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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01.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23 - 공간과 공간 사이

2023년 6월 4일 일요일


 어젯밤에는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느라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알람 끄는 걸 깜박해서 6시 반에 일어나 버렸다. 최대한 잠이 깨지 않게 화장실을 들렸다가 다시 침대로 누웠다. 하지만 나의 신체는 6시 반에는 기상을 해야 한다고 각인이 되었는지 잠이 깨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다른 가족들은 아직 꿈나라에 있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침대에 누운 채로 폰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다 보니 하나둘씩 일어났다. 숙모는 사촌동생의 아침밥을 차려주며 내가 깬 걸 보고는 같이 먹겠냐고 물었다. 딱히 밥을 먹을 생각은 없어서 거절을 하고 침대에 누워서 사촌동생이 외출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숙모는 잠시 산책을 나갔다가 오겠다며 잠을 더 자고 있으라고 했고 나는 8시쯤에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푹 자다가 일어났는데 삼촌은 여전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어제 새벽에는 요즘따라 오전 5시에는 무조건 일어난다며 두고 보라며 호언장담을 했는데 오전 10시가 넘어가도 방 안에서 감감무소식이다. 그렇게 다시 일어나서 한참을 조용히 침대에만 누워있다가 산책을 나갔던 숙모가 들어오는 소리에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도 부스스한 몰꼴로 거실에 나와서 내 옆에 앉았다.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상태가 왜 그렇냐며 한 마디씩 던지면서 상쾌한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깬다면서 가장 늦게 일어났다고 놀려댔고 삼촌은 깨어났는데 침대에 누워 있었을 뿐이라며 핑계를 댔다. 그리고는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 가기로 했다. 홍게 짬뽕에 이어 오늘 볶음 짜장면 나의 주말은 중화요리로 시작해서 중화요리로 끝이 난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장생포에 있는 고래문화마을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빈 곳이 나면 바로 주차를 하기 위해서 다른 차와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다가 결국은 자리 선점에 성공을 할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6월 9일부터 수국축제가 있어서 그런지 완전하지는 않지만 수국이 군데군데 피어 있었고 커다란 고래 조형물로 설치되어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고래 놀이터 옆에 있는 라벤더 정원에도 들렸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둘러보고 우가포로 넘어가서 카페를 방문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는 삼촌과 숙모의 연애에서 결혼까지 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듣고 과거에 한창 날렸을 것 같은 삼촌의 젊은 시절 이야기도 들었다. 사촌동생들은 연년생 자매였는데 숙모가 첫째를 낳고 둘째를 임신했다는 걸 4개월이 되어서야 알았다고 한다. 내가 10살 때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삼촌이 숙모에게 왜 이렇게 배가 나오냐고 잔소리를 해서 훌라후프까지 열심히 돌렸는데 알고 보니 임신을 했다는 걸 뒤늦게 병원에 가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사촌동생은 아무 문제 없이 태어났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왜 지금은 병원에서 그러고 있는지 사람일은 정말 알 수가 없는 듯하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삼촌과 숙모는 계획을 세우는 것마다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단 연애부터 결혼까지 숙모는 자신의 계획과는 무관하게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삼촌은 무계획이 계획이라며 말을 했고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정말 쿵짝이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딸들의 연애사까지 공유하는 걸 보고 놀라웠다. 사촌동생들과 나는 9살, 10살 차이였기에 갓 태어난 신생아 때의 모습을 기억하는데 벌써 연애까지 한다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할머니집에 올 때마다 업어주고, 손잡고 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훌쩍 자라서 남자친구도 만들고 20대인 나보다 낫다. 그런데 부모님한테 순순히 연애를 한다고 밝히는 게 신기했다. 나라면 굳이 안 밝힐 것 같은데 10대 때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서 왜 그랬는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 같다.


 그리고 이상하게 오늘따라 낮부터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는데 들어보니 오늘 불꽃 축제가 있다고 했다. 마침 내가 나온 날 불꽃 축제를 한다니 흥미가 생겼다. 삼촌과 숙모는 작년에 불꽃축제인지 모르고 나왔다가 차가 막히는 바람에 꽤나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리 가서 자리를 잡는 게 아니라면 저녁에 불꽃축제를 보러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듣고도 간다고 하면 미쳤다는 말을 할 게 뻔했기에 한번 갈지 말지 골똘히 생각을 해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중간에 차를 세워서 목적지를 일산 해수욕장으로 바꿨다. 왠지 모르게 집으로 그냥 들어가는 게 아쉽기도 하고 때마침 불꽃놀이도 한다니 이건 실컷 즐기라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1시간을 달려 도착했는데 주차할 자리가 없다. 몇 바퀴를 둘러봐도 갓길에는 이미 주차가 되어있고 주차장도 가득 찼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주차장을 겨우 찾아서 차를 세우고 해수욕장이 아니라 지상 주차장으로 향했다. 굳이 사람이 바글거리는 모래사장까지 갈 필요가 없이 높은 곳에 있으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주차장으로 갔는데 사람들 생각 다 비슷한 것 같다. 주차장 담벼락에는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위해 서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8시부터 8시 50분까지 드론쇼와 불꽃놀이가 진행된다고 해서 기다렸다. 역시나 이곳에도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전부 가족, 연인들이었고 혼자 온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외롭지는 않았다. 혼자서 무언가를 해나가는 나 자신이 오히려 좋았다. 물론 사람들과 함께 하면 더 좋지만 혼자여도 충분히 좋다.


 밤하늘에 수놓아지는 드론과 불꽃을 구경하면서 이 광경을 동생한테도 보여주기 위해 동영상을 찍었다. 아무래도 병원에 있다 보면 불꽃놀이를 구경할 기회가 없으니깐 사진과 동영상을 가득 남겼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고 한다. 불꽃축제를 보는 이 시간도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이 활기가 넘치는 공간과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간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 그 한 발자국 차이는 상상이상으로 너무나도 컸다. 하루하루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의 차이가 너무 커서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여기서 뒤돌아서면 사람들의 실낱같은 희망과 고통이 넘쳐나는 곳으로 돌아간다. 무엇이 됐든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병원보다는 세상 밖이 좋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에 다시 돌아가려는 발걸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즐거움과 울적함의 그 어느 사이에 존재했다.


 불꽃축제가 끝나고 나서는 빠져나가려는 차들로 인해 도로가 정체되었다. 차를 타러 돌아가보니 이미 입구로 나오기 위한 차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반짝이는 헤드라이트와 하늘에 떠있는 달의 풍경이 너무나도 예뻤다. 오늘따라 유독 달이 크고 밝은 것 같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부터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만 보면서 살아가고 싶다. 한참 동안 달을 구경하다가 차를 탔다. 나가려는 차들이 어찌나 많은 지 주차장을 빠져나오기까지 2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자동차는 제자리인데 시간은 어느덧 11시를 넘어 12시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도로가 마비되어 정체되어 있는 이 시간마저 병원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1시쯤이 되었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알찼던 하루에 만족감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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