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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07.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28 - 포즈

2023년 6월 9일 금요일


 오전에는 엄마가 부탁한 진료비 세부 내역서와 입원확인서를 발급받았다. 그리고 요 며칠 전부터 휠체어 발판이 고장 나서 휠체어도 교체해야 할 듯하다.


 6월 달에 들어서는 몸이 많이 힘들지는 않지만 병실 사람들이 매번 바뀌어서 정신이 사납다.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나가면 새로운 환자와 간병인 그 자리를 채운다. 그래서 항상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해질 만하면 환자는 그대로인데 간병인이 바뀐다던지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언제쯤 이 시기를 지나서 안정기로 접어들지 모르겠다. 지금 병실에서 대장노릇을 하는 새로운 간병인은 제일 바깥 자리를 차지해서는 화장실문단속을 엄격하게 한다.


 아침에 동생의 몸을 닦이고 화장실에서 수건을 세탁하고 있으면 밖에서 화장실문을 닫아 버린다. 빨래를 해봤자 30초에서 1분 사이인데 항상 달려와서 화장실문을 닫으라며 잔소리를 한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것까지 간섭한 적은 없어서 황당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환자한테 자꾸만 신경질을 부리거나 짜증을 내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까지 신경이 예민해진다. 솔직히 자기감정을 조절 못하고 짜증을 내는 간병인한테 내 가족을 맡긴다고 생각하니 마냥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문제는 같은 병실이라서 우리도 그 짜증을 들어야 한다는 게 곤욕스러웠다. 동생에게 속삭이며 병실이 시끄럽지 않냐고 물어보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환자한테 좋은 이야기만 해줘도 모자랄 판에 신경질은 내는 건 아니라고 본다.


 요즘 동생은 치료사 선생님들과 장난치는 재미로 재활을 받는 것 같다. 항상 경사침대를 하고 있다 보면 선생님이 하나둘 다가와서 가위바위보를 한다거나 다양한 포즈를 요구한다. 그러면 동생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순순히 응해준다. 심지어 사진을 찍을 때 손가락 브이는 기본이고 손가락 하트까지 만든다. 동생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모습이 귀엽다 보니 치료사 선생님들이 자꾸만 장난을 치는 것 같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마치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저 귀엽고 웃기다.


 치료사 선생님 한 명이 배트맨 포즈를 따라 할 수 있냐며 동생을 도발했던 손쉽게 OK포즈를 취하더니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뒤집었다. 그걸 보니 이제는 어려운 동작도 쉽게 따라 하는 걸 보니 정말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광경을 놓치기 아까워서 재빨리 영상으로 담았다. 다음에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앉아 지금을 과거 추억으로 회상하며 보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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