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평범함’을 목표처럼 여겼다.
누구나 그럴듯한 직장을 가지고, 적당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크게 문제 없이 살아가는 모습—그게 내가 꿈꾸던 정상의 세계였다.
그러나 그 평범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는지를.
평범은 상태가 아니라 구조였음을 이제는 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
남들과 비교해 안심할 수 있는 범위,
크게 튀지 않으면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지점.
나는 그 구조 안에서 나를 재단했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문제 있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결국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나 자신을 끊임없이 조정하며 살았다.
하지만 평범을 그렇게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큰 노동이었다.
표정, 말투, 감정의 온도까지 하나하나 조절해야 했다.
마치 하루 종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몸은 괜찮은 척했지만, 속은 쓸리고 있었다.
그 불편함이 너무 익숙해져서 언젠가부터는 불편하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평범하게 살아야 안전할 거라고. 하지만 그 안전은 언제나 조건부였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동안만,
사회의 속도를 따라잡는 동안만.
그 조건이 깨지는 순간
평범은 나를 버렸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붙잡고 있던 건 평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을 내려놓자 비로소 새로운 평범이 보였다.
평범은 ‘같음’이 아니라 ‘지속’이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하루를 견디고, 감정을 느끼고,
작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
그게 진짜 평범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평범을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내가 꾸준히 해낼 수 있는 일’.
남들이 인정하는 안정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균형.
그 기준으로 하루를 보면 내 삶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크게 이룬 게 없어도, 무너졌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밥을 해 먹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이제 ‘특별함’보다 ‘지속 가능한 평범함’을 원한다.
그건 어떤 목표를 세우는 일보다 어렵다.
감정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배웠다. 진짜 평범함은 외부의 평가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그건 내 안의 리듬으로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은 대체로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 정도면 괜찮지’, ‘다들 그렇게 살아’— 그 말 안에는 비교의 그림자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 평범은 더 이상 비교의 단어가 아니다.
그건 감정의 안정, 하루의 루틴 속에 스며든 내 고유의 리듬이다.
나는 그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조금씩 나를 느리게, 가볍게 만든다.
이제 나는 특별하지 않다.
출근길의 사람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카페에서 같은 커피를 주문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다르다.
‘또 같은 하루’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 있다’는 실감.
그 감각이야말로 내가 정의한 평범의 핵심이다.
평범을 다시 정의한다는 건 세상과의 관계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삶에서 내 감각을 존중하는 삶으로 옮겨가는 것.
그 변화는 느리고, 조용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속에 진짜 자유가 있다.
나는 이제 남들이 말하는 평범보다 내가 느끼는 평범을 더 믿는다.
더이상 두리번대며 확인하지 않는다.
오늘도 그 평범한 하루를 살아낸다.
크게 웃지도, 특별히 울지도 않은 하루.
커피를 내리는 소리, 햇살에 비친 먼지, 저녁의 공기 속에 섞인 따뜻한 냄새.
그 모든 사소함이 나를 평범하게 만든다.
나는 그 평범 속에서 여전히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 속에서 진짜 평온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