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갓꽃
싱그러운 봄날, 작은 텃밭 한편에 쑥갓 서너 포기를 심었다.
바람결이 부드럽게 흙을 쓰다듬고, 햇살은 살며시 땅 위에 내려앉았다.
비옥하지도, 넓지도 않은 작은 공간이지만 손끝으로 흙을 고르고,
아침마다 물을 주며 조용히 마음을 담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자, 연둣빛 어린잎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쑥갓의 향긋한 숨결이 그 작은 잎사귀마다 배었다.
그 잎을 따서 무치고, 상추와 함께 밥을 싸 먹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봄의 향.
하루하루 자라는 잎들을 바라보며, 소소한 텃밭이 주는 넉넉한 위로를 느꼈다.
바쁜 일상에서도 작은 자연은 묵묵히 자라며 삶에 쉼표 하나를 선물해 주었다.
쑥갓은 생각보다 빠르게, 더 무성하게 자라났다.
손이 닿지 못한 사이 잎들은 자라 질겨졌고, 수확의 시간은 어느덧 멀어졌다.
아쉬운 마음에 땅을 내려다보며 괜한 미련이 들었다.
좀 더 부지런히, 조금만 더 자주 다가갈걸.
그런 후회가 묵직하게 마음 한쪽을 눌렀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텃밭에서 환한 노란 꽃들이 바람에 일렁였다.
쑥갓이 피워낸 꽃이었다.
고요한 햇살 속, 바람이 스칠 때마다 꽃잎은 살랑살랑 춤을 췄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먹지 못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먹지 않았기에 피어난 것.
자연은 그런 방식으로 새로운 말을 걸어왔다.
수확하지 못한 것을 탓하던 마음은 조금씩 녹아내렸다.
욕심을 내려놓자, 비워진 자리에는 다른 빛깔의 충만함이 들어섰다.
그것은 기쁨이라기보다는 잔잔한 감사였다.
매일 마주하던 식탁 대신, 눈앞에 피어난 생명의 색이 말없이 위로를 건넸다.
살다 보면 우리도 그렇다.
애써 계획한 일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 손에 쥐려다 놓쳐버린 관계들, 애정이 지나간 자리.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자연은 매번 말없이 가르쳐 준다.
쑥갓의 노란 꽃처럼, 놓친 자리에도 다시 피어나는 삶이 있다.
인생이란, 거창한 설계보다 가끔은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더 큰 선물이 된다.
매일 무언가를 이루고, 증명하고, 얻어야만 의미 있다고 느끼는 세상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는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삶의 결일지 모른다.
텃밭 앞에 앉아 흔들리는 꽃을 바라보는 그 고요함처럼.
자연은 우리보다 조급하지 않다.
늘 제때 피고, 제때 시들며, 때가 되면 다시 자라난다.
그 질서 안에서 허무도, 기다림도, 충만도 모두 제자리를 찾는다.
그러니 마음 급할 필요도, 지나간 것을 붙잡을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들을 바라보면 된다.
쑥갓꽃이 내게 속삭인다.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무엇을 놓쳐도 삶은 다시 피어난다고.
그러니 오늘은 잠시, 눈앞에 있는 작고 환한 꽃 하나를 바라보자.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바라는 모든 삶의 진실이 그 속에 다 들어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자기만의 쑥갓꽃을 피워내고 있을 것이다.
말없이 피어 있는 그 꽃을 알아보는 마음이 있다면,
삶은 이미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