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나 알을 씹으며, 천천히 자라온 시간을 되새긴다

키 큰 옥수수

by 루씰

올해 우리 텃밭의 옥수수는 유별났다.

흙을 헤집으며 심은 작은 씨앗들.

싹은 느리지만 단단히, 그리고 곧게 자라났다.

잎은 하늘을 향해 열렸고, 줄기는 망설임 없이 위로만 뻗어갔다.

마치 땅보다 하늘에 더 이끌리는 아이처럼.


이웃의 옥수수들은 벌써 고운 수염을 드러내고,

노랗게 살 오른 열매를 품었지만,

우리 옥수수는 묵묵히 줄기만 키웠다.

나는 불안했다. 마음속에서 자꾸 의심이 일었다.

‘혹시 이 아이들,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가장 먼저 흔들리고, 가장 먼저 쓰러진 것도 옥수수였다.

긴 줄기만큼이나 외로웠고, 또 위험했다.

뿌리째 쓰러진 옥수수를 본 아침, 마음 한쪽이 덜컥 무너졌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흙을 다시 북돋고, 줄기를 일으켜 세우는 그의 손길엔 묘한 믿음이 배었다.

무너진 걸 다시 일으키는 일, 그건 단순한 돌봄이 아닌 깊은 사랑이었다.

“두고 봐. 틀림없이 열매도 아주 실할 거야.”

그 말에는 예언 같은 확신이 스몄다.

반면 나는, 쓴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쟤들 정말 옥수수 맞아? 혹시 수숫대는 아니겠지?”


여름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어느 날.

햇볕은 모든 것을 지우듯 내리쬐었고, 매미 소리는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때, 기적처럼 아이들이 열매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금빛 수염이 햇살에 반짝였고,

바람에 일렁이는 잎사귀는 여름의 노래 같았다.

줄기는 단단했고, 열매는 늦게 피운 만큼 더 깊고 풍성했다.


나는 키 큰 옥수수 사이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음이 따라 자라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땅만 보며 걷던 일상에서, 처음으로 높이를 가진 감정을 배웠다.

손을 뻗어 옥수숫대에 얹어보면,

그 안에 고요한 여름 한 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더위, 소나기, 바람과 태양.

그것들이 축적된 시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햇빛을 더 많이 받으려고 그랬어. 더 멀리 세상을 보고 싶었거든.”


이제야 알 것 같다.

남들보다 늦게, 남들과 다르게.

그러나 자신의 속도로, 묵묵히 성장해 온 그 용기.

남보다 앞서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키 작은 옥수수들이 먼저 익고 박수를 받을 때,

이 아이들은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사람도 그렇다.

누군가는 일찍 피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 뿌리를 내린다.

조급한 시선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햇살을 기다리는 사람들.

결국 그들은 더 깊고 단단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옥수수를 거둔다.

하나하나 알을 씹으며, 천천히 자라온 시간을 되새긴다.

키 큰 옥수수가 내게 속삭였던 것들,

그 조용한 철학을 마음 깊이 간직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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