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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Aug 0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48 - 재미거리

2023년 6월 29일 목요일


 오늘이 연하식 둘째 날이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동생은 밥을 너무 잘 먹는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후식으로 준 꼬깔콘 과자를 다 먹어치우는 걸 보고 콧줄을 안 뺐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건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을 하듯이 억지로 씹어 삼킨다. 맛있는 간식은 누가 빼앗아 갈세라 엄청나게 빨리 먹어 치우는 걸 보면 6월 내도록 했던 콧줄에 대한 걱정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제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1:1 보행치료 담당 선생님이 바뀐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이 마지막 근무라고 한다. 안 그래도 며칠 전 선생님이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은 할머니 환자 한분이 서운한 마음에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손을 꼭 쥔 채로 헤어지게 돼서 아쉽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짠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게 당연한 진리인 걸 알면서도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퇴사 이유와 그만 두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지에 대한 궁금증들이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기도 하고 물어본들 그 속사정을 다 알 수도 없다. 내가 직장을 퇴사한다고 할 때 고객이 다음엔 뭘 할 거냐는 질문에 표면적인 이유로 적당히 둘러댄 것처럼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직장의 부조리를 다 까발리고 싶었지만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수많은 이유들을 목구멍 안으로 다시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자신을 담당하던 선생님과의 마지막 치료라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다. 그래도 선생님과 재활 치료를 하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한테 할 말이 없는지 동생에게 물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데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동생의 표정은 덤덤해 보여도 2개월 넘게 함께한 선생님과의 헤어짐은 아쉽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여기서 또 한 번의 작별을 맞이했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하는 언어 치료가 끝나고 담당 치료사가 시간표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이 이제는 어느 정도 말을 할 줄 아는 것 같다며 언어 치료 횟수를 연장할 것을 권했다. 그동안은 치료 시간에 말을 거의 하지 않아서 주 1회만 진행했는데 이제는 더 늘려도 될 것 같다는 설명에 기분이 좋아졌다. 막연한 희망 하나를 가지고 내디딘 발걸음이 어느새 하나씩 모여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호전이 빠르게 되고 있다는 걸 실감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함과 벅참이 올라왔다.


 저녁으로 나온 미음도 싹싹 비우고 야무지게 카스테라 한 조각도 먹는다. 그리고는 이내 목이 마른 지 자연스럽게 물통으로 손을 뻗었다. 빨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입에 물려주니 전날의 걱정과는 다르게 빨대를 잘 사용한다. 아무래도 어제는 물에 점도 증진제를 너무 많이 타서 빨대로 못 마신 듯하다. 다만 오늘 수분 섭취가 적었는지 소변색이 진해져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래도 며칠간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듯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간병인 아주머니가 동생을 보러 왔다. 그러면서 밥을 잘 먹는지 물어본다. 그래서 밥도 잘 먹고 과일이나 간식도 다 잘 먹는다고 말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잘 먹어서 예쁘다며 동생을 칭찬했고 같은 병실을 쓰는 아주머니는 동생이 블루베리를 잘 먹는다는 소리를 듣고 한 그릇을 담아 주셨다. 동생한테 블루베리를 혼자 다 먹을 거냐고 물으니 끄덕거리며 한알씩 입으로 넣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웃었더니 같은 병실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웃으니깐 보기 좋다며 그동안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말했다.


그 말을 듣는데 왠지 모르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동생과 단둘이 있는 시간에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웃음을 보였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피곤에 절어있거나 무표정이었다. 아무래도 같은 또래는 없고 연장자만 가득한 이곳에서 내가 먼저 말을 붙일 일은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한 공간에 있어도 사람들을 관찰자처럼 지켜보기만 할 뿐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들과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한결같이 적정한 선을 유지할 것 같다. 다만 웃을 일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람들이 커튼 너머의 각자 자리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여럿이 한 공간에 있지만 단둘만 분리된 곳에서 동생과 나는 잠들기 전에 대화를 나눴다. 오늘이 며칠이냐 물었더니 29일이라는 걸 맞췄다.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깐 꿈에 나왔다고 한다. 황당하기만 한 동생의 답변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캐물었다.

“아니, 거짓말 치지 말고 오늘 29일인 거 어떻게 알았냐? ”


몇 번이고 반복되는 나의 질문에 동생은 또박또박 말했다.

“꿈에 나왔다니깐”


 살짝 짜증이 섞인 어투처럼 들려서 지금 설마 짜증을 낸 거냐며 내가 오해한 거 맞냐고 물으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인다. 그리고 이번에는 동생의 나이를 물었다.

“너 지금 몇 살이야?”

“22살”

“네가 왜 22살이야? 23살이잖아.”


그랬더니 동생의 입에서 나온 단어 세 글자.

“만 나이.”


 예상치 못한 단어에 너무 웃겨서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종잡을 수 없는 대화에 어디서 뭘 듣고 다니냐고 물어보니 그저 웃기만 한다. TV도 안 보는 애가 도대체 28일부터 만 나이를 시행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래도 작업 치료를 하면서 치료사들이 이야기를 해줬거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은 듯하다. 확실하게 인지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동생을 재우기 위해서 침대를 눕히며 장난으로 내가 좋냐고 물었다. 나의 심술궂은 질문에 동생은 그냥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그럼 내가 싫냐고 물었더니 이건 바로 “아니 “라고 대답해 준다. 그 말에 ”싫어하지 않는다니 그건 다행이네. “라고 대답하니 뭐가 그리 웃긴 건지는 몰라도 활짝 웃는다. 이쯤이면 동생은 그냥 내 얼굴만 봐도 재밌어하는 것 같다. 뭐 어쨌든 나도 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즐겁고 재밌다.


그동안 애타게 기다려 온 순간이라서 더 감격스러웠다. 동생에게 일방적으로 대화만 걸다가 이제는 쌍방으로 소통이 가능하게 되니 신난다. 이야기를 하며 같이 놀 수 있어서 이제는 심심할 일도 없을 것 같다. 더욱이나 사람들이 동생을 보고 많이 나아졌다며 콧줄을 빼더니 표정이 더 밝아졌다고 칭찬일색인 걸 보면서 앞으로의 병원 생활이 더욱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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