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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벙돈벙 Jul 02.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24 - 편지

2023년 6월 5일 월요일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서 집에만 계속 있었다. 계속 돌아다녔으니 하루정도는 집에 있어주는 날도 필요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신나게 놀다가 지금은 정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참 나란 인간도 종잡을 수 없다. 동적과 정적 그 어느 사이 내 위치는 딱 거기였다.


 집에서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는 않았다. 집안 곳곳을 뒤져서 옛날 앨범도 찾아보고 비밀 일기장도 훔쳐봤다. 그러다 27년 전 삼촌이 엄마 결혼식 날 건네준 편지도 찾게 되고, 오래전 엄마가 나에게 쓴 편지도 발견했다. 같은 내용을 두 장에 쓴 걸 보니 엄마의 똑 부러지는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똑똑하고, 실수 없는 완벽한 어른의 모습이었는데 지금 보면 허점 투성이긴 하다. 엄마를 보는 나의 눈이 변한 건지 아니면 엄마가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편지는 감동이다. 과거를 꺼낸 김에 친구들한테 받았던 편지도 읽어보았다. 마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손 편지를 좋아한다. 아무리 카톡으로 장문의 문자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손편지만큼의 설렘은 없다. 딱딱한 텍스트체와 개성이 넘치는 글씨체부터 읽는 기분이 다르다. 편지의 문체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엿볼 수 있기도 하고 지웠다 썼다 반복했던 흔적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상상이 돼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편지를 읽다 보면 내가 사랑할 만한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동안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손편지의 묘미다.


 그렇게 한참 동안 편지 구경을 하다가 친구들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나갈 준비를 했다. 우선은 내일 엄마랑 교대를 해야 돼서 내과에 들려 코로나 검사를 받고 친구들을 보러 갔다. 친구 중 하나가 연애를 한다는 소식에 그 이야기 듣기 위해서 모였다. 원래 남의 연애사가 가장 재밌는 법이다. 지금 현재 나한테 있어서 연애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대리 설렘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무 탈 없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나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올해는 글러 먹었다. 동생이나 정성스럽게 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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