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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1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32 - 동생과의 대화

2023년 6월 13일 화요일


 오늘은 그토록 바라고 바라왔던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제 말문이 조금씩 트이는 것을 확인한 뒤부터 말하는 연습을 열심히 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 여느 때와 같이 아침을 준비하고 재활을 가기 전에 기저귀를 확인했는데 용변을 보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재활 시간 중간에 볼일 본다는 뜻이라서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아침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동생에게 바나나도 먹이고 발성 연습도 시켰다. ‘안녕하세요’라고 말해보라고 하니 목소리는 미세하게 들리지만 입모양만큼은 또렷했다. 다른 단어들도 시켜보니 입을 벙긋거리며 이야기를 한다. 내가 나가 있느라 지켜보지 못한 며칠 사이에 동생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이제는 회진 시간에 담당의사가 동생에게 대화를 건네면 뚜렷한 반응을 보인다. 그전까지는 질문을 해도 멍하니 있거나 자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면 지금은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화요일 첫 타임은 전산화인지재활로 시작한다. 유일하게 8시 반부터 재활이 진행되는 요일이기도 하다. 동생의 상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보기 위해서 치료받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치료사가 묻는 말에는 전보다 반응을 잘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모니터와 판넬의 버튼을 이용해서 같은 그림 찾기나 물체에 대한 반응속도를 검사하는데 애매하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면 같은 그림이라는 건 알아보는 것 같은데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같은 모양이 나오면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도 누르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뒤늦게 누르는 시늉을 하였다. 아직까지는 모니터와 버튼을 번갈아 보면서 동시에 작업을 하는 게 어려워 보였다. 눈은 모니터를 응시하고 손은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동생은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았다.


 그래도 물체가 나올 때 버튼을 바로 누르는 반응 속도는 빨랐는데 한 단계를 더 올려 화살표 모양과 같은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하니 아무 버튼만 막 눌러댔다. 위로 향하는 화살표가 나오면 위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아래에 있는 버튼을 누른다거나 아니면 아예 누르지 않고 넋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데 눈과 손이 따로 노는 것 같아 보여서 애가 탔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한 게 본인 마음만 하겠냐만은 답답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동생은 오전 재활 내내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동생이 용변을 보지 않은 날이기도 하다. 가끔씩 이런 날이 있긴 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혹시나 오후 재활 도중에 싸는 건 아닐지 노심초사를 했지만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재활이 끝나면 잠시 휴식 시간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 시간에 담당의사의 경과 진료를 보았다.  담당의사는 동생의 상태를 살피더니 두 발로 서서 버티는 재활을 한번 받아보고 괜찮으면 경사침대에서 서 있는 걸로 변경을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온 지도 벌써 두 달 하고도 이틀째 되는 날이다. 확실히 처음보다는 모든 게 많이 나아졌다.


 진료가 끝나고 나서는 바로 병실로 올라가서 기저귀를 갈았다. 재활을 도중에 바지에 소변이 새서 옷을 갈아입혀야 했다. 소변처리 정도는 이제 수월하게 할 수 있어서 기저귀를 갈고도 다음 재활 시간에 늦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오히려 1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잠시 바깥공기를 쐬러 나갈 시간도 있었다. 멀리는 못 가지만 바깥으로 나가서 동생과 함께 사람구경을 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 번 동생의 인지가 어느 정도까지 돌아왔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분명 어제 검사를 할 때 글자를 보고 올해가 무슨 년도인지, 어느 병원인지 맞추는 걸 보고 글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은 확인을 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간판에 적힌 글자를 읽을 줄 아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길래 간판 하나를 가리키고 읽어보라고 시켰다. 혹시나 글자를 읽을 줄 모를까 봐 긴장되는 마음에 동생의 입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간판에 적힌 글자를 그대로 읽는 모습을 보고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동생은 재활을 보내고 나는 원무과에 가서 의뢰서와 처방전, CD를 챙겼다. 내일은 소화기내과에 외래진료를 보러 갈 예정이라서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내일 챙겨가야 할 짐을 꾸리고 무엇이 더 필요한 지 확인을 했다. 그래도 내일은 오전 진료가 아니라 오후라서 그리 바쁘지는 않을 것 같다. 걱정스러운 건 4시 진료라서 언제쯤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필 5시부터는 교대시간이라서 두리발을 잡기 힘들다는 말을 들은 터라 걱정이 되긴 한다. 그래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무사히 갔다가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후 재활 시간에는 새로운 치료를 시도했다. 원래는 전동 자전거를 할 시간인데 서있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경사침대는 받쳐주는 게 있었지만 그냥 서 있는 건 엉덩이만 받치고 있어서 힘들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치료사들은 수시로 동생의 혈압을 검사하면서 상태를 살폈다. 동생은 처음으로 30분 동안 서서 버티는데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재활 시간표가 또 한 번 변경되었다. 오늘부로 재활치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재활이 끝나고 이동하는 틈을 타서 고장 났던 휠체어 발판도 수리를 했고 재활 시간에 동생이 실내화를 직접 벗는 것까지 목격을 했다. 지금까지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기쁨의 연속이었는데 저녁에 또 한 번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저녁을 다 먹고 네블라이저를 끝내놓고 동생의 여드름을 짜려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각종 도구들을 챙겨 들고 동생 앞으로 다가가 얼굴에 손을 대려고 하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한다.


“하지 마.”


 그 순간 잘못 들은 줄 알고 한번 더 손을 갖다 대니 내 손을 막으면서 말했다.

“하지 마.”


 동생이 자기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한 첫 순간이었다. 그것도 짜증을 내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지금 나한테 짜증을 내는 거냐고 물어보니 동생은 웃기만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여드름을 짤 때 ‘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면 안 한다고 말해도 입을 안 열더니 이제는 여드름을 짜려고 하는 나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하지 마라는 말까지 한다. 동생이 말로 표현을 한 게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건드릴 수가 없어서 여드름 짜기는 포기했다.


 그 뒤로도 ‘아, 에, 이, 오, 우’ 같은 경우는 손쉽게 따라 하고 ‘가-하’까지도 따라 하지만 ‘타, 카, 파’ 같은 발음은 어려워했다.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또렷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칭찬을 해주었다. 이 기세를 몰아서 가족의 이름을 물어봤다. 다행히 모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기억을 못 할 때 힌트를 줄 때면 반응도 보였다.


“숙모 이름은 엄마 이름이랑 똑같아. ”

“아하”

 마치 새로운 걸 알았다는 듯이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아‘라는 감탄사를 외치는 걸 보니 너무 웃겼다. 그리고 시계를 가리키며 몇 시인지를 물었더니 시간은 틀리게 말을 했다.


“저 숫자 보여? 지금 몇 시야?”

“7시”

“아니야. 시침이 8을 가리키잖아. 8시야”

“아하”


 또 한 번 새로운 걸 깨달았다는 듯이 반응을 하는 걸 보고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사물을 하나씩 가리키며 명칭을 물어보니 다 맞췄다.


“저건 뭐야?”

“시계”

“그럼 저건?”

“달력”

“달력 옆에 달려 있는 저건?”

“풍선”

“와, 똑똑해졌네.”


 동생은 똑똑해졌다는 나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방긋 웃어 보였다. 그 뒤로도 나의 질문은 끊이질 않았다.


“그럼 이번엔 색깔 테스트야. 저 벽지 색깔이 뭐야?”

“녹색”

“오, 색깔도 알아맞히네.”


혹시나 색깔에 관련된 질문을 할 때마다 반응이 없길래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닐지 걱정을 했는지 다행히 색상을 구분하는 시각도 정상이었다. 동생과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다른 병실로 옮겼던 아주머니들이 우리 병실에 놀러 오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고 있냐며 물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치킨 내기의 끝이 났다. 몇 주 전부터 ‘이모’, ‘아줌마’라는 말을 언제 할지 내기를 했는데 동생은 오늘에서야 이모와 아줌마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주머니들은 동생이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언제 이 정도로 상태가 좋아진 것이냐며 놀라워했고 내가 돌봐준 보람이 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더 놀랄 일은 쓰러지게 된 당일 날을 상황을 물으니 대답을 해줬다는 것이다. 문장으로 말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라웠다.


“혹시 마지막으로 놀러 갔던 곳 기억나? 그게 어디야?”

“부여”

“기억하고 있네? 그럼 네가 쓰러졌던 것도 기억나?

“어”

“궁금한 게 있는데 네가 체육관 화장실에서 쓰러졌잖아. 운동하다가 갑자기 화장실은 왜 간 거야?”

“오줌 마려워서 “


 예상치도 못한 말에 당황을 해서 동생을 쳐다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면 운동을 하다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혔어?”

“어”

“머리를 부딪혔다고?”

“끄덕”

“아팠어?”

“어, 아파”

“아픈데 왜 운동을 했어!”

“허어”


 이로써 동생은 운동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혔고 아픈 상태였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런데도 미련하게 계속하다가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동생과 대화를 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그런 날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동생한테 이것저것 질문을 하니 3월에서 5월까지의 기억은 희미한 듯해 보였다. 특히 용인에 있었던 순간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건 나중에 한번 더 확인을 해봐야겠다.


 네 달 전까지만 해도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만 있던 동생이 이제는 나와 짧은 대화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왔던 순간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니 기적이 따로 없었다. 온몸에 근육이 다 빠져서 침대에만 누워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서있기까지 한다. 이대로만 간다면 걷게 되는 날도 머지않아 다가올 것 같다. 오늘은 너무나도 기쁘고 감격스럽고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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