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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3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47 - 콧줄로부터의 자유

2023년 6월 28일 수요일


 오늘 아침부로 드디어 콧줄에서 해방되었다. 5개월 만에 콧줄이 달려 있지 않은 동생의 맨얼굴을 마주했다. 콧줄을 빼서 시원하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동안 70cm 호스를 꽂고 있느라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보고 있는 나조차 상쾌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은 수분섭취 아무래도 액체는 기도로 그냥 흘러 넘어갈 위험이 있기에 조심해야 했다. 재활 병원으로 옮긴 지 거의 세 달 만에 처음으로 연하 곤란식이 나왔다. 모든 음식은 곱게 갈려서 미음으로 나왔고 걱정했던 것보다 동생은 남기지 않고 먹었다. 물론 미음을 전부 다 먹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리긴 했지만 용인에서 먹일 때보다는 확실히 수월하게 먹일 수 있었다.


동생을 아끼는 간병인 아주머니가 콧줄을 뺏다는 소식을 듣고 병실로 찾아왔다. 3만 원을 건네며 전에 동생과 콧줄을 빼면 피자를 사주기로 약속했다며 주문을 하라고 했다. 괜찮다고 거절을 했는데도 약속은 약속이라며 손에 쥐어주셨다. 피자는 지금 당장은 못 먹더라도 자극을 받으면 먹는 연습을 더 열심히 하게 된다며 노하우까지 알려주셨다. 피자는 얼려놨다가 나중에 조금씩 먹여보라며 설명을 끝내고 유유히 사라졌다.  


 동생을 이렇게까지 신경 써줘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리고 바로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동생 옆에 붙어서 1시간 넘게 밥을 떠먹여 줘야 하니 내가 밥 먹을 시간이 사라졌다. 또한 점심은 더욱 촉박해서 동생이 밥을 다 먹자마자 소화시킬 틈도 없이 재활을 가야 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 나는 점심을 아예 먹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동생은 소화도 못 시키고 재활을 받느라 나중에 치료사에게 듣기론 토를 했다고 한다. 소량이긴 하지만 미처 삼켜지지 않은 음식물이 올라온 것일 수도 있고 먹자마자 바로 운동을 해서 그럴 수도 있다며 이 문제가 반복되면 재활 시간은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1시간 정도 시간을 두고 밥을 먹였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마음이 안 좋았다. 밥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다 먹였는데 괜히 나의 부주의로 이런 일이 벌어진 건가 싶어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 뒤로도 간호사와 의사의 귀에도 소식이 들어가서 나와 마주칠 때마다 주의를 줬다. 첫날부터 3번이나 경고를 들어서 마음이 안 좋아졌다. 동생의 밥을 챙기느라 정작 나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먹은 게 미숫가루와 자두 2개가 전부라서 예민한 것도 있었는데 마치 내 잘못이라고 탓하는 것 같아서 더욱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간병인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동생은 미음을 잘 먹냐는 말에 축 처진 목소리로 구토를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별 일이 아닌 것처럼 그럴 수도 있다고 해주었다. 경관유동식에서 연하곤란식으로 바꾸면 흔히 있는 일이라며 예전에 어떤 환자는 하루에 8번을 토한 적이 있다며 말해주었다. 환자는 밥을 먹이고 나면 신생아를 대하듯 등을 두드려주거나 소화를 잘 시켜주면 괜찮다며 큰일이 아니라고 했다. 경험이 많은 분이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속에 있던 죄책감이 사라지면서 안심이 되었다.


동생의 재활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피자를 주문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이른 저녁으로 피자 두 조각을 먹고 동생을 데리러 갔다. 재활이 5시에 마치면 배식차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있어서 로비에서 10분 이상을 대기해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병실로 올라가면 기저귀부터 갈고 나서 저녁을 먹인다. 혹시나 싶어서 동생에게 피자 한 조각을 먹여보는데 아직까지는 무리인 듯하다. 새 모이처럼 한입 베어 물더니 더 이상 먹을 생각을 안 한다.


 저녁밥을 다 먹고 동생과 놀고 있으니 간병인 아주머니가 병실에 놀러 왔다. 그러면서 일요일에는 치킨을 먹는 게 어떻겠냐며 동생에게 물으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동생의 끄덕임이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면서 먹을 수 있냐고 하니 ‘어’라고 대답한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또 한 번 동생에게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냐 물었다.


그랬더니 동생이 하는 대답은 “BBQ”였다. 질문에 대답을 해줄 거란 기대를 안 하고 있다가 또박또박 대답하는 동생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빵 터졌다. 그게 너무 웃겨서  BBQ에서 어떤 종류를 시켜주면 되냐고 물었더니 곰곰이 고민을 하더니 대답을 했다. “반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또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대답을 할 줄 몰랐다. 얼마나 치킨이 먹고 싶었으면 이러겠나 싶으면서도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동생의 귀여운 답변에 간병인 아주머니는 일요일에 치킨을 사주겠다며 먹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옆 자리 환자가 대신 “네”라고 대답을 한다. 거기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져버렸다.


 우리 옆 자리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입원해 있는데 나이도 젊은 편에 속한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 사이라고 알고는 있는데 무슨 질문이든 항상 “그래 그래”라고 대답을 해서 그래그래 아저씨로 불린다.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고 성격이 엄청 밝다. 귀는 어찌나 밝은 지 커튼 너머로 들리는 소리에 전부 대답을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처럼 웃긴 해프닝이 자주 벌어진다. 동생까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앞으로 즐거운 일이 더 많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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