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덤벙돈벙 Jun 29.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21 - 혼자 만의 시간

2023년 6월 2일 금요일


 오늘은 엄마와 교대를 하는 날이다.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던 찰나에 카드사에서 영화 할인 문자가 왔다. 8,500원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예매를 했다. 오늘 저녁에 교대를 하면 바로 영화나 보러 가야겠다.


 오전에는 엄마가 부탁한 입원 확인서를 발급하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리고 동생 폰으로 동의서를 하나 보냈다며 접수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병실 청소를 하고 막 내려온 터라 다시 올라가기 귀찮아서 재활 치료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동의서 접수를 하러 올라갔다. 폰으로 접수까지 마치고 엄마한테 전해주려고 카톡을 열었는데 1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접수를 했다며 문자가 와있었다. 이럴 거면 도대체 왜 나한테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몇 시간만 더 버티면 며칠간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오전까지만 해도 만사가 귀찮고 우울했는데 교대 시간이 다가오니 서서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가 퇴근하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랜만에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개인 사정으로 올해 군대를 가게 된 친구는 내년 10월에 전역을 한다고 했다. 친구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아도 말에서 허탈감이 묻어 나왔다. 정말 올해는 유독 예기치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오랜만에 동생의 상태에 대한 질문 그리고 보호자로서의 대답이 아니라 오롯이 나란 사람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숨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항상 가족들은 걱정스러운 마음과 함께 동생의 상태는 어떤지, 병원에 관련된 이야기만 하기에 대화를 하면 숨이 막혔다. 그뿐 아니라 동생 지인에게도 동생의 상태를 알려줬었기에  번씩 안부를 물어왔다. 처음에는 동생을 대신해서 알려줘야겠다는 마음에 답장을 열심히 해줬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처음과 같은 마음여유가 사라졌다. 매번 동생은 어떻게 됐냐는 똑같은 질문이 나를  막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우리 가족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의 반복을  개월째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지쳤다. 그래서 요즘은 동생 폰을 들여다보며 일일이 답장하지 않고 쌓아두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그냥 대화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래도 병원에서 나가기  친구와의 대화로 기분이 괜찮아졌다. 오랜만에 나로 사는  같다.


 나는 엄마가 오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엄마는 마무리는 다 하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농담을 던졌는데 그런 장난을 치고 싶은 기분까지는 아니었다. 동생 저녁까지 먹이고 있는데 뭘 더 할 게 있냐며 쌀쌀맞게 말했더니 엄마는 내 말투를 지적하면서 보자마자 왜 짜증을 내냐고 말했다. 또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고 했더니 혼자서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보냐고 말을 하길래 설명하기 귀찮아서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며 나왔다. 그리고 절대 나에게 연락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지하철을 타고 노포동에서 차로 갈아탄 후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관에 가서는 오랜만에 양은 적고 비싼 오징어 버터구이와 콜라를 시켰다. 혼자서 영화관을 와본 건 2015년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19살에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는 혼자서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친구와 함께 하는 게 더 좋았었기에 그 이후로는 혼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혼자 있는 게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신경이 쓰였는데 지금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혼자 만의 시간이 너무 좋다. 그렇게 8년 전과는 사뭇 다르데 너무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범죄도시 3을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으로 가는 게 아쉽긴 했으나 내일을 위해서 참았다. 내일은 눈이 떠지는 대로 포항에 갈 예정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낼 생각에 갑자기 설렌다. 신경 쓸 게 없다는 것 만으로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하루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