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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Jul 03. 2019

보이지 않아서 보이는 것들(2)

'그런' 것도 모르는데 '그게 아닌' 것은 아는 신비


영어로, 본 단어는 없고 부정적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어 부정 뜻을 가진 단어만 있는 것을 (에미 없이) 홀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orphan negative, 고아 부정형이라고도 하는데, 가령 Strapless끈 없는(드레스 등), 이란 단어는 있고 끈 있는 strapped 이란 말은 쓰지 않고, Reckless 무모한, 이란 말은 있지만 유모 한? reck? 이란 뜻은 없는 식이다.


이런 단어는 또한, Absent Antonyms 반대어 없는 단어, Unpaired Words 짝 없는 말이라고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접두사, 잡미사가 붙지 않은 단어가 없을 뿐이지 반대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딱히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가령 misconstrue는 잘못 이해하다, 즉 오해하다는 뜻이지만 construe라는 말이 없다 뿐이지 이해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lonely negatives 외로운 부정형(어쩐지 중절모를 쓰고 담배를 물고 있을 것 같은 말이다)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부정형 표현 외에 반대의 뜻을 가진 단어가 존재할 이유조차 없는 단어들을 주로 말한다. Disgusted 역겹다, disgruntled 불만스럽다, disheveled 엉망진창 형편없다, 등인데, 겹다, 만스럽다, 안 엉망진창이다, 등의 단어가 따로 있을 이유가 없다고나 할까.

이들 단어들의 반대어는 과거에는 썼으나 도태되었기도 하고, 내공 있는 작가나 언론인들이 일부러 말장난으로 접사를 빼고 말을 만들어 쓰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신조어가 되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가령, Incorrigible버릇을 고치기 어려운의 Corrigible , Indomitable 굽히지 않는의 Domitable, Ineffable형언할 수 없는의 Effable, 의 Intrepid 용맹한의 Trepid 등은 틀림없이 있는 단어들이지만 어떻든 거의 쓰이지 않아서 원어민들 중에도 있는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특이할 만한 단어들이 있는데,

Inflammable은 접두사 in이 떨어진 Flammable과 정확히 같은, 불이 잘 붙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이 경우 in이 강조 접사지 반대 접사가 아님), Innocent에서 in이 떨어진 Nocent의 경우는 반대말이 아니기도 하다.


...


가끔 어떤 분야에서든 매우 훌륭한 사람이 타계를 하면 사람들은 그 같은 사람은 다시없다고 그 상실을 애도하지만, 특히 요즘같이 기술이 사람을 많이 대체하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어디든 무엇을 하는데 '없으면 안 되는' 사람 별로 없고, 누구든 결국 없던 사람이고 없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없다, 와 있다, 차이가 별로 안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 많은 세상에서는 어쩐지, 말하는 사람, 쓰는 사람보다는 듣고 읽는 사람의 없는 자리가 더 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떠들기는 쉽지만 잘 듣는 것이 그만큼 더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고, 짧고 강렬한 매체에 익숙해진 시장에서는 저자보다는 독자가 더 희귀하다는 느낌이다. 뭔가를 만들고 있는 쪽보다 표면상으로 침묵하고 있는 쪽에 더 존재감이 생기는 얼핏 모순적인 일이다.

 

막 플랫폼이 다양하고 넓어지고 있는 시점에 책 출판 시장이 버티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것은 그 물건이 없어도 되는 시점이 온 게 아닐까, 얼마나 더 오래 억지로 살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도 드는 게 사실이다.


무엇을 좋아하나 보다 싫어하냐에 그 사람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고 하듯이, 무엇을 얘기하느냐보다 무슨 말을 삼가는가, 그리고 무엇에 돈을 쓰느냐도 그렇지만 무엇에 돈을 아끼느냐가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곤 한다. 없음, 에 내재하는 정보가 흥미롭다.


<일러스트레이션 Michael Brown/Dreams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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