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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류소는 OO 병원입니다.

기억하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by 생각책가방


"이번 정류소는 OO 병원입니다"


버스 정류장 안내 음성에 감고 있던 눈을 들어 창밖을 본다.

완화의료센터(호스피스)로 가기 전, 9일간 아빠가 입원해 있던 병원이다.


안내 음성에 병원에서의 일상도 함께 깨어난다.




다니던 병원에서의 마지막 진료를 받은 지 3일 후, 오르는 체온과 기침 등의 증상으로 2차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하기 한 달 전쯤부터, 방바닥에 옷을 깔아 놓고 순서를 매기며 여러 번 확인하는 등의 반복 행동을 하던 아빠는, 입원 후 섬망 증세가 더 심해졌다.


수액과 진통제, PCN(콩팥에 관을 삽입하여 소변을 바깥으로 배출하게 하는 시술. 몸 바깥의 관과 연결된 주머니로 소변이 배출됨)의 줄을 꼬거나 몸에서 빼려고 하기도 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올라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아빠 혼자 움직이지 못하기에 내려오고 싶어 하면, 몸에 연결된 줄이 꼬이거나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자세를 하나씩 바꿔줘야 했다. 다리를 겨우 디딘 아빠가 넘어지지 않도록, 허리를 안고 일으켰다. 올라갈 때는 시간이 더 걸리고 과정도 더 힘겨웠다. 아빠의 팔뚝은 내 팔목보다 얇았지만, 복수와 부종으로 15kg 이상 부어 있었다. 아빠의 무게를 버텨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딸. 아빠 좀 내려줘”


“아빠. 방금 올라가고 싶다 했잖아. 올라간 지 5분도 안 됐어.”


내려오고 싶어 하는 아빠를 향해,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아빠는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미안해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내려달라고 했다.


보호자용 의자를 다시 펼쳐서 벽에 붙인 후, 겨우겨우 앉힌다.

몸을 가눌 수 없어 흔들리는 아빠가 넘어질까 봐 팔을 꽉 붙든다.


내려오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던 아빠는 금세 다시 올라가고 싶어 했다.


체력의 한계가 극에 달했던 나는, 결국 아빠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곳에 있던 날 중 단 한 번의 짜증이었지만,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내내 후회로 남아 있다.


안절부절못하며 침대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행동도 섬망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을,

이후 옮기게 된 완화의료센터(호스피스) 의사에게서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통증으로 괴로워하던 아빠의 얼굴. 글자 쓰기 놀이를 하자며 아이가 되어 말하던 모습. 침대에서 내려오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표정이, 정류장 음성과 함께 지나간다. 내릴 정류장이 다가올 때까지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마스크가 입을 가려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빠... 아빠...’


마스크 속에서 나지막이 불러본다.

아빠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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