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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05. 2019

알래스카 여름 이야기(3)

알래스칸 스포츠 1 -사냥

내가 밥 줘서 키운 것이 아닌데도 야생동물을 잡는 것을 추수 harvest라고 하기도 하는데, 원주민이 아니더라도 좀 외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채집 수렵이 생계 수단의 일부이긴 하다. 지금까지 채집 수렵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부족도 오리건주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알래스칸에게 사냥이 중요한 삶의 일부인 이유는 생계가 아니다!

순전히 생계를 위해 서거나 야성을 ‘즐긴다’기에는 사냥과 낚시는 상당히 비싼 ‘스포츠’이다.

사시사철 잔디가 푸른 곳에서는 골프를 즐기고, 휴양타운에서는 노인들이 몸에 부담이 안 가는 테니스와 탁구를 하듯이 알래스카 인은 사냥을 즐기는 것뿐이다.

언젠가 알래스카 출신 유명 코미디언 탐 보뎃이 공연하러 와서는 하는 말이, 자기가 함께 온 동료들에게 알래스카는 집에 총 한 두 자루쯤은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해두었으니 내일 공연 중 혹시 물으면 모두 손을 들라고 연습을 시킨 적이 있는데, 덩달아 함께 웃기는 했지만 어쩐지 나만 빼고 다들 실제로 집에 총 한 두 자루쯤은 가뿐하게 있는 눈치였다.


언젠가, 조금 한적한 길 갓길을 걷고 있는데 어라 경찰차가 도르르르 와서 곁에 선 적이 있다. 늘 걷던 곳이라서, 갓길은 걸어 다니면 안 된다는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았더니, 경찰관이 차에 탄 채로 하는 말이, 내가 가는 길에 총격전이(!) 벌어져서 위험하니 되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고 가방 무거운데 돌아가면 30분은 더 걸어야 했기에 투덜거리며 오케 오케 하고 돌아서 집에 왔고 잊어버렸는데, 저녁 뉴스에 그 총격전에서 경찰이 쏜 총에 범인이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황당하던 기억이 있다. 얼결에 내가 그 장소에 먼저 도착했더라면 여러분 나는 지금 여기


사냥을 스포츠로 즐기고 사냥감을 먹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녀들도 상당히 어린 나이부터 총기 사용과 사냥을 가르쳐서, 총기를 파는 스포츠용품 가게에 가면 사냥해서 잡은 죽은 동물들 앞에 해맑게 웃으며 앉아있는 어린이들과 화목한 가족과 사랑스러운 커플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마치 지옥의 인스타그램처럼 자랑스레 전시된 걸 볼 수 있다. (자료사진 고의로 생략)

처음에는 생경하고 낯설고 이상한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생경하고 낯설고 이상하다.

가게의 4면을 장식한 동물의 머리 사진만 올린다. 해맑음과 잔혹이 공존하는 인증샷은 차마 못 올리겠다.

그런 상점 안에서는, 바람 빠진 농구공이나 훌라후프 같은 것들이 아니라 잠금 된 유리장 안에 각종 총기가 즐비하게 진열되어있고, 크고 작은 총알 갑,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시퍼런 사냥용 칼과 활, 거대한 그물과 요트와 낚싯대와 찌들이 하나 가득 전시되어있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보통 덕질은 다 그렇지만 총도 한 자루 ‘장만’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골프채나 문신처럼 자꾸 욕심을 내게 되는 모양이다. 하기야 한국에서는 북한산 자락에서 막걸리만 마시려고 해도 등산복‘장비’가 몇백이 든다는 판국에 집채만 한 무스를 잡겠다는 사람이 장비가 얼마나 필요하겠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다.

게다가 그런 장비는 그냥 쓰고 싶을 때 냉면 그릇처럼 쓱 꺼내는 것이 아니라, 유기처럼 늘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관리가 필요한 것들이다. 어설프게 총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암시장에서 총기를 사면 실상은 반은 쏘는 사람 얼굴에서 터진다는 말이 있다. (일 년에 며칠 쓰려고 그런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제기와 비슷하다. 관리를 잘 안 하면 애를 먹인다는 것 까지도.)


사냥꾼들은 얼핏 보기에 늦잠 자다 대충 씻고 나온 잠재적 테러리스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심각한 ‘스포츠맨’들이다.

사냥 허가증 등과 잡은 사냥감을 다루는 데 필요 물품도 연초에 미리 사야 하고, 총기 관리도 잘해야 하고, 저장을 위해서는 집에 커다란 냉동고도 (영화에 주로 시체 감추기 용으로 자주 나오는 그런 물건), 고기/뼈 자르는 기계, 훈제하는 기기며 소시지 만드는 기구, 진공팩 기계도 있어야 한다.

사냥 허가증. 사용가능한 총기 종류가 나열되어있다, 허용 동물은 일반 법규를 따른다.

숲에서 길을 잃어도 안 되고, 사냥하다 라면도 끓여 먹어야 하고, 곰을 만나도 대처할 방법이 필요하다.

사냥법은 매우 엄격해서 사냥 허가증이 없어도, 시즌이 아닌 동물을 잡아도, 사냥감을 잡아서 버리고 가도, 수량 이상, 허용된 크기 이하를 잡아도, 사냥 자체가 금지된 동물을 잡아도, 헬리콥터에서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도 모두 불법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이런 불법 행위를 poaching이라고 하고 이 사람들을 poacher라고 한다.

poaching이라는 말은 계란을 삶는데도 쓰지만 장비를 갖추어 들고 들어 간 숲 속에서 느닷없이 고작 계란을 삶을 리는 없다.

물론 그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후 허탕을 치고 싶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컴퓨터 게임으로도 총 쏘는 건 싫은 내가 사냥을 즐길 수는 없기도 하고, 사냥도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개체 수 조절의 일환이기도 하니까 내가 뭐라고 말을 얹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여우를 풀어놓아도 토끼 개체수가 줄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는 연구결과이다,(당연한 것 같지만 그러하다)

가령, 호주에서 토끼를 반려동물로 가지는 자체가 불법인 이유는 사랑스러운 토끼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캥거루와 크로커다일과 크로커다일 던디 뿐인 호주에서, 고향인 유럽을 전원풍경을 그리워한 호주인들이 어리석게도 귀여운 토깽이들을 가지고 와 풀어놨고(!), 본업이 새끼를 치는 것인 토끼는 금방 순식간에 불어나 농작물이 초토화되었고(!!), 그거 잡으려고 또 여우를 풀어놨다가(!?!) 생태계 파괴되고, 그래서 여우를 사냥했더니 다시 토끼 수 늘어나는 것이 반복되어… 뭐 그렇게 된 것이다. (한숨)

토끼같이 생식률이 지나치게 높은 동물은 반려동물을 하면 안 되는 거지 보호할 대상은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계획이라는 것이 토끼와 여우처럼 애초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생길 때도 많지만, 아무튼 전문가분들의 판단에 의해 자연보호와 수량 조절을 위해서 사냥감마다 주마다 다른 season시즌이 있다. 벅스 버니 만화를 즐겨보신 분이라면, 덕 시즌! 래빗 시즌! 하고 대피 덕하고 벅스 버니가 싸우는 장면이 기억나실 것이다.

가만두면 엄청나게 불어나는 토끼 사냥에는 시즌이 없지만, 알래스카의 경우 주로 8월에 대개의 야생동물, 즉 무스, 카리부, 레인디어(순록. 예: 루돌프 ) 사슴, 산양, 곰 같은 것들의 시즌이다.


현대 문물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동물들이 중요한 생계유지 수단이었던 문화를 보존하고 싶어 하는 부족의 알래스카 원주민 11개 마을에서는 지금도 합법적으로 북극곰 사냥과 고래잡이가 허용된다.

안타까운 것은, 여타의 일반인들은 잡으면 안 되는 trophy animal 장식용 동물을 원하는, 이른바 ‘그거 말고는 다 가진 부자 양반’들도 원주민들의 합법적인 권리를 이용해 ‘원주민들의 가이드로’ 이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은 허용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격은 상당하지만 가이드를 고용하면 직접 잡은 곰이나 산양의 머리를 집에다 걸어둘 수 있다. 뭔가 잘한 게 없이도 트로피를 받고 싶은 분들은 고려해보시기 바란다.

비행기 밑에 달린 부분이 ‘폰툰’이다.

그러나 독단적으로 이 보호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은 분명 불법이고, 그것을 막기 위해 poaching 단속 외에 반출 동물 검사도 한다. 그러다 보니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고, pontoon이라고 경비행기가 물에 내리도록 해주는 바퀴 자리에 끼우는 속이 빈 스키 같은 것 안에 불법 노획물들을 집어넣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된다고 한다. 멕시코 국경에서 쿠바산 시가를 뒤지는 것을 넘어 늘 죽은 동물을 찾는 수색까지 해야 하다니, 주 경찰이나 사냥 관리인들은 사명감이 없으면 안 되는 극한 직업임이 틀림없다.


사진의 순록(reindeer)소시지, 무스 소시지는 알았고 먹어도 보았지만, 솔직히 이 사진을 뜨면서 하단의 whale고래 소시지 있는 건 나도 처음 알아서 좀 당혹스럽다.

나는 사냥감 동물들의 맛 ( 야생동물을 game이라고 부르고, 양고기같이 약간 독특한 냄새나 맛을 gamey라고 한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니까, 혹시 본인이 양고기를 좋아한다면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야생동물은 살찌도록 사육한 것이 아니라서 다이어트식으로도 인기가 높다고 쓰고 질기다고 읽는다.


알래스카의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앞에, '알래스칸', '알래스카' 같은 말이 붙은 메뉴를 골라 보면 대개 그런 사냥감으로 만든 햄버거나 소시지가 들어 있을 확률이 높다.

오세요 알래스카 뜻밖의 인생음식을 만날 수도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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