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덤벙돈벙 Jul 04. 2023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보호자의 일기 125

2023년 6월 6일 화요일


 시간은 참 얄궂다. 즐거운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고통의 순간은 억겁의 인내를 가지게 만든다. 오늘은 억겁의 순간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일단 병원으로 가기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에 폐결석으로 수술을 받으셨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상태가 좋아 보이셨다. 보통은 연세가 있는 분들은 수술을 하고 나서 입맛이 없어진다거나 기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괜찮아 보이셔서 마음을 한결 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내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는 삼겹살을 굽느라 바쁘다. 손녀가 굶을까 봐 늘 노심초사하는 할머니의 걱정으로 점심부터 푸짐한 한 끼를 먹었다. 내가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할머니는 병원에 가져갈 짐을 챙겼다. 그 사이에 엄마랑 통화를 했는데 병원까지 차를 끌고 오지 말란 소리에 화가 날 뻔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데 지하철을 갈아타고 병원까지 걸어가는 게 맞는 거냐며 따졌고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락을 했다. 늘 가족에 대한 걱정이 끊임이 없었던 할머니는 엄마가 굶고 있을까 봐 먹을거리를 한가득 짊어지고 차에 올랐다.


 할머니는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대견해했다. 항상 차에 탈 때마다 유모차를 타고 다니던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커서 운전을 하고 있냐며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운전을 소심하게 한다면서 나처럼 시원스럽게 하지 못한다며 비교를 했다. 그래서 오늘도 병원까지 차를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다면서 툴툴거렸는데 할머니는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이해를 하라며 나를 달랬다. 그래도 딸이라고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 엄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나이를 먹어도 어쩔 수 없나 보다.


 할머니는 내년에 쉰을 바라보는 딸도 신경 써야 하고 손녀인 나도 신경 써야 하고 여러모로 챙겨야 할 가족이 많았다. 어떤 일이 생겨서 할머니가 나를 걱정할 때면 이런 말을 한다. “내가 괜히 너희를 키워서 이렇게 신경 쓸 일을 만든다. 차라리 너네 엄마가 나랑 동생을 맡아 달라고 했을 때 단칼에 거절을 했어야 했다. 그땐 혼자 일하는 내 자식이 너무 안쓰러워 보여서 키웠는데 이제는 너네가 더 신경이 쓰인다. “    


 할머니만의 특유한 화법이 있는데 굉장히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애정이 묻어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은 할머니의 진심을 알고 익숙해져서 상관이 없지만 어릴 때는 저 말을 듣고 불안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성격이 많이 유해졌지만 옛날에는 호탕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여장부 느낌이어서 그런지 말도 직설적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부모는 어쩔 수 없이 1순위가 자식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운해하면서 항상 몇 순위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말을 잘 들으면 1순위가 되는 거고 아니면 4순위라고 했다. 나는 그 후로 할머니한테 매번 몇 순위인지 확인을 했고 끈질긴 질문 끝에 원하던 말을 듣긴 했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든 1순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와 동생이 싸워서 속을 썩이거나 말을 안 들을 때면 엄마한테 데리고 가라고 해야겠다며 말을 했고 엄마, 아빠 말을 안 들을 때면 자식을 속 썩이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싫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은연중에 할머니의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보면 할머니도 속이 상해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게 상처로 다가왔다. 어차피 나는 아무리 잘해도 엄마를 이길 수 없고 할머니의 사랑을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우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예전에 울 일이 많아서 누가 우는 것만 봐도 심장이 쿵쾅거린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우는 것을 스스로도 용납하지 않았고 우울하거나 외로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본래의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기분이 좋았었는데 한순간에 푹 가라앉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올 때처럼 심장이 덜컹하고 떨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다 몇 분 후면 다시 괜찮아졌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우울감이 수시로 찾아왔었다. 그뿐 아니라 나는 밝은 도시 불빛을 유독 좋아했다. 그래서 저녁에 차를 타고 집을 갈 때면 항상 시내 쪽으로 가자고 말했다. 그때는 단지 내가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알고 보니 그건 어둠이 주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싫어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어두운 모습을 보이면 아무도 날 원하지 않을까 봐 오히려 그럴 때마다 과하게 밝은 척을 했다. 그게 유일하게 나를 지킬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나를 생각 없고 한 없이 밝은 아이라고 말할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면서도 씁쓸했었다. 나는 늘 씩씩하고 강했다. 아니 그렇게만 해야 했다. 어른들 친구들은 나를 모두 강하고 센 아이로 알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나약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어린 시절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는 생각은 더 깊은 외로움으로 자리 잡았고 사춘기 때는 원망으로 변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가족 모두가 미워졌었던 시기도 있었다. 예전에는 할머니가 엄마 편을 들 때면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났지만 지금은 질투가 나지도 않는다. 이제는 그런 걸로 내가 밀려났다는 오해를 하지 않을 정도의 어른이 되었기에 아무렇지 않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대학병원 영수증과 서류를 엄마한테 건네주고 다 같이 면회실로 내려가 할머니가 가져온 자색 감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엄마와 할머니는 떠났고 또다시 병원에는 나와 동생만 남겨졌다. 또다시 시작이다. 동생의 저녁을 챙겨주고 불이 꺼진 병실에 나 홀로 깨어있다. 병원에서 사색을 하며 글을 쓰다 보니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은 내 안에 남아있는 감정 찌꺼기들을 모조리 비워내고 다시 시작하라는 뜻 같기도 하다. 그런데 잘할 수 있을지는 장담을 못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