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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10. 2019

알래스카 가을 이야기(5)

원주민들 native Alaskan (a.k.a Eskimo)

원주민들 native Alaskan  (a.k.a Eskimo > 이누이트, 유픽, 알레우트인 등)


대처에 나와 일반 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알래스카 원주민들도 많지만, 아직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사는 원주민들에게 가을은 월동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사냥해 먹거리를 갈무리하는 시기다.

얼핏 동양인 풍의 얼굴을 가진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백인에 의해 착취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혼혈인 사람도 많이 보이고, 백인의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흔히 에스키모라는 말을 쓰면 안 되는 이유가, 에스키모가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재 언어학자들은 사실, Ojibwa 말로 에스키모가 '그물 눈신' (눈 속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신 위에 덧신는 마치 테니스 라켓처럼 생긴 눈신)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른바 ‘에스키모’로 묶이는 북극 언저리 원주민에는, 미대륙뿐 아니라 러시아와 북구 유럽 등지에 퍼져 있는 이누이트, 유피크, 알레우트족 등 여러 부족이 포함되어 있는데 서로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상대편 부족을 깎아내리기 위해 에스키모를 서로 그런 의미로 사용하는 바람에 그렇게 잘못 알려졌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은 서로 다른 부족을 식인 풍습이 있다고 주장하는 습관이 있지만, 연구를 위해 현지에 갔던 학자들이 실제로 식인 풍습을 목격한 일은 없다고 하니까. 어디나 허풍과 유언비어 날조는 존재하는 모양이다. 따라서, 한국인을 일본인 중국인과 묶여 항상 동양인으로 부르면 무례한 것이듯이, 서로 싫어하는 부족들을 묶어 특정 부족을 ‘에스키모’라고 하기보다는 정확한 부족 명을 불러주는 것이 좋다는 거지 에스키모라는 말 자체가 무례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페어뱅크스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WEIO라는 특이한 일종의 알래스카 원주민 스포츠 경진대회가 있는데, 이는 The World Eskimo-Indian Olympics의 약자로, 1961년 설립 당시의 ‘에스키모와 인디언 올림픽’이란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 올림픽의 종목은, 귀에다 실 걸고 잡아당기는 귀다리기(?), 주먹으로 짚은 팔굽힌 자세로 이동하기, 쪼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높이 뛰어 차기, 사람 많이 들고 이동하기, 바닥에 한쪽 팔 짚은 자세로 다른 팔 높이 뻗기 등, 원주민들의 실생활에 필요했던 전통 기술들이라는 게 주목할 만하다.

많은 원주민 젊은이들이 모여 열심히 경연하며 문화를 보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이들의 아픈 역사가 생각이 나서 숙연해진다.


미국은, lower 48의 미국 원주민 (네이티브 아메리칸 : 예전에 인디언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인데 이젠 그렇게 부르면 안 된다. 글자 그대로 인디아 인이 아니기 때문에.)들의 땅은 빼앗고 보호구역 reservation에 몰아넣어 우민 정책을 쓴 흑역사가 있지만, 그래도 알래스카에서는 알래스카 원주민의 권리를 인정해 그들의 기존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되도록 각자 살고 싶은 데서 고유의 생활방식을 영위하며(‘사냥’ 참조) 살 수 있도록 두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개척’이란 것이, 아시다시피 엄연히 ‘원’주민이 있는 곳에 무단으로 들어온 백인들의 날강도 같은 심보의 시각에서 본 말이라서, 결과적으로 알래스카 원주민들도 서서히 숫자가 줄고 밀려났다.


개척기에 들어온 유럽인들은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동물 털가죽이나 고래 부산물(‘먹턱’이라고 하는 기름이 많은 말린 고래고기는 이들의 중요한 식량인데 백인들은 고기가 아니라 고래유와 뼈, 뿔 등을 주로 가져갔다) 등의 자원을 꼬드겨 빼앗았고, 대가를 제대로 지불한 것도 아니고 술로 ‘지급’ 한 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사냥을 해야 하는 시기에 사냥은 하지 않고 백인들이 대신 주고 간 술에 절어서, 섬의 온 주민이 굶어 죽어 있더라는 것이 보고된 적이 있을 정도로, 원주민들은 술에 절어서 몰락하게 된 경우가 많은 처참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특정 원주민 거주지에는 알코올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이를 이용해 엄청난 이윤을 붙여 밀수하는 사람도 있어 문제일 정도다.


원주민들의 알코올 중독 문제는 Lower 48의 미국 원주민들의 상황도 아주 다르지 않지만 (애리조나 등 네이티브 아메리칸 reservation이 있는 지역을 여행하다가 길거리에서 수공예품을 팔고 있는 그들을 만나면 대낮부터 술 냄새가 풍겨오는 일도 허다하다), 알래스카에서 혹시 원주민(a.k.a 에스키모)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밤늦게 술집에 와 있는 사람들이거나, 허름한 옷차림으로 버스 정류장 근처나 다운타운을 어슬렁거리며 자기네 언어나, 특유의 억양이 있는 영어로 말로 구걸을 하거나 취한 상태이기 쉽다.

실제로 나도 다운타운 강가 공원에 앉아 있는데 한 네이티브가 끈질기게 자기네 말로(왜죠) 말을 걸어오는 통에 할 수 없이 이동한 적도 있고, 초저녁에 주차장에서 웃으며 말을 걸어온 네이티브와 아무 생각 없이 대화를 하다 보니 지독한 술냄새를 풍기고 있던 일도 있다. 대개 악의는 없어 보이지만 어울리기는 조금 당황스럽다.


이들의 전통의상(?)은 알래스칸이라고 생각하면 떠 오른 털모자를 쓴 옷보다는 이렇게 약간 촌스러운 점퍼? 같은 모양새이다. 천은 면직부터 빌로드에 이르기까지 상관없는 모양이다.

이들은 안타깝게도 기껏 인정해준 토지권을 팔아 치우고 술값으로 탕진한 후 거렁뱅이가 된 사람도 많고, 가정폭력 사례도 빈번하다. 이들 때문에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정폭력의 빈도가 가장 높은 주 중의 하나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그 밖에도 가끔 온라인에서, ‘자연 친화’의 ‘평화’ 로운 에스키모 운운하는 순진한 글들을 보면 나는‘신비한 알래스카’라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심경이 복잡하다.

알래스카 원주민이라고 하면, 알래스카 항공 비행기 꼬리날개에 그려져 있는 바로 그 에스키모의 모습, 심지어 여름에도(!) 그 특유의 털모자를 쓴 ‘에스키모 복장’을 하고는 늘 싱글벙글 웃으며 이글루 안에서 낚시로 잡은 조막만 한 물고기를 평화롭게 굽고 있는 모습을 그리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창으로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이나, 금방 잡아 온 바닷 표범을 부엌 바닥에 비닐을 깔고 온 가족이 즐겁게 슥슥 분해하고 있는 자료화면을 보면 ‘자연 친화’가 ‘생존’ 앞에서 실제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통의상이 아니라 파카를 입고 있으며, 이들도 고래나 바닷 표범을 잡으면 인증샷을 찍는다!

물론 사진에서 보이는 정도의 전통의상 정도도, 하와이 사람들의 하와이안 셔츠만큼도 입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한국의 한복 같은 것으로 특별한 경우에 입는다. 전통 '의상'일 뿐이다.

많은 부족들은 서로 철천지 원수들이고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눈을 지칭하는 말이 수십 가지라는 말도 사실이 아닌 첫째 이유가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하나의 언어가 있다는 기본 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기억하자.

'에스키모'는 한 민족이 아니다.


페어뱅크스 지역은 지도의 연두색인 '도욘'의 파워가 상당하다. 시를 가로지르는 치나 강을 따라 지어진 알토란 같은 부동산을 이들이 소유하고 있다.

그래도 ‘생각이 있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모여서 정식 공동체와 재단을 만들어서 상당한 부동산 재산을 잘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격은 무시하지 못할 만한 파워가 있고 사회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도 큰 편이다. 그리고, 마음만 먹는다면 공부해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알래스카 원주민을 위한 장학금도 따로 마련되어있고, 다른 유수 사립 대학에서도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나 알래스카 네이티브 등 원주민들은 조건이 어느 정도만 맞으면 입학을 허가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가정환경이 불우해서 공부할 마음을 먹는 학생들 자체는 많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Nature vs. nurture 본성이냐 양육이냐, 는 정답이 없고, Freakonomics의 저자들은 아이를 잉태하는 순간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도 주장하고 있지만 양육환경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역사는 승자가 쓴다고는 하지만, 백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알고 나면 정말... 그저 '역사'라고 말하기에는 참담한 것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배우는 모든 '역사'는 다 거짓말이고 불태워져 버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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