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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10.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31 - 돌이켜 보니 감사한 순간들

2023년 6월 12일 월요일


 어제는 재활 병원에 입원한 지 정확하게 2개월이 되는 날인 동시에 동생의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로 하루를 열었고 한 달마다 주어지는 주치의 면담 시간을 가졌다. 요즘 들어 동생의 상태가 점점 괜찮아지고 있고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콧줄을 빼는 것이었다. 우선은 7월에 다시 한번 더 대학병원 외래 진료가 잡혀 있어서 삼킴 검사는 이번 달 말쯤에 진행해 보기로 했다.


이번 검사를 무조건 통과를 해야만 뱃줄을 다는 수술을 피할 수 있다. 남은 시간 동안 삼키는 훈련을 더 열심히 시켜야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되도록이면 동생의 신체에 더 이상의 흉터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이런 걸 보니 요즘 따라 용인 세브란스에 있었을 당시 의사 선생님들의 판단으로 동생의 흔들리는 앞니를 빼지 않고 목관 수술을 안 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들은 동생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배려해 주셨던 것 같다. 중환자실에서 동생이 의식이 없었을 때 호스를 너무 세게 물어 앞니가 흔들리면서 빠질 지경까지 된 적이 있었다. 발치를 해야 될지 그대로 놔둬야 될지 고민을 하다가 발치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기도 하고 동생이 의식이 돌아왔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망감에 사로 잡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뒀다고 했다. 중환자실에 있었을 당시 동생이 의식이 없었기에 철사로 고정을 시키기에는 작업 중 발생하는 가루를 흡인할 위험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나마 흔들리는 이를 실로 묶어 놓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덕에 지금 동생의 앞니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되는지 고민했었는데 다행히 그 이후로 앞니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살짝 벌어지기만 해서 교정을 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목관 수술도 자가호흡이 원활하지 않는 환자라면 진행을 했어야 하는데 동생은 그 당시 미미하게 호흡이 돌아오고 있었기에 욕심을 조금 더 내서 최대한 수술을 안 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끌었다고 말했다. 물론 환자 입장에서는 목관 수술을 하는 것이 더 편하지만 젊은 나이기도 하고 목에 구멍을 뚫으면 그 흉터는 평생 남을 수 있어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텨보았다고 한다. 재활 병원에 있으면 목관 수술을 해서 목에 호스를 꽂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환자들을 볼 때마다 자기 욕심으로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던 주치의의 판단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아무래도 목관 수술을 하면 호스를 빼기 전까지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말을 못 했을 텐데 다행히도 수술을 하지 않아서 말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혀 근육이 굳어져서 발성을 잘 내지 못할 뿐 다른 이상은 없다. 그래도 어제부터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이후부터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목소리는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처럼 작지만 어느 정도 소리를 내려고도 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항상 동생과 마주 앉아서 혀를 내미는 연습을 시키고 대화를 건다. 우선은 간단하게 가나다라부터 따라 하도록 시켰더니 제법 잘 따라 하며 목소리도 그전보다 잘 들렸다. 아직까지 차, 카, 타, 파와 같은 거센소리 같은 경우는 말하기 힘겨운지 발음이 뭉개졌다. 그래도 조금씩 발성 연습을 해나가다 보면 발음하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어제 무엇을 먹고 싶다고 했었는지 기억을 하냐 물었더니 말차라떼라고 대답을 했다. 기억을 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심지어 어제보다 단어를 또박또박 말하는 게 느껴져서 신기했다.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동생은 하루아침 사이에 말이 점점 늘고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답을 들으려면 한참을 기다려도 해줄까 말까였는데 이제는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도 줄어간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나 혼자만 떠드는 게 아니라 동생과 함께 대화를 주고받는 날이 곧 다가올 것 같다. 앞으로는 더욱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희망이 생기면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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