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전화위복
만약 이 세상에 통감을 느끼는 대회가 있다면, 전국 1등 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나는 엄청난 엄살쟁이다. 어렸을 적부터 선풍기가 돌아가면 가까이 가지 못했고(선풍기 휠이 돌면서 나에게 올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특히, 뾰족한 주사가 정말 무서웠다. 아마도 치과, 소아과, 내과 어딜가도 나는 기피대상이었을 거다, 왜냐면 너무 팔딱거리는 아이였다. (주사가 몸에 들어갈 수 없도록 정말 팔딱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들고 부끄러우셨을까.. 절대로 주사바늘이 몸에 꽂히지 못하도록 활어처럼 흔들어대던 나의 몸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참.... 대단한 아이였네 나..
사실 난 지금도 링겔을 맞을 일이 있으면 숨을 꾹 참고 치과에 가면 긴장한 탓에 어깨가 딱딱하게 뭉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출산....이라...
너무 아파서 내가 기절을 하면 어쩌지?
그럴바엔 차라리 나를 기절시키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의 머리 속에서는 이미 50번은 더 출산을 했을 만큼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결론은 그래 제왕절개를 하자 ! 였다.
나를 잠재우면 아기는 안전하게 나올 것이다. 그러고 나서 수술 후의 고통은 그때 생각해보지뭐.
난 임신 30주에 의사선생님과 제왕절개 일정을 잡고 마음을 편하게 먹자 다짐했다.
아랫배가 알싸하다. '똥이 마려운가? 왜 계속 마려운거지?' 생각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느낌이 쎄했다. 전에 새언니가 말해줬던 출산의 신호가 이 느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똥 마려운 느낌, 아랫배가 싸리하게 아프고 응가가 나올 것만 같은 쥐어짜는 느낌..
출산 전 마지막 정기검진 날, 36주 5일
남편이 함께 산부인과에 가겠다는 것을 극구 거부하며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남편의 연차가 아깝기도 했고 스스로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아직 37주도 되지 않았으니 가진통일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회사에 보내고서 집안 청소를 조금 하고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갑자기 알싸한 아랫배 느낌에 마음이 조금은 불안했다.
긴장한 탓일까?
운전경력 15년, 혼자 주차장 벽을 긁어서 생긴 상처를 제외한다면 무사고 15년, 연애시절에 남편의 운전도 가르친 내가 5분 거리도 안되는 산부인과 가는 길에 작은 사고도 냈다.(이것도 산부인과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다 타이어 휠이 긁혔다)
어찌저찌 산부인과에 들어온 나는 곧바로 진료실에 들어갔고 1시간 동안 태동검사를 했다.
그리고 1시간 뒤 아주 적은 양이었지만 출혈이 시작됐고
'산모님, 진진통이 시작되신 것 같아요 바로 응급제왕 시작할게요. 남편 분 오시는데 얼마나 걸리시나요?'
'오늘이요? 정말요? ... 얼른 전화 해볼게요 잠시만요.'
떨리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여보 나 오늘 수술한다는데... 바로 와줄 수 있어?'
'어어...!!! 얼른갈게!! 뭐 챙겨가야하나?! 기다리구 있어 얼른갈게!'
심장이 너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해,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아가야, 왜 빨리 나오려고 하는거니' 얼른 보고 싶다고 했더니 얼른 나오는건가..혼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나와도 괜찮은건가 아직 3주는 더 있어야 하는데..
혼자 많은 생각을 하며 남편을 기다렸다.
헐레벌떡 온 남편은 수술 절차를 밟기 위해 원무과로 향했고 병원에서 하는 코로나 검사를 받고 나에게 왔다.
'문 앞에 있을게, 걱정마 잘 하구와 여보' 걱정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내 손을 잡고 있는 남편에게 안심하라는 듯 웃어보였다.
'응응...다녀올게'
우리는 설레고 떨리며 불안초조한 마음으로 몇 시간 남지 않은 수술을 각자 기다렸다.
나는 수술실에서. 남편은 병실 밖 의자에서.
<언젠가, 혼자 편의점을 가기위해 나왔다가 바람이 살랑여 벤치에 앉아 아무생각 안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