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첫 번째 항암 후,
아빠는 암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보이지 않는 암은 남아있다고 했지만).
당일에 돌아가실 거라고 가족을 소집했던 응급실을 지나,
며칠 후면 돌아가실 거라고 했던 중환자실을 지나,
패혈증은 재발이 잦아 위험하다고 했던 우려를 지나,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4년여를 더 사셨다.
허나 주어진 삶은 녹록지 않았다.
가끔 아빠는 말하곤 했다.
남은 삶이 이리 고통스러운데... 왜 나를 살려주셨을까...라고.
그때는 나도 궁금했다.
온전히 나아야 기적이 아닐까?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는 이날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빠가 돌아가신 후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모든 순간이 고통은 아니었다.
트로트를 부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드라마를 보던 평범한 하루가 있었다.
그 기억이 지금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고통스러워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울 때,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누던 어느 날로 시선을 돌려주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기이한 일.
기적.
중환자실에서 나오자마자 의사 면담을 신청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 앞 복도를 계속 걸어 다녔다.
회진 시간에 복도를 지나는 감염내과 주치의 팀을 만났다.
아빠가 너무 괴로워한다고, 가족이 24시간 있을 테니 일반 병실로 옮겨달라고 애원했다.
좀 더 지켜보자고 의사가 말했다.
그날 저녁, 아빠는 일반 병실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간병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아직도 나쁜 상태라 갑자기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지만,
아빠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병실이 좋다고 하였다.
그사이 아빠의 발음은 어눌해져 있었고 잇몸 전체는 까만색이 되어있었다.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던 아빠는 느리게 입술을 움직이면서 그동안 밀린 말을 하였다.
일반 병실로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빠에게 균이 발견되었다.
병원에 오래 입원하거나 항생제를 많이 쓴 환자에게 생기는 균이라고 했다.
일반 사람에게는 문제 되지 않지만, 환자에게는 감염 위험이 있어서 1인실로 격리되었다.
패혈증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청결과 위생에 특히 신경 써야 했다.
코로나 상황이라 더 조심해야 하기도 했다.
나 때문에 아빠가 감염될까 봐 걱정되어 수시로 손소독제를 발랐다.
피부가 약해서 그런 건지 손등이 갈라지고 피가 났다.
비누로 더 자주 씻는 방법을 택했다. 하루에 백번도 넘게 손을 씻게 되었다.
아빠를 돌볼 때는 멸균 라텍스 장갑을 껴야 했는데, 나에게 라텍스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검색을 통해, 라텍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니트릴을 사용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 후 멸균 니트릴 장갑을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매일 새로운 상황이 생겼다.
아빠가 나아지고 있는 건지, 어떤 증상이 있는데 이건 괜찮은 건지 궁금함이 쌓여갔다.
회진 오는 의사를 종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다녀가면 들은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필기한 것을 읽어보며 어제보다 아빠 상태가 나아졌는지 확인하고 다음에 질문할 내용을 적어놓았다.
진료 때 무엇을 이야기할지 써놓지 않고 외우고만 있었더니,
의사를 만났을 때 긴장하여서 해야 할 말을 못 하거나, 들은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진료 전후로 메모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병실 생활로,
보호자인 나는 이런저런 노하우를 쌓아가며 적응하고 있었고,
일반 병실로 옮겨도 위험하다고 했던 아빠는 더디지만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