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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n 28.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20 - 피로 누적

2023년 6월 1일 목요일


5월에서 6월로 넘어왔다. 2023년은 벌써 절반을 달려가는 중이다. 의욕이 들끓는 동시에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지는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모든 게 귀찮은데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6월이 나에게 주는 기운은 모순적인 감정이었다. 내일은 엄마랑 교대를 하기로 한 날이라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도 싫다. 저번주에는 쉬는 동안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서 그런지 이번주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로 다짐했다.


 몇 시간이 걸리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그냥 내 주변의 모든 것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을 가고 싶다. 진지하게 엄마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것도 생각했다. 그냥 그만큼 어디론가 훌쩍 차를 타고 떠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그런 곳이면 된다. 이왕이면 신경 쓰일 만한 것이 없으면 더 좋다. 그 누구의 방해가 없는 곳, 그 누구의 연락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지금 나에게 제일 필요한 건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병원생활이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24시간 내내 개인 시간과 공간 하나 없이 남들과 지내는 건 너무나도 곤욕이다. 마치 24시간 동안 직장 안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랄까. 늘 24시 대기조로 근무를 하는 느낌이라서 쉬는 동안에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자유가 없다.


 간병을 처음 했을 당시에는 분명 체력적으로 힘이 부쳤고 몸이 아팠다. 아무래도 평소와는 다른 갑작스러운 활동에 과부하가 걸렸을 것이다. 손목, 허리, 무릎 가릴 것 없이 관절이란 관절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몸이 먼저 고장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웃기게도 인간은 익숙함의 동물이라 그런지 고통에도 익숙해졌다. 처음 겪어보는 생소한 고통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낯설었던 고통은 어느새 무뎌진다. 고통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저 당연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뭉쳐버린 어깨와 항상 부은 다리가 일상이었고 피로가 온몸을 덮어버린 지 오래되어서 피로가 없던 상태가 무엇이었는지 무감각해졌다. 괜찮아진 게 아니라 그냥 고통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그래서 힘을 쓰는 일은 힘들다는 생각조차 들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힘들다고 생각하는 정신적인 소모조차 버거워서 생각을 안 하고 싶은 거였다.


 문제는 정신적인 한계까지 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피로가 누적이 되다 보니 조금이라도 할 일이나 신경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너무나 힘들다. 사람이 정말 지치면 화낼 힘도 없다는 것 같다. 생각하기도 싫고 대꾸하기도 싫어진다. 모든 감정을 통제하는 게 귀찮아져서 무신경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짜증이 올라와도 대인배라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짜증 낼 힘조차 없어서 넘어간다. 그냥 사람이 모든 일에 초연해진다. 정확하게는 쌀쌀맞게 변한다. 신경 쓰기도 싫고 감정을 소모하는 것도 싫다. 원래라면 카톡 메시지가 왔을 때 빨간색 알림 표시가 뜨는 게 싫어서 바로 읽고 답장을 해줬다면 이제는 며칠이고 미뤄둔다. 그냥 사람이라는 대상 자체를 상대하기가 귀찮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내 감정에 집중을 할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진정시켜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환기되지 않는 감정들을 환기시켜 줄 만한 것들을 찾기 위해서 이번주는 절대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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