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강낭콩밭
무더운 여름, 햇볕은 쉼 없이 내리쬐고
나는 며칠 텃밭을 돌보지 못한 채 바쁜 일상에 묻혀 지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문득 텃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르고, 바람 한 점 없는 그날,
나는 조용히 멈춰 섰다.
그곳엔 한때 생기 넘치던 강낭콩들이
줄기부터 잎사귀까지 바스러질 듯 축 처져 있었다.
초록빛 잎사귀는 군데군데 마른 갈색으로 바뀌었고,
줄기들은 힘없이 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마치 땡볕을 견디다 못해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듯,
제 몸을 내려놓은 채 가만히 주저앉았다.
살아있던 것들이 조용히 물러가는 풍경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말을 잃었다.
흙 위에 누운 것처럼 몸을 낮춘 강낭콩 줄기들은
더 이상 자라려는 기색 없이
그저 ‘지금 여기’에 머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괜히 손을 뻗어보았지만,
그 시듦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긴 호스를 들어 차가운 물을 천천히 부어주며,
이 작고 연약한 생명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말없이 견뎌왔을지를 떠올렸다.
그 풍경은 내게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했다.
젊은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 시들어간다면, 당연히 되살려야 했고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다.
늘 손을 뻗고, 무언가를 붙들고,
어떻게든 피워내야만 했던 시간들.
그렇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시드는 시절도 있다.
그저 땅을 바라보며 묵묵히 한 철을 견뎌야만 하는 시간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자연도, 사람도 늘 푸를 수는 없다는 걸.
때로는 기운이 빠지고, 말없이 멈춰야만
비로소 다시 자라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시든 강낭콩을 보며 나 자신을 본다.
삶이 언제나 활기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내 안의 어떤 계절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푸르렀던 날들이 있었고,
이제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때가 왔음을
내 몸과 마음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노년의 삶이란,
무언가를 새로 세우기보다
지나온 것을 되새기며 다듬는 시간이다.
언제나 앞만 보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걸어온 길을 한 발 한 발 돌아보며
남은 여정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다.
자연은 실패하지 않는다.
꽃이 피고, 지고, 다시 피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발견한다.
시듦은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다.
생명은 그렇게 자신을 다듬고 가다듬고,
또 한 번 피어날 날을 위해
잠시 고요해지는 것이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지 않기로 한다.
무엇을 해내지 못한 날에도,
그저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였음을
강낭콩밭이 가르쳐주었으니까.
삶은 피는 법만이 아니라
지는 법도 배워야 하는 여정이다.
그리고 지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다시 피어나는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시든 강낭콩밭이 조용히 속삭인다.
“괜찮아, 지금은 쉬어가도 돼.”
그 속삭임에 기대어
나는 오늘을 조금 더 부드럽게 살아낸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게 삶은 다시 나를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