다. 입모양만 벙긋거리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다. 심지어 내가 못 알아들어서 두 번이나 말했는데 그래도 모르겠어서 혼자 추측한 걸 물어봤다.


“아, 분명 네 글자인데. 카페라떼?”

“...”

“ 아포가토? 이것도 아닌가?”

“...”

“말해 줬는데 도무지 모르겠어. 그리고 사실 나 입모양만 보고 무슨 말인지 못 맞추겠어. 내가 제일 못하는 게 고요 속의 외침 같은 게임이란 말이야. “

“피식”

“그럼 아깐 너무 빨라서 못 맞춘 거고 천천히 말하면 이번엔 진짜 맞춰볼게.”


 기회를 한번 더 달라는 내 말에 동생이 한 글자씩 네 단어를 말했다. 라테까지는 맞는 것 같은데 앞에 글자를 모르겠다.


“입모양은 정확한데 목소리는 어디 갔냐? 인간적으로 첫 단어만이라도 소리를 내줘.”


내 말에 동생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첫 단어 하나를 소리 내어 내뱉었고 나머지 단어는 입모양으로만 벙긋거렸다.

“말..”

“말? 어? 말차라떼!!!! 맞지? 말차라떼”

“끄덕”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통했다. 그 어느 순간보다 맞췄다는 뿌듯함에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이게 더 의미가 컸던 이유는 동생이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은 단어들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동생이 재밌어하는 것 같아서 이번엔 다른 상황으로 한번 더 진행했다.


 “이번에는 놀이공원으로 갈 거야. 에버랜드, 롯데월드, 경주월드 어디로 갈래?”


 어떤 놀이공원으로 갈 거냐는 나의 질문에 동생이 혀를 말며 힘겹게 입을 벙긋거렸다. 동생의 혀 모양을 보고 혹시 롯데월드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ㄹ’은 혀를 말아야 해서 다른 단어보다 특히나 발음하기를 힘겨워했다.


“롯데월드 맞지?”

“끄덕”

“가봤어?”

“끄덕”

“여자친구랑?”

“절레절레”

“그럼 누구랑? 친구랑?”

“끄덕”


 여자친구랑은 안 가봤다는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친구랑 롯데월드를 간 사진을 본 적은 있어서 어느 정도 기억을 하는지 알아냈다.


“그럼 또 시작할게. 눈을 감고 실내로 들어가 보자. 바이킹도 보이고 열기구도 보이는데 우리는 야외로 나갈 거야. 여긴 자이로드롭도 있고 롤러코스터도 있네. 너 자이로드롭이 뭔지 아니?”

“끄덕”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네 손에는 딱 티켓 한 장만 쥐어져 있어. 넌 여기서 하나만 타야 한다면 뭘 탈래? 바이킹, 롤러코스터, 회전목마, 자이로드롭”


 이번에는 내 질문을 받고 한참 동안 눈을 감으며 골똘히 고민을 하는 듯 보였다. 쉽사리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길래 계속 지켜보고 있었더니 말을 하는 것 대신 내 엄지 손가락을 잡고 치켜세웠다.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몰라서 동생이 뭘 하는지 한참을 들여다보였다.


“도대체 내 엄지를 왜 세우지?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동생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엄지 손가락만 매만졌다. 그리고 문득 놀이기구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이거 자이로드롭이야?”

“끄덕”

 

‘자이로드롭’이란 단어를 말하기 힘들어서 내 손가락을 그 기둥을 표현했던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놀이기구라는 것까지도 기억을 하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무엇을 기억하는지, 기억을 하는 게 있기는 한지 알 수가 없었는데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동생과 퇴원을 하면 놀이공원도 가고 말차라테를 먹자며 약속을 했다.  


 창 밖을 보니 오전에 내리던 비가 그쳤다. 동생에게 밖으로 놀러 가자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기저귀를 갈고 휠체어에 태워서 1층으로 내려갔더니 병원 정문에는 보호자와 환자들로 가득했다. 주말이기도 하고 날씨가 선선하다 보니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왔나 보다. 우리는 병원 밖을 나가서 멀리까지 바깥 구경을 하러 갔다. 어제도 느꼈지만 휠체어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다. 웬만한 곳은 경사로가 없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조차 힘들었고 인도도 턱이 높거나 좁으면 휠체어로 다니기는 불편했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니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장애인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는 것을 또다시 느꼈다. 내가 다리가 골절되어 깁스를 하면서 불편함을 직접 경험하고 장애인의 날에 글짓기를 해서 상을 받은  벌써 14 전인데 그때와 비교했을  여전히 변한  없다.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가 나오고 장애인 택시가 생겼지만 여전히 어가 이동할  있게끔 경사로가 있는 식당 하나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이지 않은 것들이 비로소 보이게 되었다. 문제는 예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내 일이 아니라서, 나와는 관련이 없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외면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해결하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 생각이 지금을 만든 건 아닌가 싶다. 나와 상관없을 거라는 안일함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으로 인해 지금도 집 밖을 나서지 않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그들에게 바깥은 마음 편히 움직일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며 그로 인해 한정적인 공간에서 밖에 생활을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잘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앞으로는 몸이 아픈 사람이 많아질까, 건강한 사람이 많아질까. 평소에는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던 그 공간이 어느 순간에는 모두에게 불편하게 되지는 않을지 한 번쯤은 고민을 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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