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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 Nov 11. 2019

내가 알래스카다.

일종의 에필로그

알래스카의 또 다른 별칭은 last frontier 마지막 개척지다.

이는 기본적으로 알래스카 주가 49번째로 연방에 들어온 주기 때문이지만, 아직도 개척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암시를 풍기는 말이다.


64.83° N인 알래스카 우리 동네까지 오기 전까지 나는, 서울에서 미시간을 거쳐 노스다코타로 해서 대략 위도 37.56° N에서 44.31° N, 46.87° N로, 어쩌다 보니 마치 일부러 추위를 찾아 지팡이를 짚고 나선 유목민처럼 몇 년마다 조금씩 북쪽으로 이동했다.


외국에 나와 살다 보면 딱히 인종차별은 아닐지라도 조금 뻔한,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이 지루할 수가 있는데, 나는 나의 ‘출신국’이 아니라 나의 ‘역사’를 화제로 삼을 수 있어서 좋다. 얼음이 있는 바다에 배가 다니기 위해서 앞에 먼저 얼음을 깨고 나아가야 하는 ice breaker 쇄빙선처럼 나아간 내 역사가, 또한 낯선 사람들끼리 만나 썰렁한 상황에서 대화를 시작하기 좋은 이야깃거리 ice breaker가 되어 준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알래스카로 ‘오는’ 내 마음가짐은 대충 마포 (미국 오기 전 내가 살던 곳)에서 과천 (본가 있는 곳) 들어가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정또로부터, 알래스카에서 잡 오퍼를 받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당황을 하긴 했는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렇게 추운 데 가서 어떻게 사나, 가 아니라, 그저 중심에서‘떨어진 곳’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었다는 말이다.


우리 집 벽에는 종이 지도가 많이 붙어있는데, 근사한 장식용 지도가 아니라, 세계 지도, 미국전도, 한국전도, 현재는 알래스카와 이 도시의 지도는 물론, 한국에 갔을 때 돌아본 성곽길 지도, 명동 지도, 방문했던 중국이나 일본 도시들 지도도, 가지고 다니며 여러 번 접었다 폈다 한 자리가 선명하게 '누덕누덕' 붙어 있다.

이는, 내가 한 바퀴 돌려놓으면 무조건 ‘앞’이 가던 길인 방향치, 길치라서 어디 가나 사방위를 참조 ‘나의 위치’를 알기 위해 종이 지도를 가지고 다니기를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비게이션은 정확히 그 한 바퀴 돌려놓는 역할이다. 내겐 이리 가도 거기가 ‘앞’이고 저리 가도 거기가 그냥‘앞’이다), 다녀온 국가에 핀을 꽂거나, 미국에 온 1999년부터 알래스카에 오기 전까지 10년간 lower 48에서, 메인, 뉴햄프셔, 버몬트주와 당시까지는 알래스카도 제외한 46개 주를 다닌 길과 도시들을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는 재미도 있어서다.


아무튼, 마침 거대한 미국 코팅 전도가 알래스카 뉴스를 알리는 정또 머리 뒤로 붙어있었는데, 정또의 증언에 의하면, 내가, 말을 듣는 순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마치 오랜 항해 끝에 땅을 발견한 어깨에 앵무새를 얹은 선장이라도 된 듯 팔을 쭉 뻗어 알래스카를 가리키며,

“저거 봐. 저렇게 뚝 떨어져 있는데, 그럼 우리는 이제 차로는 아무 데도 못 가고, 이제 지야 대학 가면 자주 못 보고 살아야 한단 말이야!”

라고 외쳤다고 하,

지만 그럴 리가. 나는 쉽게 흥분하는 사람이 아니다. ( 나는 사실을 지적했을 뿐이었고, 6자리 숫자 연봉을 보고 이주를 결재(!)하는 순간 이날까지 한마디 불평을 한 적이 없어서 당당하다만, 딴에는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그런 반응을 보여서 정또 또한 당황했나 보다)


당시 살고 있던 곳이 딱 미 중부여서, 아이가 미국의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방학 외에도 한 번씩 오가며 살 수 있다고 믿었었는데, 갑자기 그게 안 된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아이가 완전히 독립한 상태라 괜찮지만, 그래도 당시는 아직 어린 외동딸을 멀리 보내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는데 시간이 좀 걸린 게 사실이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멀리 비행기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은, 사진이나 일기장이나 어린 시절 아이의 크레용 그림같이, 이런저런, ‘실제 값어치는 없는 허접한 것들’을 다 (버려야 한다는 줄 알았다면 그대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 소포로 부쳐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먼저 살던 두 주 간의 이동은, 유 홀 (U Haul 직접 운전해 가는 이삿짐 차)에 우리 소형차를 매달고, 퍼니쉬드 학생 아파트 (furnished apartment 기본 가구가 갖춰져 있는 아파트)에서 5년간 산 얼마 안 되는 살림을, 하다못해 쓰던 간장과 쌀 반 포대까지 대충 다 싣고 간 것이었지만, 새 일자리에서 이주 비용을 넉넉히 대주기는 했어도 이번에는 비행기 이사였기 때문에, 가구와 차를 다 버리는 것은 물론, 10년  살림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필요했다.

정또가 테뉴어 트랙 포지션을 찾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잡 오퍼를 받고는 모든 게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순식간에 진행된 바람에, 몸도 힘들었지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며, 어디에 무엇을 넣어 어떻게 가져갈지, 머리에서 연기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말이다, 다시말하지만, 내가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정말이지 ‘알래스카같이 추운 데 가서 어떻게 사느냐’는 생각은 나는 정말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이니까 일자리가 있었겠지 하는 생각? 다 먹고살게 되어있겠지 하는 생각?

아니다. 사는 건 당연히 그냥 ‘살’ 거니까 그런 생각도 따로 없이, 인터넷으로 평면도만 보고 전화와 팩스로 처리해서 계약한 아파트가 괜찮았으면 좋겠다든가 (10년 전만 해도 전자 사인이 상용화되어있지 않았음), 아이가 (그 5년 전 이미 한 번 겪어야 했던 일이어서 더욱 미안해서) 또 새로 간 학교에서도 문제없이 친구 많이 만들고 적응 잘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걱정들이나 했던 것 같다.

어차피 20년 전 미국에 올 때도 공부를 마치면 금방 돌아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된 거고, 나에게 있어서 사는 건 뭐 그때그때 제일 나은 선택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었으니까.




그게 ‘온’ 사연이라면, 당연히 최적은 힘든, 이런저런 애매한 여건을 다 고려했을 때, 여기서 지금까지‘사는’ 이유는 결국 '사람이다. 경험상, 궁극적으로 일터와 사는 곳을 좋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큰 요인이었고, 그래서 알래스카 인들을 아는 것은 알래스카의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알래스카에는 물론 토박이들도 있지만, 드나드는 사람도 많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소속감이라는 것은 주관적이긴 하지만 미국에서 20년 중 알래스카에서 10년을 살고 보니 더더구나, 어느 장소를 며칠이나 몇 달 관광으로 가 보고 그곳을 정말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저 며칠씩 다녀온 곳은 물론, 그전에 각각 5년씩 살았던 주도 ‘살아 본’ 정도지 토박이처럼 ‘안다’라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한정적인 경험이나마 그래도 집을 두고 살아 본 나의 경험으로 느낀 두 도시는 이랬다.


미시간에서는, 외국 학생들이 많이 사는 캠퍼스 (영어 선생님은 거품 bubble이라고 표현했다. 그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또 다르다는 경고였으리라) 안에 살았고, 학생 신분이라 활동 반경이 좁아서 단정 짓기가 힘들지만, 백인 : 아프리칸 아메리칸 : 아시안 : 미국 원주민 비율이 79 : 14 : 3 : 0.5이고, 당시는 민주당 주여서 그렇게 외국인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던 정도는 되었는데, 지금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사업이 급속도로 하향길을 걸으며 인심도 많이 각박해져서 그런지 현 미 공화당 대통령 당선 후로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아졌다고 들었다.

노스다코타는 이 비율이 90 : 1 : 1 : 5.4였다. 백인 비율이 현저하게 높다. 북구 유럽의 이민이 많아 훤칠한 키에 푸른 눈에 금발의 백인들이 많이 살다 보니 우리가 많이 겉돌았다.

딱히 악해서가 아니라 그냥 외국인을 많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서 다들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옛날에 한국인들이 처음 본 서양인 구경하듯이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고, 영어를 못 한다고 간주하고 지레 손짓·발짓을 하는가 하면 반대로 우리끼리 간단한 한국말을 주고받아도 영어를 쓰지 않는다며 발끈하기도 했다.

음료수를 주문하고 영어 이름을 대도, 장난도 따로 비하도 아니고 진지하게, 동양인인 네 이름이라면 가령‘조’가 Joe가 아니라 Xiao 같은 스펠링이겠지 생각하는 스펠링으로 적어놓곤 했다.

스웨덴 출신 사람들은 노르웨이 출신 사람들도 무시한다는 현지 친구의 농담이 차라리 위안이 되었달까.


알래스카의 인종 비율은 67 : 4 : 5 : 16 정도고, 알래스카 오기 전 10년 동안 살아보고 다녀 본 곳들과 비교해서, 그동안 내가 만나 본 알래스카 사람들은 인종차별도 텃세도 거의 느끼게 하지 않는 편이다. 텃세가 없다는 말은 물론 인종차별 외에도‘외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갖는’ 거부감이 적다는 것이다. 앞서 노스다코타 사람들이 따로 악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듯이, 알래스칸이 특별히 ‘인성이 더 나은’ 사람들이라서 그런 건 물론 아닐 것이다.

가령,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등 본래 소위 인기가 많아서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도시는 눈에 띄지 않게 슬쩍 묻혀 들기도 쉽지만, ‘또 저러다 나가겠지!’ 하는 생각에 일단 뜨내기 취급을 받기도 쉽다. 말하자면 와도 흥, 가도 흥,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반대로 영 외지 사람이 안 나타나는 시골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면, 금세 눈에 띄고 왜 왔는지 의구심부터 들게 마련이다. 괜히 촌구석까지 뭔가를 ‘주러’ 왔을 리는 없고 ‘얻을’ 것이 있어 들어왔을 테니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어 터줏대감들이 무조건 쌍수를 들어 환영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그런데, 알래스카 인들은 딱 그 중간쯤 되는 거 같다. 유동인구는 많지만, 그다지 인기 있는 곳이 아닌 것은 서로 잘 알고 있는 곳. 모두가 알래스카라는 곳에 대한 편견을 알고 있으니까, 좋든 나쁘든 나름 모종의 ‘각오’를 하고 누군가 살러 왔을 때는, 틀림없이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이 있었을 거라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서로 열린 자세로 받아들인다고나 할까. 그래서 새로 온 사람의 과거를 캐묻지 않고 받아들이고, 또다시 떠나가게 되어도 또 그러려니 이해하고 좋게 보내주는, 묵언의 이해를 서로 하는 곳이라는 요인이 크다. 이건 대부분 터줏대감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다들 ‘일이 힘들어서’라고 말들 하지만, 자기는 쥐뿔도 모르면서 그런 것도 오늘 다 못 끝내냐는 부장님 때문에 때려치우는 거고, 월급이 적어서라고 하지만 고작 그거 주면서 꼰대질 하는 지점장 때문에 더러워서 못살겠어서 사표를 내는 거 아닌가.

월급 많이 주는 것도 좋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가치를 알아주고 사람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편하게 잘하도록 믿고 맡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혹 다른 불만이 있어도 거기 머무르고 싶게 한다는 생각이다.

현재는 호주에 일이 있어 가서 살면서도 은퇴 후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알래스카 토박이도 만나본 적이 있고, 늘 투덜거리며 틈만 나면 떠나고 싶어 했으면서도 막상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니까 악착같이 버티려 하는 사람도 알고 있다. 예순이 다 되어 박사 학위를 받고 알래스카로 온 초보 강사도 있고,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으로 인기 만점이었고 코넬대학에서 어드미션을 받았지만, 알래스카 주립대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가 졸업 후 웬 닭을 치며 사는 아이의 고등학교 동창 녀석도 알고 있고, 남편 부대 배치 따라 들어왔다가 남편은 다시 유럽으로 배치받아서 갔는데도 혼자 남아서 은행 일자리를 유지하기로 한 사람도 보았다.


본래 남과 같이 잘 살 사람은 혼자서도 잘 살고, 회사에서 잘할 사람이 프리랜서로도 잘한다. 역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분명 연장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이래서 저래서 안 된다 소리 잘하고 늘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은 어디 가서도 만족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늘 투덜거리면서 사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경험에 의하면 오히려, 특별히 침이 마르게 알래스카를 찬양하고 있기보다는 얼핏 ‘뭐어 사는 게 거기서 거기지’ 시큰둥하니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오래간다.


다 나름의 이유로 오고, 나름의 이유로 머무르고, 나름의 이유로 떠난다.

나도 이러다 언제 훌쩍 다시 떠날지 모르지만, 그렇게, 우리 모두 그저 열심히 살아남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뿐이고, 그렇다는 것을 또 서로 잘 알고 있는 게 알래스카 인들이고,

그래서 나도,

오늘은,

알래스카 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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