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과 오해

2025년 11월

by 신희

나는 건강해 보인다. 아무런 병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실제로 건강한 사람에게도 그러하고, 매우 아픈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나는 일종의 투사검사지라도 된 것처럼 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나에게 투영해 온다. 병원에는 환자가 있지만, 환자로 불리는 이들은 제각각 다른 지문의 병력과 인생사를 가지고 있다.



환자 #1


너무 아파 보인다. 몇 시간 단위로 진통제를 맞으며, 자신이 맞은 진통제의 이름과 시간을 기록하며, 시계를 보면서 다음 투약 타이밍만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고통스럽고 고통을 잊기 위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의식하지 못하는 말을 내뱉거나 보석십자수 같은 지난한 노동적 취미로 시간의 주관적 속도 감각을 조절한다.


그 언니는 내가 자신과 병기가 같다는 이유로 우리는 죽음을 앞두고 있고 우리는 고통을 견디고 있고 우리는 치료의 끝이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믿음으로 나를 보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서글펐는지, 자신을 거쳐간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를 자꾸만 이야기했다. 나는 같은 병기임에도 우리는 서로 암종과 예후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언니랑 달라요 라고 말하는 순간, 벼랑 끝에서 언니를 밀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통스러운 그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서 내 얼굴 근육들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밀어낼 수도 없었지만, 같이 있을 수도 없었다.



환자 #2


너무 건강해 보인다. 병원에서 생활할 뿐 활기차게 전화업무도 보고 서류 작업도 하는 프리랜서이다. 소등시간이 비교적 이른 병원에서 전등이 부착되어 있는 침상을 찾아서 오래 예의주시했다가 점찍은 자리라고 했다. 밤에도 옆 환자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고 불을 켜고 자신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보통은 조금이라도 더 쉬고 더 자려고 하는 것이 환자의 본능인데, 그 속에서 혼자 흐름을 역행하며 병동을 질주하는 듯 보이는 열혈 워킹녀이다.


그 이모에게 나는 너무 힘이 없어 보인다. 환자처럼 구는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와 경험과 가치관을 쉬지 않고 쏟아내면서 나에게 힘을 주려고 하지만, 나의 힘없음을 보면 마주하기 싫은 불안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 내 모습에서 비쳐오는 불안을 힘껏 털어내려고 내 정신을 뒤흔들어대는 것 같은 것이다. 나는 설명을 한다. 내가 어떤 병인지,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투병생활의 기나김과 기약 없음에 대해 하기 싫은 말을 꾸역꾸역 내뱉는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다. 소용없는 해명을 하다가 내버려 두기를 반복한다.



환자 #3


같은 병, 같은 이력의 병기, 현재 진행 상태의 표기도 동일하다. 병원과 주치의도 같다. 나이도 같다.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보조치료 수단도 동일하다. 우리는 서로 놀란다. 이렇게 비슷한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서로의 하루는 극명하게 다르다. 공격성이 더 높은 암성질을 가진 그녀는 가족도 돌보고 매일 마다 바닷가를 걸으며 완치를 간절히 염원한다. 매끼 두 사람 분의 식사는 거뜬히 해치운다. 그토록 생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가질 수도 있구나 하고 나는 매 순간 감탄한다.


나는 그녀보다 예후가 좀 덜 위험한데, 움직일 힘이 없다. 잘 먹지도 못하고 애써 먹은 음식을 자력으로 소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바깥에 나가자니 너무 더워서 힘들고 혹은 너무 추워서 힘들다. 병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무언갈 읽거나 끄적이거나 한다. 그런 나를 기이하게 바라보며 쌩 하니 생존 현장으로 그녀는 달려간다. 나는 그녀가 휑 하니 지나간 자리를 하염없이 지키고 앉아있다. 우리는 그렇게 다르다.



퇴원을 포기하고 개인공간이 더 좁은 병실로 옮겨오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넓은 창 밖의 풍경이다.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는 창 밖을 말없이 바라보는 편이 더 편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이질감이야 살아오면서 익숙할 대로 익숙해질 나이이지만, 지금은 참 상황이 드라마틱하다 느껴진다. 사소한 차이가 더 슬프고, 조그만 어긋남이 더 불편하고, 소통을 위한 설명이 매번 필요한 것에 지치고 서글프다. 희망을 가지라는 말에도 통증을 느낄 정도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잃어버릴 것 같은 순간에 창 밖을 바라보며 나는 위로를 얻는다. 이 숱한 미세한 오해들의 제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을 매 순간 인식하는 나의 괴로움을 인정해 준다. 그리고 그 오해를 풀어보며 구겨진 다름을 한 장씩 펴볼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이해의 한 조각을 얻었구나 깨닫는다. 그리고 어쩌면 누구와도 조금도 같을 수 없는 이 미묘한 경계에 서 있음이 깨달음의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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