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이게 뭐야?”
어제저녁.
집에 도착하니, 편지봉투를 보여주며 엄마가 물었다.
열어보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카드)이 있었다.
엄마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라는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아빠가 떠올랐고, 혹시 딸이 아픈 건 아닌지 염려되었다고 했다.
“이거는 미리 자기 의사를 밝혀놓는 용도야. 전에 작성할 거라고 얘기했잖아.”
급한 것도 아닌데 뭐 하러 벌써 다녀왔냐는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안내문을 읽어 보았다.
"당신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등록증이 붙어있었다.
3주 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러 갔고, 그때 등록증도 신청하였다.
등록증을 보니 상담해 주었던 간호사님이 떠올랐다.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푹푹 쪘던 여름이 거의 지나가던 무렵인 9월 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투병 과정을 겪으며, 나도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던 다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등록기관에서만 작성할 수 있다.
등록된 곳 중, 진료받은 적이 있던 병원으로 전화 예약을 한 후 방문하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러 가던 날.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빠의 장례가 치러진 병원이었다. 장례식장과 병원 건물은 달라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팠던 아빠의 모습과 눈을 감던 마지막 날이 떠올랐다.
'아... 작성할 때도 울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며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일찍 도착했던지라 아래층에서 대기하다가, 예약 시간에 맞춰 올라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곳은 작은 공간이었다.
이름과 신분증을 확인하였다.
테이블에 상담 간호사님과 마주 앉았다.
자신을 소개하며 연명의료 결정제도 안내서를 주는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고 친절했다.
먼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싶은 이유를 물었다.
질문을 듣자마자 눈물이 고여 휴지를 꺼냈다.
간호사님이 놀라며 왜 우는지 물었다.
호스피스에 있던 아빠가 작년에 돌아가신 것이 떠올라서라고 대답했다.
이야기를 들은 간호사님이 슬퍼하며 말했다.
“얼마 안 되셔서... 어떻게요...”
눈물이 계속 흘러서 당황했다. 이렇게 아빠가 많이 떠오를 것이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나중에 신청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간호사님께 미안했다.
그러나 간호사님은, 2년쯤 지나야 조금 나아질 거라고. 아직 슬픈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거라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는다고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울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어 보기도 하고,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마음을 건조하게 말리려고 노력했다.
눈물을 그치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설명이 시작됐다.
아빠의 투병 과정을 연상시킬 거라 들을 때 힘들 것 같다는 걱정도 해주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누구나 향후에 있을지도 모를 안 좋은 상황에 대비해서,
나의 의사를 밝혀놓는 것이다. 작성 후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
호스피스에 관한 설명도 들었다. 아빠와 함께 들었던 내용들이었다. 아빠가 걸어간 과정이 머릿속으로 스르륵 지나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던 날. 연명의료계획서 설명을 듣던 날. 마지막 진료일 날 호스피스에 관한 이야기를 듣던 모습이 붕붕 떠다녀서 잠시 멍해졌다.
설명을 다 듣고, 태블릿에 서명하였다. 등록증은 우편으로 오도록 신청하였다.
서명하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간호사님은,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내 마음이 어떨지 너무 잘 알 것 같다고.
아빠가 떠올라 병원에 발 들이기도 힘들었을 거라며, 오느라 애썼다고 위로해 주었다.
친절히 상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문을 나섰다.
아빠가 더 그리워져서 힘들었지만, 아픈 마음을 공감받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슬프고도 따뜻한 뜻밖의 위로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낯선 이의 위로가 힘이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