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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음식이 맛없게 느껴질 때

by 석은별

"오늘은 된장찌개 끓일까?"

냉장고 문을 열고 묵은 채소를 꺼내 들었다. 며칠 전 남편과의 프라이팬 소동 이후, 왠지 나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요리를 하고 싶어졌다.

남편은 화려한 요리를 좋아하지만, 나는 간단한 한 끼를 더 좋아한다. 소박하고, 담백한 맛. 요란하지 않은, 조용한 음식.

된장을 풀고, 애호박과 두부를 썰고, 조금은 정성을 들여 국물을 우렸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나름 마음을 담아 끓인 찌개였다.


식탁에 놓고, 밥을 푸고, 반찬을 꺼내는 동안 괜히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늘은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숟갈 떠먹었다. 그리고 순간 멈췄다.

... 이상했다. 짠 것도, 싱거운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맛이 없었다.

된장 맛은 텁텁했고, 건더기들도 따로 논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된장을 너무 많이 풀었나?'
'멸치를 너무 오래 우려냈나?'
'아니면... 그냥 오늘은 운이 나쁜 걸까?'

수저를 내려놓고, 한참을 찌개만 바라봤다.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 그 단순한 사실이 이상할 만큼 마음을 툭 건드렸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나는 늘 결과로 나를 평가해 왔다는 걸. 음식이 맛있으면 기분이 좋고, 맛이 없으면 스스로를 탓했다.

‘내가 제대로 못해서 그렇다.’

‘다른 사람은 잘하는데, 나는 왜 이럴까.’
‘또 실망스러워.’

그건 요리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작은 일에도, 나는 나를 너무 쉽게 ‘성공’ 아니면 ‘실패’로 나눠버렸다.

찬장 위에 올려둔 새 프라이팬을 힐끗 봤다.

반짝이는 그 팬은, 아직 몇 번밖에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도 언젠가는 긁히고, 바래고, 닳아갈 거라는 걸.

물건도, 사람도, 기대와 결과가 늘 같을 수는 없다는 걸.


나는 다시 수저를 들었다.

애호박이 물러 있어도, 국물이 텁텁해도, 이건 내가 오늘 내 힘으로 만들어낸 한 끼였다.

맛없다고 해서 오늘 하루가 무의미한 건 아니었다.

맛없어도 이 밥상을 준비한 마음만은 진짜였으니까.

넓은 그릇에 밥을 퍼서 고추장 한 숟가락과 참기름을 넣었다.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찌개 건더기를 건져서 비볐다. 나는 혼자 피식 웃었다.

"그래도 나쁘진 않네." 혼잣말을 했다.

오늘을 살아낸 나에게 조금은 너그럽게, 조금은 다정하게.

요즘, 나는 실패를 실패로만 보지 않으려 한다. 맛없는 음식도, 어색한 대화도, 어설픈 일처리도, 그저 ‘오늘 있었던 일’로 흘려보내려고 한다.


가끔은 그게 제법 큰 연습이 된다.

나를 미워하지 않는 연습. 나를 너무 빨리 심판하지 않는 연습.

식사를 마치고 싱크대에 접시를 올려두었다. 국물 얼룩이 남은 그릇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다음엔 좀 더 맛있게 끓이면 되지 뭐."

그 생각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성공하려고 요리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려고 요리하는 거니까.

그게 내가 오늘 된장찌개에서 배운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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