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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0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29 - 보이지 않던 세계

2023년 6월 10일 토요일


 오늘은 주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재활 일정이 빡빡한 느낌이다. 주말은 평일과 다르게 무작위로 일정이 짜이고 당일에 시간 변경이 불가능하다. 항상 금요일마다 주말 시간표를 나눠 주는데 별생각 없이 받았다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재활은 9시부터 12시 10분까지 진행되었는데 문제는 다음 재활이 1시에 있다. 그 말은 즉 경관 유동식을 한 시간 안으로 끝내거나 그렇게 못할 경우 잠시 중단했다가 재활이 다 끝나면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토요일 같은 경우 평일과는 다르게 오후 두 세시쯤이면 모든 재활이 다 끝난다. 경관유동식은 넉넉하게 1시간 이상을 잡아야 해서 시간표를 보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피딩 속도를 빠르게 하면 설사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속도를 늦추면 점심이 밀리면서 애매해진다. 그런데 우리와 같은 상황을 가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닌가 보다. 재활 치료실에서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툴툴거리며 연하 치료를 도와주는 치료사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경관유동식을 하는 환자에게 식사 시간을 1시간도 안 주고 재활 일정을 짜면 어떻게 먹이라는 거냐며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지만 연하 재활 치료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어딜 가더라도 이렇게 엉뚱한 대상에게 따지는 사람들이 꼭 있는 것 같다.


 결국 동생은 시간이 촉박해서 경관 유동식 한팩만 먹고 다음 재활을 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정이 다 끝나고 남은 한 팩을 먹고 있으니 엄마와 할머니가 왔다. 나는 처음으로 동생 목욕을 시킬 때 따라 들어갔다. 이제는 주말마다 동생 목욕을 시킬 것 같아서 가만히 손 놓고 앉아 있기는 글렀다.  


 목욕을 시키려면 우선은 복도에 있는 샤워용 베드를 샤워실 안으로 밀어 넣는 일부터 시작이다. 샤워실은 4개가 있었지만 베드가 들어가는 샤워실은 2군데라서 만약 누군가 사용하면 기다렸다가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동생을 휠체어에 태워 샤워실로 데리고 가야 한다. 심지어 준비해야 할 짐도 많다. 목욕용품부터 시작해서 여러 장의 수건, 드라이기, 기저귀, 병원복까지 챙겨야 한다. 주말 때나 도와줄 사람이 있어서 가능하겠지만 혼자서는 도무지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낙상이다. 병원에는 낙상만큼이나 위험한 게 없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동생을 목욕시키려고 샤워실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으니 드디어 샤워실 문이 열렸다. 남자 간병인이 환자의 휠체어를 끌고 나오면서 우리를 보더니 흠칫 놀라더니 샤워용 베드를 사용할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사용할 거라고 말하니 사용 방법을 설명해 주면서 나중에 다 씻긴 환자를 베드에서 휠체어로 옮길 때 미끄러질 위험이 있다며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럴 때는 벗어놓은 환자복을 바닥에 깔아놓고 옮기면 미끄럽지 않다고 노하우를 알려주셨다. 병원에서 지내다 보면 같은 병실은 아니지만 노하우 전수해 주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하다.


 동생을 무사히 베드로 옮기고 나서 우리는 역할 분담을 나눴다. 할머니는 헹구기, 나는 머리 감기, 엄마는 몸 씻기기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데 엄마랑 할머니가 투닥거렸다. 이유는 성격이 급한 할머니가 비누칠도 제대로 안 했는데 자꾸만 헹궈내서 엄마가 짜증을 냈다. 심지어 물 온도를 확인 안 하고 뿌려서 동생이 뜨거운 물에 삶아질 뻔했다. 정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여자 셋이 모여서 아주 요란스럽게 남자 하나를 목욕시켰다. 조금은 삐그덕 거렸지만 그래도 무사히 완료했다.


 샤워를 다 끝내놓고 동생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그런데 휠체어를 끌고 다니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불편함들이 눈에 들어온다. 편평하지 않은 보도블록, 경사진 도로 그리고 경사로가 없는 건물들이 큰 문제였다. 식당에 들어가려고 해도 입구에 턱이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경사로가 있는 식당은 찾기가 힘들었다. 병원 앞 많고 많은 식당들 중에 경사로가 있는 식당은 단 한 곳이었다. 식당 입구만 봐도 휠체어가 들어가기엔 협소한 곳이 많았다.


 우리는 입구가 넓고 턱이 그나마 낮은 식당을 찾아 헤맸고 그것도 안 되면 노상에 테이블이 놓여있는 식당을 가려고 했는데 마침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곳을 발견했다. 사장님한테 노상에 있는 테이블에서 먹어도 되냐 물었더니 휠체어를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와도 된다고 하시길래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슬라이드 도어로 되어 있고 턱이 낮아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었고 사장님이 옮기는 것까지 도와주셨다.


 그 덕에 무사히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닭구이였고 그 앞에서 군침만 흘리고 있는 동생이 안쓰러워서 계란찜까지 시켰다. 그런데 자리 선정에 실패했다. 동생이 내 옆에 있어서 챙겨주느라 닭구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자리를 바꿔주겠다면서 마음 편히 먹으라고 했다. 동생은 계란찜을 몇 입 먹다 말고 목이 마른 지 자꾸만 얼음이 든 컵으로 손을 뻗었다. 음료수를 먹고 싶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액체류는 아직까지 위험해서 줄 수가 없었기에 마음이 안 좋았다. 다음에는 콧줄을 빼고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닭구이를 꼭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동생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휠체어를 타면 평소에 별생각 없이 들어갈 수 있던 장소도 방문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몸이 불편할수록 본인이 할 수 있는 제약도 많아지는데 사회 환경에서의 제약도 그만큼 많아진다. 길거리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자주 보지 못했다면 그건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사회에 혼자 나와서 돌아다닐 만한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우리는 소수의 사람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과연 무엇일지 고민해봐야 하며 그 누구도 언제나 소수 집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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