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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08. 2019

알래스카 가을 이야기(2)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소개합니다

인구 십만의 소도시에 사는 우리는 겨울이 오기 전 매년 한번은 대처, 인구 사십만 앵커리지에 가게 된다. 아쉬우나마 서울 나들이 쯤 되는 셈이다.

페어뱅크스에서 앵커리지까지는 대략 알래스카 가볍게 남북 반 정도 거리에 불과하지만, 누차 말했듯이 알래스카가 좀 큰지라, 잘 닦인 고속도로로도 중간에 냇물에 발 담그고 물수제비도 뜨고, 도시락 까먹고 커피 리필하고, 화장실 들러가며 6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다.

Anchorage 앵커리지는 anchor닻을 내리는 곳,이라는 뜻이고, 보통 명사로는 그런 항구를 말한다.

끼룩끼룩 갈매기 우는 아기자기한 항구도 거대한 범선이 붕붕 기적을 울리는 항구도 아니고, 배는 멀찌감치 세우고 작은 배가 사람이나 물자를 나눠 싣고 들어와야 하는 개펄 항구라서 근사하게 바다가 잘 보이게 꾸며놓은 지역도 없다.  

모래사장이 아니라 드넓은 개펄 바다다 보니 혹시 조개 같은 아이들은 어디 숨어있을지 모르지만 귀여운 해달이나 고래들도 먼바다에 나가야 볼 수 있어 별로 신통한 바다 동물이 보이는 곳도 아니다. 먼저 말한 스워드나 발디즈, 호머 등이 바다 접근성은 더 좋다. 한라산이나 백두산보다 높은 산들이 첩첩이 둘러싸고 있어 풍광이 멋지긴 하지만 도시자체에는 아름다운 건물이나 높은 탑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별달리 한눈에 아름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납작한 도시다.


그래도 인구 규모가 있으니까 있을 건 대충 다 있고, 한인도 4천 명 정도 살고 있다. 미국에서 한인이 가장 많은 LA의 한인 인구가 10만 명에 비하면 조촐하지만 한인 천 명이 채 안되는 페어뱅크스에 비하면 한국식당도 더 많고 한국인을 위한 식자재도 제법 다 갖추어져 있으니 고향에 가는 마음이기도 하다.

있을 게 대충 다 있다는 말은 상당히 화려한 것을 말하는 것도, 정말 최소한으로 겨우 살만하다는 말도 아니고, 글자 그대로, ‘도시’라고 하면 떠올리는 건 아쉬움 없이 ‘대충 다’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도시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편의 시설도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 이는 사는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인구 40만의 앵커리지는 미국에서 49번째로 큰 도시 (50개 주당 하나씩일 것 같지만 동부나 서부에 인구 많은 주를 고려하면 제법 높은 순위다)로 알래스카 인구의 40% 이상이 여기에 살고 있다. 인구 74만 알래스카 인구의 대략 90%는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과 그 주변의 작은 도시들에 살고 있다고 추정된다.

우리가 5년씩 살아 본 두 개 도시와 아이가 3~4년씩 살아 본 조금 큰 두 개 도시와 다녀 본 47개 주의 여러 도시를 보건대, 이렇게 그 자체로는 별 볼 일 없고, 본토에서 뚝 떨어져 있는데도 인구가 그 정도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알래스카’라는 것에 가지는 통념과 달리 앵커리지는 상당히 살기 좋은 ‘환경’이라는 뜻이다.


앵커리지는 북태평양을 끼고 있어서, 한겨울 기온이 ‘많이 내려가야’ 영하 15도 정도에 한국처럼 평균적으로는 영하 한 자릿수 정도로 그치는 데다, 한국처럼 바람이 많이 불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춥지도 않은 곳이다.

게다가 여름에 최고기온이 한국과 달리 쾌적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생각하면, 일 년 내내 평이한, 즉 세계 어디다 비교해도 빠지지 않게 살기 쾌적한 기후를 가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앵커리지는 아시아 쪽과도 가깝고, 서부에서 유럽 방향으로는 중간 지점이라서 옛날에 비행기의 비행 가능 시간이 지금보다 짧을 때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비행기는 앵커리지에서 주유를 하고 가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친구들의 어린 시절 여행의 추억에는 앵커리지 공항의 ‘우동 한 그릇’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정작 나는 어디를 가도 시애틀이나 포틀랜드를 거쳐서 가는 바람에 10년 사는 동안 앵커리지 공항을 가 본 적도 두 번뿐이고, 그 우동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신랑과 나는 각각 우리의 화장한 뼛가루를 뿌릴 알래스카의 아름다운 곳도 봐두었지만 (배산임수?), 은퇴를 알래스카에서 하게된다면 앵커리지나 그 밑에 항구도시 같은 곳에 가서, 장작을 패며, 책 읽고 글을 쓰며 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이 앞 일이 어찌될지 모르고, 언제나 다른 꿈도 하나씩 품어보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알래스카는.


자꾸만 영원을 생각해보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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