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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08. 2019

알래스카 가을 이야기(1)

알래스카 단풍놀이

가을 알래스카에는 주왕산(721m)도 태백산(1566m)도 없지만, 아쉬운 데로 해발 6168m의 데날리가 있으니, 한참 나무에 색이 고울 때면, 페어뱅스에서 두 시간 정도 거리의 데날리 국립공원으로 단풍놀이를 간다.


알래스카의 첫인상이 눈이고 얼음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신랑 정또도 그랬고, 엄마 아빠도 그러셨듯이, 사시사철 푸르게 뾰족뾰족 서 있는, 주 나무인 가문비나무 숲이 제일 인상적이라는 사람도 더러 있다.

잎이 더욱 짙푸른 여름에도 물론이고, 겨울에 하얗게 눈을 덮어쓰고 있어도 멋지고, 눈꽃이 피어 가시마다 파르라니 옷을 입고 있어도 아름답다. 얼핏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흔히 크리스마스 나무를 상상하시면 되는 침엽수로, 20에서 60m 까지도 자란다고 한다.

크리스마스트리야 적당히 자라면 베어 파는 거니까 그렇지만, 올려다보려면 목덜미가 뻐근하도록 웅장하고 크게 자란 나무도 많다.

알래스카에는 아무래도 겨울이 길다 보니 상록수인 침엽수가 많긴 하지만, 땅덩이가 크다 보니 알래스카 내에서만도 수종 구분 구역도 7개에 걸쳐져 있어, 가을이면 검붉은 열매가 달리는 물푸레나무, 붉은 등걸에 커다란 열매가 열리는 티베트 체리 나무,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가을을 떨구는 사시나무, 하얀 등걸에 숨은 눈들이 나를 따라다니는 자작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있어, 같은 나무에서도 기온과 일조량 등 관련으로 조금씩 색이 다르게 변하는 물푸레나무가 거들어 단풍이 참 좋다.

어쩐지 가을 단풍은, 괜한 갬성글로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보다 그저 ‘좋다’는 말로 충분하다.


나는 꽃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일도 없고, 지나가다 괜히 꽃을 찍고 싶지도 않고, 프사도 꽃을 쓰느니 알계로 남고 싶을 정도이기 때문에 늙으면 저절로 꽃을 좋아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나도 예쁜 거 예쁜 줄은 아는데 온라인 포화 ‘사진’으로는 감흥을 더 이상 못 느낀다고나 할까.

하지만, green thumb은 절대 아닌 나도, 순전히 한국의 야채를 먹고 싶다는 열망으로 봄마다 파종을 해서 여름부터 가을까지 깻잎, 고추, 오이, 호박 등을 키워먹는다.

꽃은 그저 채소 꽃이 최고다. 노랑 오이꽃, 하얀 고추 꽃이 얼마나 예쁜지 아는가. 게다가 꽃은 곧 과실을 의미하고, 곧 주렁주렁 달릴 오이와 고추 생각을 하면(사실은 이게 본론) 자다가도 흐뭇하다.

그리고, 한 달쯤 그냥 두고 여행을 다녀와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angel wing begonia, spider plants, silky potus는 겨울에도 집에 초록색을 더해 줘서 좋다. 혹시 나에게만 오면 식물이 죽는다, 하는 그대여, 저 세 화초는 내가 보장하는 것들이다. 물을 많이 주면 많이 줘서 좋아하고, 안 주면 그럭저럭 살아가는, 알래스카에서도 수월하게 키울 수 있는, 이른바 화초계의 잡초들이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좋아하는 알래스카 꽃들이 있다.

산이 있는 지역은 기후가 불안정하므로 어쩌다 보슬비를 만날 수도 있는데, 같은 비가 높은 산에는 눈이 되어 내리는 장관을 볼 수도 있고, 가문비나무들 사이 평지마다 카펫처럼 깔린 fireweed(학명 Chamaenerion angustifolium)도 멋지다.

이름이 불 잡초라니 새빨갛게 타오르는 모습일 것 같지만 진한 분홍색의 자잘한 꽃이 원뿔 형태로 뭉쳐서 피는 늦여름부터 피어나는 흔한 야생화로, 1~2m 크기다. 독특한 이름의 유래는, 어디나 불 난 자리에 제일 먼저 나는 생명력이 강한 꽃이라서 라는데, 한국에서 쑥(대) 밭이란 말이 폭탄 맞은 자리에 제일 먼저 나는 게 쑥이라서 나온 이름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문득 나라마다 이런 잡초는 하나쯤 씩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꽃이 지고 나면 열리는 보라색의 길쭉한 씨방 안에는 가벼운 홀씨가 가득 들어 있어서, 마르면서 자연히 터지기도 하지만 손끝으로 튕기듯이 치면 별꽃처럼 피어나 바람에 아주 서서히 날아가는 모습이 아주 사랑스럽다. 민들레가 얼마나 지독한 잡초인지 알게 되면 사실 누가 민들레 홀씨를 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움찔하게 되지만 적어도 파이어 위드는 폐해가 알려진 바 없으니 혹시 만나시면 마음껏 튕기셔도 된다.


가을은 열매가 달리는 계절이고, 많은 꽃은 봄에 피지만, 알래스카에서는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짧으니 잎이 빨리 나야 하기 때문에 나무의 꽃피는 기간도 짧고, 들꽃도 봄보다 여름에 많이 피는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잡초처럼 아무데서나 자라는 들장미다.

꽃봉오리는 주로 진분홍색이다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며 점점 커지고 연해져서, 얼핏 한 가지 안에도 여러 색의 꽃을 피운 것 같고, 일반 관상용 장미보다 봉오리도 작고 화려하지 않지만 향이 아주 진해서 말려도 장미 향이 그대로 며칠 갈 정도다.

이 꽃을 알게 된 후로는 나도 모르게 향수나 립밤, 샴푸, 핸드 로션 같은 것들도 모두 장미 향으로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곤 한다.

들장미 꽃이 지고 나서 늦여름부터 가을로 열리는, 둥글거나 타원형의 손톱만 한 열매가 rose hip로즈 힙이다.

나는 가을마다 로즈힙을 거두러 종이봉투를 들고 숲에 간다. 빨간 두건의 바구니 같은 것은 나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모양새일 뿐 전혀 실용적이지 않고, 종이 봉투 주둥이를 오무려두면 혹시 벌레 먹은 것이 따라 와도 안에서 스스로 해결이(!) 돼서 좋고, 그대로 잘 말라서 좋다.


생으로는 씨가 많은 대추와 토마토 중간쯤 되는 맛이 나는데, 비타민 씨가 많아서 화장 오일에 쓰이기도 하고, 말려서 끓여 먹으면 미용에도 좋고 통풍에 좋다고도 한다.

명색이 장미니까 가시가 있어서 열매 딸 때 주의해야 하는데, 나는 통풍으로 고생하는 남동생을 위해 이렇게 로즈힙을 따 모아 말려두었다가 한국 갈 때마다 전달하곤 한다. 아직 시체 다리가 인삼으로 변신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녀석의 전언에 의하면 구기자차 맛 비슷하니 먹을만하다고 하더라.


적어도 마흔이 넘은 아들 둘의 아버지인 녀석이 예뻐지면 내 공이다 후후.

피부에 양보하세요 알래스카



어쩌다 보니 외국에 나와서 살고 있긴 하지만, 내가 어떤 이상향을 동경해서 떠나온 것은 아니었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의 배경의 장소를 상상해 본 적은 물론 있지만,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지도가 있다고 하듯이 사진 속에서 본 풍경이 근사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특정 장소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알래스칸 스포츠 같은 모험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런 내가 도로여행과 걷기를 즐기는 것은 길을 읽는 것이 책을 읽는 것과도 살이와도 닮아서다. 차로 달려도 걸어도, 길에서 배우는 것이 많아서다.


미국의 도로는 제법 높은 산도 웬만하면 완만하게 돌아가며 넘게 해 주기 때문에, 처음에 골짜기 길도 없어 보이는 높은 산을 앞에 떡 마주치면, 어이쿠 저 산을 어떻게 지나나 싶다가 길을 따라 앞만 보며 가다 보면 어느새 넘어 있는 일도 많았다.


한동안 그걸 기억하면서 살려고 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 산도 그렇게 곧 나도 모르게 넘어지겠지, 돌아보며 웃을 수 있겠지, 하는 위안으로 삼고 힘든 시간을 견뎌냈고 실제로 두고두고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은, 산을 넘을 줄만 알았지 내가 ‘머무르는’ 법은 몰랐던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산꼭대기에 다다르면 대개는 친절하게 전망 포인트에 차도 세우고 보게 만들어 놓는데, 나는 실제로 늘‘갈’ 길이 바빠서 내려서 그런 곳도 휘리릭 둘러보고 얼른 다시 내려오는 데 급급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산을 오를수록 세상은 점점 멀어지고 전망은 점점 넓어지는데, 결국 산을 넘고도 그 넓어진 시야는 갖지 못해서 나는, 결국 산을 넘은 안도감을 즐긴다는 명목으로 산을 잊으려고 애썼고, 그리고는 다음 산이 나타날까 그것만 두려워하며 살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길은 즐길 줄은 알았지만, 내려왔다는 것에서 위안을 찾느라 도착한 곳도 즐기지 못하니 거기서 다시 길을 떠나도 떠나온 곳도 곱게 품지 못했던 건가 싶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본래 사람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라도 아는 것을 모르는 것보다 선호하게 마련이라고 하지만, 나는 더 힘들어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속수무책 기다려야 하는 일들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내 책임이라고 느끼는 것도 책임감이 커서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문제를 내 손안에 든 것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긴 하겠지만, 나는 그래서 내 세계를 가장 안전하고 조종 가능한 작은 틀에 넣어두려고 살았고 장애를 만나면 다치지 않으려고 먼저 웅크렸다. 얼핏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치고 해결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조차 나에게는 웅크리는 방법이었다. 얼른 해결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아픈 데가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고 미련 곰 뚱딴지라 불렸던 나는 그저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곰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래스카까지 온 것이다 모험을 즐기러가 아니라 길고 긴 겨울잠을 자러.


나도 두려운 것이 있다는 것을, 두려워해도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른다.

두려운 것을 두려운 것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으르렁거리기나 했지 쓰레기통이나 뒤지다가 강물 거슬러 올라오는 길목에서 배불리 연어나 주워 먹고 겨울이면 틀어박혀 잠이나 자는 곰이 아니라 겨울에도 용감하게 어디나 먹이를 찾아 나서는 무스가 되어야 하겠다.


가을 여행은 나를 만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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