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s and downs
나에게는 노랑 노트가 있다.
6년 전에 몸이 조금 오래 안 좋았고, 그 때 당시도 아니고 오히려 조금 회복되는가 싶을 때서야 문득 유서(?!)같은 것을 한 번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일기장하고는 달리 적절한 노트북을 찾고 있는데 마침 어디서 생긴건지 모르는 A4 사이즈 노랑 종이가 한 보따리 있었고 그래서 그냥 종이를 쌓아놓고 앉아서 한장씩 페이지를 매겨가며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영어로 살다보면 한국어로 쓰려고 하면 자주 어순이 틀리기 때문에 옛날에는 몇 장이고 그냥 쓸 수 있었던 글도 만년필로 쓰려면 요즘에는 대충 구상을 하고 쓰고 아니면 연필도 많이 쓰는데, 그 노트는 아무 볼펜으로 틀리면 틀리는데로 브이 마크로 끼워 넣어가며 그냥 무작정 썼다. 그 때 자잔한 글씨로 며칠 걸려서 한 삼십페이지 쓴 것 같다. 그리고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넣어놓았다. 보통은 대충 아무나 읽으라고 쓰거나(그전에는 블로그나 이런 글), 나 보라고 쓰거나(일기), 특정인 대상(돈 받고 하는 일이나 편지)으로 썼으니까 의사 전달이 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읽어보는 게 수순이었는데 그 노트는 쓸려고 쓴거지 읽으라고 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잊혀진 채 책꽂이 한 구석에 내 유서 아닌 유서는 꽂혀있었다. 그리고, 또 뭔가 계기가 있어서 가슴이 답답하던 중 이 노트가 생각났고, 끄집어 내어 마지막 줄에 한 페이지 반을 더하고 또 놓어놓은 것이 작년 가을이다.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것은 물론, 오늘 내가 그 노랑 노트를 꺼내었고, 세 페이지를 더했기 때문이다.
삶은 본래 직선 한 줄인데, 살면서 뭔가 literally 글자 그대로 '굴곡'이 있으면 그 때마다 한 방향으로 조금씩 꺾어지고, 그렇게 조금씩 좁혀져 가다가 가운데 다다르면 끝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문득 누구는 오른 쪽으로 누구는 왼쪽으로, 라든가, 왜 한 쪽으로만인가, 이런 불만이 생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지만 메타포metaphor는 메타포로 끝나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법이다.라고 둘러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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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셜,
이 '굴곡'을 ups and downs라고 한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는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을 상상해도 좋지만, 요즘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차용하는 말처럼 기분이 좋을 때는 up을 쓰고 좋지 않을 때는 down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자도 빠르고 경쾌한 것은 Upbeat이다. downbeat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만.
up는 좋은 일, 말하자면 운 좋은lucky에 해당하는 말들이다. 좋은 '상황'을 묘사하는 말들이다.(대충 비슷한 의미끼리)
현재 운 좋은 상태 : fortunate, in luck, blessed, blessed with good luck, successful, prosperous
전반적으로 운 좋은 팔자 : advantaged, favored, born under a lucky star,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일순 좋은 운 : providential, timely, opportune, serendipitous, expedient,heaven-sent, auspicious, propitious, felicitous, convenient, fortuitous, accidental, (unexpected/unanticipated/unforeseen/unlooked-for/coincidental) + fortune/luck
그리고 그래서 느끼는 행복한 감정, happy 행복하다의 유의어는
만족 : contented, content, satisfied, gratified,
즐거움 : cheerful, cheery, merry, joyful, jovial, jolly, gleeful, carefree, delighted,
untroubled, in good spirits, in high spirits, in a good mood, lighthearted, good-humored, buoyant, joyous
행복한 표정 : smiling, beaming, grinning, glowing, radiant, sunny, blithe, beatific, blessed;
좋아서 흥분한 : thrilled, exuberant, elated, exhilarated, ecstatic, blissful, euphoric, overjoyed, exultant, rapturous, rapt, enraptured,
in seventh heaven, on cloud nine, over the moon, walking on air, beside oneself with joy, jumping for joy; on top of the world, tickled to death, as pleased as Punch, on a high, as happy as Larry; happy as a clam;
그리고 down, 즉 불행한 '상황'에 해당하는 단어들은,
tragic, unhappy, unfortunate, awful, wretched, pitiful, depressing, miserable, grievous, traumatic, pitiable, unfortunate, regrettable, sorry, wretched, deplorable, lamentable, pathetic, shameful, disgraceful
그리고, 그래서 sad 슬프다,의 유의어는,
unhappy, sorrowful, dejected, regretful, depressed, downcast, miserable, downhearted, down, despondent, despairing, disconsolate,
out of sorts, desolate, wretched, glum, gloomy, doleful, dismal, (feeling) blue, melancholy, melancholic, low-spirited,
mournful, woeful, woebegone, forlorn, crestfallen, broken-hearted,
heartbroken, inconsolable, grief-stricken,
sorrowful, cheerless, sorry, upsetting, distressing, dispiriting,
heartbreaking, heart-rending, agonizing, harrowing; distressful
물론 저 많은 단어를 지금 생각난데로 쓴 것은 아니고 (허허. 꼼꼼한 것이 더 중요한 법) 동의어 사전을 일단 찾았고, 각각 다 조금씩 다른 각도와 정도로 요긴하게 잘 쓰이는 것이라서 많이 지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잘 안 쓰이는 것은 최대한 지우고,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 본 것이다.
지금 문득 눈에 띄는 특이할 만한 것은, 행복의 종류는 조금씩 다른 의미의 단어들로 다양한데, 불행한 것은 도대체 비슷비슷하게 우울하고 칙칙한 단어들이라서 분류를 해보았지만 번역을 할 의욕도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정음사 / 동완 譯) 라는 것과는 반대다.
내가 읽은 영문을 적어도 되겠지만 원문은 러시아어이기 때문에 무의미하겠다.
Все счастливые семьи похожи друг на друга, каждая несчастливая семья несчастлива по-своему.
라고 한다 쿨럭. (러시아어는 사연이 있어서 현재 공부중이긴 하지만 알파벳을 떠듬떠듬 읽을 줄 아는 정도밖에 못함 :e.g.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 심봤다!!! )
철학자 질리안 로즈의 ‘Love’s Work’에는 ‘행복한 사랑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불행한 사랑은 모두 엇비슷하다. 가장 불행한 사랑은 행복했다가 불행해진 사랑이다’는 말도 있지만 말이다.
참고로, 울먹이기 전 단계, 목이 메이는 것을 lump in the throat라고 하기도 한다. 가뜩이나 기분도 안 좋은데 목에 lump 덩어리같은게(!) 발견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목구멍에 뭔가가 있는 그 느낌을 말한다. (그렇다. 암 덩어리를 lump라고도 하는데 설탕 덩어리도 lump of sugar이라고 하니까, 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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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펼쳐놓고 악필로 꾹꾹 누르면서 써내려가다보면 생각도 정리되고 좋다. 모든게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말을 해도 마음이 먹기가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노랑 종이는 아주 많이 남아있으니까 이 유서를 다 쓰고 나면 죽는다고 괜스레 비장한 결심을 해도 좋을 것이다. 아이는 한글을 잘 못하지만 언젠가 넌지시, 내가 얼결에 일기를 남기고 죽으면 읽겠느냐 물었더니 한 번 읽어보겠다고 의욕을 보이길래 반드시 다 태우고 죽어야겠다는 결심을 한적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집안에 내려오는 엄마의 손 레시피' 따위는 요즘엔 모두 인터넷에 있으니, 정말 유서라면 통장번호가 되지 않을까.
어느 정도 마음이 다 개켜졌다 싶어서 다시 읽어볼 필요도 없이 종이를 착착 치면서 보니 처음 시작에는 세상에 안경도 안 쓰고 왠 잔글씨를 빼곡히 적었는지 나더러 읽어보라고 해도 못 읽을 정도다. 그렇지, 내가 몇 년 후의 내 시력조차 배려하지 못하는데 누가 누구 배려를 하기를 원하겠나 싶어서 웃고 외려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거지 싶어서.
물건을 찾을 때 사방을 찾아다닌다는 말은 같은 위 아래라도, high와 low를 써서 search high and low 라고 한다. 위도 찾고 아래도 찾고, 그림이 그려진다. 행복은 그런게 아닐까. 감나무 밑에 누워 징징거리고 있을 일이 아니라 열심히 찾아다녀야 얻는 것.
가만있자, 아보카도 맛 아이스크림을 냉장고 바닥에 묻어뒀는데, 그거나 찾으러 가야겠다.
이런 경우는 바닥 bottom을 쓸텐데, hitting rock bottom이라고 하면 바닥친다, 는 뜻 그대로, 땅을 파다가 바위같은 곳을 만나 더이상 내려갈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갈때까지 갔다, 고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아니다. 오늘의 아이스크림은 냉장고 바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