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조기교육
'엄마가 앉아서 밥먹고 놀아야 한다고 했어 안했어!'
밥을 입에 한가득 넣고는 장난감 기차를 향해 달려가다 넘어져 입에 넣었던 음식의 절반이 바닥에 흩뿌려진 순간. 엎어진 채 우는 너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는 나.
우리집 흔한 저녁식사 풍경이다.
꼭 한번은 혼이 나야 앉아서 숟가락에 있는 음식을 입에 넣는 28개월.
그 작은 입에 오늘 만든 저녁밥이 다 들어가야만 마음이 놓인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하다.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잊어버린 나라는 사람이 가끔 아쉽고 서운할 때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 언제였더라? 내가 하던 일이 뭐였더라? 내 취미가 뭐였더라?
스스로 선택한 임신과 육아에 대해 실망하고 후회한 적은 없었다.
다만, 가끔 힘들고 지칠 때. 엉덩이를 털썩하고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 지인이 올린 해외여행사진을 SNS에서 보거나 아기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 밖에서만 봐도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볼 때.
'내가 만약 아기를 낳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까? 더 행복할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던 때가 있었다. 후회한다기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나는 그 시기를 방향을 찾아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낳는다고 해서 모성애가 뿅 하고 나타는 것이 아니었고, 책임감이 용암처럼 터져나오는 것도 아니였다.
부모가 가져야 할 책임감과 엄마가 되는 길을 찾아가고 있던 시기였기에 스스로의 내적인 갈등이었다.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정이 쌓이기 시작한지 3년이 지나고, 한국나이 4살.
가장 이쁘다는 나이를 경험하게 되면서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껏 이 작은 아기가 내게 오면서 한시도 눈을 뗀 적이 없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어디 아픈건 아닌지, 잘 크고 있는 것인지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돌보다 보니
어느새 얻게 된 엄마라는 호칭.
'엄마!'
나를 부르며 조잘조잘 얘기할 때 내 눈에 미소가 가실 날이 없다.
그 작은 입이, 볼이, 눈이 단 한순간도 이쁘지 않은 적이 없다.
이제 너무 익숙해진 우리.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한가로운 주말 오후,
28개월 아기와 남편은 집 바로 앞에 있는 산 둘레길을 걸으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기는 남편보다 앞질러 가다가 갑자기 우뚝 서서는 말했다.
'아빠! 아기가 막 뛰어가면 아저씨가 이노옴~~ 해요!'
'응? 여기 아무도 없는데? 아저씨가 어딨어?'
'아기가 뛰어가면 아저씨가 이노옴~~~해요!'
'?.?'
집에 들어와 나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기 경고랄까?'
'무슨 조기 경고? 조기교육도 아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조기경고. 아직 혼내는 아저씨는 없지만 위험한 곳에서 더 뛰다보면 언젠가는 길가던 아저씨가 다가와 이노옴!!! 한다!!!'
(조기경고에 대한 조기교육이 효과를 봤군.후후)
나를 보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을 보며, 오늘도 난 뿌듯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