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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10. 2019

알래스카 가을 이야기(4)

내 고향 알래스카는 대마초가 익어가는 계절

바야흐로 오곡 백화가 무르익는 가을에 알래스카에서는 무르익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대마초/마리화나다.

그렇다. 알래스카는 2014년 주민 투표에 의해 ‘cannabis 카나비스’ ‘hashishi하쉬쉬’,‘joint 조인트’,‘pot 팟’’weed 위드’ 등 별명도 많은 마리화나/대마초의, 오락용 판매가 합법화되었다. 이 오락용을 레크리에이셔널 목적 (recreational purpose)이라는 말을 쓰는데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강당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아놓고 풍선을 불어 만든 푸들과 함께 마리화나를 나눠주기라도 한다는 말인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대마의 수확 시기는 늦은 9월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물론 들판에서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는 대마밭이 있는 것은 아니다.

21세 이상 성인의 경우, 6개의 마리화나 화분을 정성껏 예쁘게 가꾸어도 되는데, 그중 세 개만 채취 가능한 크기 허용이고, 남에게 줄 수 있는 양은 1온스에 (호텔에서 주는 일회용 비누 한 개 정도 크기) 불과하다는 등의 세세한 법규도 있다.

그러니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인심 좋은 이웃집 할머니가 키우다 넘친 대마초 같은 것을 까만 비닐 봉다리에 넣어 문고리에 걸어둔 것을 발견하든가 하는 일은 기대할 수 없다.

한국은 현재 국제 관할권을 적용해서, 반입뿐 아니라 한국민이 해외에서 마리화나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미국민이라면 합법인 주내에서 한정된 사용은 가능하겠지만 거래뿐 아니라 사용 자체가 불법인 주나 나라 (어딜까?)로 가지고 가면 안 된다. 그런 주는 공항에서 나갈 때 상당히 엄격한 검사를 한다. 엊그제 내가 콜로라도에 다녀왔는데 그 주도 대마초 합법주기 때문에 간혹 거리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나올 때 검색대에서는 ‘흥 나는 검색 안 해도 돼. 대마초 따위는 우리 주에 가도 얼마든지(돈만 있으면. 담배보다 비싸니까) 살 수 있다구’하는 괜한 자랑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공항처럼 국경이나 주 경계선과 남미에서 올라오는 차들은 소지품을 무작위로 검색할 수 있는데, 쿠바 시가 정도는 아까와도 빼앗기면 그만이지만 대마초는 대마초고 대마초는 대마초다. 냄새 배면 혹시 모를 공항의 마약탐지 멍뭉이와 그대가 함께 골치 아파지니까 괜히 사소한 것에 인생 걸지 말고, 인심 좋게 가방에 친구 것을 잠시 맡아두는 것도 하지 말자.

사실 마약탐지 멍뭉이는 아직 보지 못했고 보통 기계로 하는데, 일전에 한국에 다녀오던 길에 괜히 내 가방 스왑 swab에서 알람이 켜지는 바람에 가방을 다 뒤지고 내 몸을 더듬기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가방에 들은 수상한 물건(!)이라고는 빈대떡 가루뿐이었고(실화), 다시 부분 스왑을 해도 불이 켜지는 일이 없는 바람에 기계 오작동으로 밝혀진 일이 있다. 나야 염려할 것이 없으니 그저 번거로울 뿐이었지만 실제로 대마를 조금이라도 소지하고 있었다면 진땀깨나 흘렸을 것이다. (빈대떡 가루에 혹시 그런 그런 그런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어쩐지 순희네 빈대떡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더라니)

주마다 다 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알래스카 기준으로는, 주 영역이 아니고 연방 영역인 길이나 국립공원 등에서는 피우면 안 되고 (미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술도 마시면 안 된다. 그래서 눈 가리고 아웅으로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서 마시는 장면을 영화에서 보셨을 것이다), 대마초를 피운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도 당연히 안된다.


남녀노, 21세 이상,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길을 지그재그로 달리는 차가 생긴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대마초 냄새를 풍기는 연기가 뭉게뭉게 품어내며 온 주민이 제정신이 아니리라 생각하는 건 물론 오산이다.

알래스카 인들이 특별히 준법정신이 불타서도 (미국인들 대부분이 자잘한 꼼수를 잘 안 쓰기는 하지만), 마리화나 따위 관심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러면 투표로 이겼을 리가 없으니까) 할 사람은 이미 ‘이렇게 저렇게’(?) 조달해서 다 사용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합법화되기 전에도, 괜히 만만해 ‘보이는’, 그러나 용량을 조절하기 힘든 마리화나 브라우니 먹지 말고 그냥 피우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안전하다는 등의 경험자들 정설 같은 걸 대수롭지 않게 전해 듣고 살고 있었으니까.

요 집에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데 늘 문전성시이다.

그러니, 이왕 그런 거 합법화해서 세수도 늘리고 관광 수입(?)도 늘리고, 그런 취지였던 건데, 장기적으로는 중독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시 예산이 더 쓰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여러 번의 재투표를 걸쳐 지금은 완전히 자리 잡은 상태다.

갑자기 한 대 생각나면(?!) 삼선 슬리퍼를 끌고 갈만한 거리의 집 근처에도 하나 한동안 성업 중이었는데, 인간 사는 세상, 뭐든 잘된다고 하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것은 마라탕뿐만이 아니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대마초 가게로 현재는 경쟁이 너무 심해져 떨어진 매출로 인한 우울을 대마초를 피우며 달래야 하는 형편이라는 말도 들었다.  

오락용으로 대마초를 피울 수 있는  주는.초록이고 약으로만 피울 수 있는 주는 푸른색인데, 대마초가 허용되는 곳이 제법 많은 것 같지만 한편 약으로도 안 되는 곳도 아직 많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알래스카도 그럭저럭 살만한 곳이라고 지금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대마초가 너무 피우고 싶어서 비행기를 탄다면 캘리포니아를 가지 왜 알래스카를 오겠는가. 이건 마치 치킨집에서 매상을 올리려고 스파게티를 파는 것 같은 일이다!


알래스카로 이사 온 지 몇 년 안 된 어느 날, 새벽에 누군가가 아파트 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리야 그렇게 갑자기 찾아올 사람이 없으니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서 집 잘못 찾았으니 돌아가라고 큰 소리로 말했는데도 급기야 몸을 문에 마구 던지기 시작했는데 힘이 어찌나 세었는지 경첩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총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워져서 911에 전화를 했다.

받은 사람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나와 통화를 이어가며 안심시켜주었고 잠시 후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해서 그 사람을 침대차에 꽁꽁 묶어서 데리고 갔는데, 다음날 진술서(!)를 받으러 온 경찰의 설명에 따르면, 마약을 먹으면 그렇게 힘이 엄청나게 세진다고, 마약 관련 폭력성 전과가 많은 사람인데 이참에 우리 진술서로 확실히 잡아넣게 되어서 잘 되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문에다 자기 얼굴을 막 찧어서 피를 막 발라놓은 걸 나중에 물로 닦아내면서 한동안 혹시 보복이라도 할까 봐 이사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런 상태로 잘못 찾아온 집인데 다시 찾아올 능력이 있을 리도 만무하긴 하다.


나는 새로운 곳이나 새로운 음식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일부러 모험을 찾는 편은 아니고 (그런데도 파란만장하게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 안 그래도 나이 먹으면서 자꾸 놓치는 정신을 적극적으로 놓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런지, 대마초는 내가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 중의 하나다.

물론 합법화의 장점은 불법적인 거래로 더 부작용이 나는 수가 있고,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들만 수익을 보고 세수는 없는 단점을 없애고, 또한 옹호자들에 의하면, 대마초나 아편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인종차별에서( 지면상 너무 멀리 돌아갈 얘기다) 왔다고 하기도 하니까 복잡한 문제긴 하다.


알래스카, 혹은 대략 미국 전체에서 대마초 맛을 안 본 것은 대략 우리뿐인 것 같을 정도로 (피우는 사람들이 있으니 냄새는 맡아보았는데 뭔가 들큼하니 이끼와 곰팡이 내 비슷하다. 그래서 stinky고 약하다, 고도 sweet 달콤하다, 고도 표현하는 것이 대략 적절하다 ) 별거 아닌 것도 같지만, 나는 그저, 다양한 경험을 하면 좋다고 칼도 맞아 보고 총도 맞아 볼 필요는 없달까, 해서 있어도 없는 양 여기며 살고 있다. (실제로 총을 맞아도 신박한 경험을 할 것 같긴 하지만)


이미지 내용은 글의 내용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을지 모르지만 먹고 싶다

마리화나가 담배와 달리 중독성이 없다고들 하는데, 사실 중독성으로 말하면 짜장면도 연필 깎기도 중독성이 있다. 가지고 싶던 무언가를 소유하면 만족하고 끝나야 하는데 계속 새로운 것이 보이고 더 가지고 싶고, 마음먹은 데로 그만두어지지 않는 것은 다 중독이다. 중독은 흔히 생각하듯이 그 물질에 들어 있는 것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 주어지는 만족감에서 각자의 몸에서 나오는 천연 호르몬’에서 온다. 스마트 폰에 중독물질이 들어 있는 건 아니니까.


뭐든, 이건 ‘중독이 아니라’고 우기기 시작하는 시점이 대충 중독의 시작이라고 보면 맞다. 중독이 아니라면 중독이 아니라고 우기는 대신 그만두면 되니까. 그보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지금은 필요에 의해서 계속하고 있지만 이것은 중독이다’, 고 인식하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끊고 싶을 때 끊으려면 현실 부정은 도움이 안 된다. 각자 중독의 정도도 대상도 다르니 중독 자체가 나쁘다 괜찮다를 넘어서, 가령, 치맥 중독인데, 그걸 지속할 수 있는 자원이 있고 치맥을 먹으면서 다른 기타 정상적인 생활습관이 유지가 된다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걸로 인해서 영양의 불균형이 초래된다거나 가산을 탕진할 정도라면 문제가 되는 것이란 말이다.




*여담이지만 본담인데, 한국도 난동을 피울 염려가 있는 환자 아닌 환자는, 구급차에 태울 때 무조건 서로의 안전을 위해 침대에 묶어 수송한다는 프로토콜이 있으면 어떨까 싶다.

어린아이들의 경우도 그렇고 이게 환자의 안전에 의해 필요한 경우도 있고, 혹시 필요 없었던 사람이라도 역시 병원에 도착하면 풀어줄 테니 불만이 있을 리도 없으니까.

내가 아프면 나를 묶어서라도 데려가 줘요. 그게 싫다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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