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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09. 2019

알래스카 가을 이야기(3)

알래스카 석유 판 돈으로 꽃신 사신기

알래스카는 매년 가을, 꼭 9월 내 생일 즈음 (뭐 이렇게까지 전 주민이 축하해 줄 필요는 없는데), 석유 판 돈으로 모인 기금 수익 PFD(Permanent Dividend Fund)을 매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준다.

미국 시민이 아니어도, 영주권자가 아니어도, 유학생이어도, 여행객이어도, 아무튼 ‘1년 동안 합법적으로 알래스카에 거주한’것만 증명하면 정말 순전히 진짜로 거저로 자다봉창격으로 공돈을 주는 것이다.

매년 초에 새로 신청하고 자격요건이 맞으면 가구당이 아니라 일 인당으로 주는데, 크게는 3,000불 정도 된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올해는 가뿐하게 일 인당 1,600불이다. 4월경 세금 환급이 시작될 때처럼 이 돈을 먹으려고 가구, 가전기기, 차들의 세일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세요 알래스카 블랙 프라이데이가 일 년에 두 번 있는 곳


개인이 알래스카로 들어온 날부터 1년이 아니라 1월 1일부터 12월 31일 단위로 가기 때문에 우리가 8월에 들어온 첫해는 받지 못하고 남들 받을 때 부러워서 손가락을 물고 있었긴 하지만, 직업과 거주지가 확실한 주민이라면 몇 달 정도 집을 떠나 있었어도 타당한 이유와 그 사실을 증명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기도 하다.

가령, 우리가 안식년으로 떠나 있던 첫 해는 사유를 인정해서 후반기를 떠나 있었어도 받았는데, 다음 해는 한국에 있는 동안 계약했던 곳과의 기간이 조금 넘어 돌아왔다는 이유로 치사하게 받지 못했다.


나는 처음에 PFD가, 내가 열심히 여물 먹여 키운 소 팔러 오일장 간 할아버지 꽃고무신 사 오시듯이 석유 판 돈을 떼어 주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다른 주보다 비싼 기름을 차에 넣을 때마다 누렁이 밥 주듯 흐뭇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시 말하지만, 매년 ‘석유 팔아 번’ 돈이 아니라, 그 돈을 투자해서 나온 ‘수익금’이므로 2019년 현재처럼 석유 수익 상태가 안 좋아도 주식 시장 상태가 좋은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허탈하던 기억이다.


종종 한국을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고 한탄들 하시지만, 석유라는 게 근본적으로 오래오래 썩은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그 석유라는 맑은 것이 되기까지는 정유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정유 시설은 엄청난 악취가 나니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오지에 지어야 하고, 따라서 정유 비용에 운송비용까지 해서 알래스카는 기름이 나면서도 억울하게도 기름값이 비싼 편인 주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분의 뒷마당에 석유가 묻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석유나 보석 나는 나라치고 그것 때문에 문제없었던 나라도 드물고 말이다. 오늘의 어쩌다 굿 뉴스!


페어뱅크스 시내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가면 석유가 생산되는 알래스카 북단 프루도 베이로부터 남단 항구 발디즈까지 건설된 송유관,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이 관이 드러난 곳을 구경할 수가 있다. 알래스카의 석유는 배, 트럭, 기차 외에도 이 관을 통해 운송된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신나게 달려가 내렸을 때의 감흥은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다. 그냥 거대한 파이프이다.

아무리 입을 헤 벌리고 종일 바라보아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이 큰 알래스카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규모가 놀랍긴 하다.

본래는 주변 자연환경 파괴를 우려해서인지 눈 가리고 아웅인지, 아니면 이게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는 모르지만 다 묻으려고 했는데, 알래스카의 아무리 따뜻해져도 안 녹는 permafrost라는 지하층 때문에 현재, 관 지름 114㎝의 관이 612 km은 묻혀있고 674 km은 지상에 드러나 있도록 건설된 총 1,287km 길이다. 남북한 통틀어 한반도 길이가 967km라는 것을 상기하고, 제주도에서 백두산 너머까지 한반도 중앙을 세로로 한 줄로 연결된 모노레일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 방대하고 장대한 파이프는 누가 관리하는가 하는 의문이 혹시라도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지만) 떠오르실지 모르는데, 당연히 이권이 있는 주요 석유 회사 셋이서 관리하고 있고, 따라서 이들이 알래스카에서는 주요 기부자들이고, 주요 직업 창출자이니 이른바 알래스카‘갑’이다.


알래스카 주립대에 있는 미 전국에 몇 안 되는 Petroleum Engineering 석유공학과는, 졸업 즉시 억대 연봉을 받고 이 유수 석유회사에 취직할 수 있고, 따라서 아주 장래가 밝은 업종이다. 해양학이나 기후학 등 환경 관련 학문도 지역적 특성을 살려 펀딩이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세요 알래스카 너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며 딱 자려고 할 때면 야식 가져다주시는 엄마의 말이 현실이 되는 곳


사실 이 돈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회사에서 주는 보너스야 그거 받으려고 짜장면으로 대충 때우고 야근도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몇백만 원이 떨어지기는 쉽지 않으니 당연히 공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현재 유가 하락으로 알래스카주 정부는 예산 부족으로 허덕이면서도 주지사가 자기 재선을 위한 인기관리로 최대한 나누어 주려고 하는 걸 보면 답답하다.

번듯한 직업이 있어 세금도 제대로 내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거 안 줘도 되니까 주 운영이라도 잘하라고 하지만, 꼭 놀고 있는 영양가 없는 사람이 은근슬쩍 공돈을 움켜 준 손을 안 놓는 법이라서 일단 지속되고 있는 처지지만.

다행히, 석유가 나는 다른 나라나 지역은 이 모델의 문제점을 인지해서 미래를 위해 주 예산에 포함해 잘 굴리고 있다고들 한다.


공돈도 좋고, 누구라도 좋은 교훈을 얻었으니 되었기는 하지만, 나쁜 모델이 되는 것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도 좀 서글픈 일이다.

(가만있거라~~ 매트리스 갈 때가 됐는데, 하고 흥얼거리며 입금 확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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