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병원 옮기자.

2-6.

by 생각책가방


퇴원이요? 이 상태로요?


1인실로 옮긴 지 열흘이 되어 갈 무렵,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하였다.


몸에 연결된 여러 관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집에 가냐고 물었다.

다른 환자들도 그렇게 퇴원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암 환우와 보호자가 많이 가입한 카페에서, 아빠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병원은 보통 입원 후 2주쯤 될 무렵에 퇴원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최장기간 있어도 3주 이상은 입원하기 힘들다는 글을 여러 개 보았다.


병원 내에 진료협력센터라는 곳이 있고, 그곳을 통해 옮길 수 있는 병원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협력병원 목록을 보고, 정보를 검색하고, 보호자가 있을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보고 정리한 후, 가지고 가야 할 서류를 준비했다.


퇴원 전 두 개의 관을 뺐지만, 양쪽 옆구리에 PCN(콩팥에 관을 삽입하여 연결된 소변주머니)을 한 채로 이동해야 했다.


PCN 없이 일상을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인공 방광 수술의 장점인데,

그렇게 큰 수술을 받은 의미가 없어져버린 슬픈 순간이었다.



2020년 8월 말

사설 응급차를 타고 지역 병원으로 이동하였다.


병실은 좁았고, 보호자가 챙겨야 할 일은 더 많았다.

이전 병원과는 다른 환경이어서 새롭게 적응해야 했다.

한 달 가까이 입원해 있었고 이때는 대부분 엄마가 간병하였다.


아빠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힘겨운 상태였다.

패혈성쇼크와 병원 생활로 인한 후유증 때문인지 화와 짜증이 많아졌다.



2020년 9월 말

응급실부터 지역 병원으로 옮겨 퇴원하기까지,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 지난한 과정을 견딘 아빠가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안방으로 들어간 아빠에게, 손재주 없는 딸이 침대 난간을 설치했다고 자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붙잡을 수 있어야 하고, PCN과 연결된 유린백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해서는 난간(사이드레일)이 필요했다(그땐 환자용 전동 침대를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는 이리저리 살펴본 후, 침대 난간에 유린백(PCN과 연결된 소변주머니)을 끈으로 묶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외출해야 할 때, PCN을 착용하는 아빠만의 방법도 찾았다.

아빠는 새로운 것이 생기면 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곤 했다.



2020년 10월

인공 방광 수술을 받았던 병원으로 외래 진료를 다니며, 추적검사를 받았다.


퇴원 후 첫 검사 결과,

신우(신장에서 만들어진 소변이 모여지는 곳)에서 요관(신우에서 방광으로 연결된 길)으로 이어지는 곳

뭔가 막힌 것이 보인다며, 일단 지켜보자고 하였다.



2020년 11월

한쪽 PCN을 제거하였다. 양쪽 다 PCN 없이 생활하면 좋겠지만, 한쪽이라도 없어지니 거동하기가 조금 더 편해졌다. 간호할 때 소독하기도 수월해졌다. 아빠는 남은 PCN도 얼른 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지냈다.



이후

계속해서 외래 진료를 통해 정기적으로 추적 검사를 받고, PCN을 교체하는 시술(콩팥에 관을 삽입하여 소변을 바깥으로 배출하게 하는 시술. 몸 바깥의 관과 연결된 주머니로 소변이 배출됨)을 받으며 지냈다.

심장이 좋지 않아 순환기내과 진료도 다녔다.


집에서 엄마와 나는, 하루 또는 이틀에 한 번씩 PCN을 소독하고 관이 삽입된 부분을 살펴봤다. 유린백을 비우고, 의료용품을 주문했다. 어쩌면 일상생활이 회복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2022년 1월

MRI 검사 결과 암이 의심된다고 하였다.

만약 암이 맞다면 콩팥과 요관을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 수술은 인공 방광 수술을 했던 주치의가 아니라 다른 의사가 한다고 하였다.


이후 행해진 요세포 검사 결과에서 암을 확증할 수 없으니, 의사는 3개월 후에 오라고 하였다.


MRI 검사 결과로 암이 의심된다고 하였는데, 요세포 검사 결과만 믿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 병원에서 여러 일이 있었다.

이전부터 해온 고민에 대한 결론이 내려졌다.


진료실을 나온 후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병원 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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