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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07. 2019

알래스카 여름 이야기(5)

불타는 알래스카

가끔 건조 주의보가 각자 피부 수분 관리에 힘쓰라는 말로 아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산불 조심을 위한 것이다.

안 그래도 건조한 알래스카는, 역시 건조한 캘리포니아 등의 주처럼 특별히 건조한 기간 여름에 자연 산불이 많이 발생한다. 주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양쪽으로 거뭇하게 타 죽은 나무들 사이에 다시 새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산불의 흔적들이 곧잘 보인다.

자연 발생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버린 담배꽁초로 난 불이 아니라, 벼락이나 거짓말처럼 나무와 나무가 비벼져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쉽게 번지는 산불을 보면 역시 프로메테우스가 사워도우 대신 불을 훔쳤다는 건 쓸모없는 일이었지 싶다는 거다.


언젠가 한 번 우리 아파트에 누가 뭔가를 심하게 태워 먹어서 경보가 울리고 소방차가 몇 대나 출동하고 모두 한 시간 정도 대피 해 있었던 적이 있는데 (다행히 겨울이 아니라 가을 즈음이었는데 지금껏 출동 속도에 감동하고 있음), 훈련이 아닌 줄 아는 경보음이 막상 울리기 시작하니까 정말 당황해서 뭐가 제대로 들었는지도 확인 못 한 지갑이나 가지고 나간 게 다행이었다. 평소에 냉장고에 불나면 가지고 나갈 것들을 메모해 붙여놓고 있었는데 언감생심 패물 같은 소리 하고 있다고 두고두고 자조하는 중이다.


알래스카는 제법 높은 산 위에도 번듯한 소방서가 군데군데 지어져 있는데, 산불이 나면 당장 피해 확산을 막을 뿐 아니라 장기적인 피해도 줄여야 하니 얼른 보이는 데로 끄는 게 능사가 아니고, 재산 보호도 중요하지만 소방대원분들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분들은 아신다. (모르시는 분들은 몰라서 그렇지.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꼭 어디서 들은 얘기를 가지고, 잘 모르지만, 어디서 그러는데, 하고 거들어서 그렇지)

여름 산불도 그렇지만 알래스카의 겨울에 불을 끄기 위해 물을 뒤집어쓴다는 것 또한 극한 직업이다. 불이 나면 열심히 진화작업을 하더라도 몇 날 며칠이 걸리는 수도 많고, 이럴 때면 온 동네에 연기가 자욱하니 매캐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표정이 어딘지 침울하다. 산불 지역에 집을 짓고 사는 분들 대피령이 내려지면 남의 일 같지 않고 마음이 아프다.


이번에도 그랬듯이 산불이 많은 해는 7/4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도 자제해 달라는 권고가 나온다. 다른 해는 그래도 간헐적으로 몰래몰래 작은 폭죽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올해는 산불이 정말 심해서 아무도 터뜨리지 않았다. 어차피 알래스카의 7월은 밤에도 훤해서 불꽃놀이도 별 재미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최근 알래스카의 ‘아닌 폭염’에 대한 기사에 산불도 더위 때문인 것처럼 쓴 것과 달리 (한국 기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자료를 얻는 건지), 더위와 산불은 같은 계절에 동시에 발생하는 것뿐이지 인과관계는 물론 심지어 연관관계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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