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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Jan 27. 2024

마침내, 로봇이 온다 (1)

가까운미래연구소 #01



  안녕하세요 은이은입니다. '토요일의 SF'를 구독하는 분이라면 제가 매주 소설 한 편씩을 올리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전업작가도 아니면서, 한마디로 허황된 꿈이죠.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과연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뭘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흥미로운 인물을 만났습니다. 명함에 '가까운미래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을 새기고 다니는 분이었습니다. 분명히 본명은 아닐 텐데 자기를 '노바 하리리'라고 소개하더군요. 유발 하라리 교수(책도 여러 권 낸 세계적인 석학이죠)를 떠올리게 하는, 그렇지만 어딘가 사이비 냄새가 나는 이름이었습니다. 어떻게 만나게 된 인연인지는 담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인공지능과 로봇, 우주 개척에 관한 주제로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시계를 보니까 한 네 시간이 후딱 지나갔더라고요. 옛날에 제가 기자질을 했던 이력을 살려서 앞으로 하리리 소장에 대해서 뒷조사를 좀 해볼 색각입니다만, SF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하리리 소장과 나눈 대화 내용에 대해 분명히 흥미를 가지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 블로그에 인터뷰 형식으로 연재를 해볼까 합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거든요.

  참, 독자님들이 아셔야 할 게 있는데요. 대화는 기본적으로 최신 기사를 화제로 삼아 진행될 겁니다. 그러나 하리리 소장님이 뭘 전공하신 분인지, 어느 정도 깊이가 있는 전문지식을 알고 계시는지는 아직 검증을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독자분들 가운데 그 분야 전공자가 게시다면 댓글로 오류를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하리리 소장에게 따질게요. 인터뷰에서 '은'은 저이고 하리리 소장은 '하'로 표기합니다.


 소장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작가님 반갑습니다. 작가님 뵙기로 하고 어떤 소설을 쓰시나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SF를 쓰시더라고요. 소설에 로봇이 등장하고요. 제목이 아마 거기에 진주가 있었다 이었죠? 로 재미 없던데요.


 첫 대화부터 '팩폭'이네요. 혹시 소장님 평소 '예의 없다'는 말 안 들으세요?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김초엽, 천선란, 이경희 이런 작가님들 소설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좌절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장님 이름으로는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아무 책도 안 나오던데요?


 그렇지요. 문제가 말입니다, 제가 많은 준비를 하고 드디어 이제는 책을 쓸 수 있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LLM(대규모 언어 모델, 오픈AI의 GPT나 네이버의 클로버X 같은 인공지능을 일컫는 말이다)이 짠 하고 나온 겁니다. 게다가, 로봇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는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Dynamics) 정도만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미치광이 일론 머스크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를 발표하고 피겨(FIGURE)라는 로봇까지 등장하다 보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작가님 아시겠지만 그게 소설이든 뭐든 책을 쓰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변명은 됐고요. 우리 오늘 만나게 된 건 바로 그 FIGURE라는 로봇 때문 아닙니까?


 정확히 얘기하면 그 로봇 자체가 아니라 독일 자동차 업체 BMW 때문인 거죠.

은 네. 저도 '제 2의 러다이트 사태'에 관한 내용을 제 장편소설에 녹인 적이 있는데, 1월 24일에 나온 그 기사 제목 보고 처음에는 '가짜뉴스'아닌가 했습니다. 그런데 못 들어본 매체도 아니고 통신사인 연합뉴스발 기사이더라고요. 연합뉴스가 인용한 매체는 미국의 악시오스이고요. (관련 기사 원문 링크는 글 아래 제시되어 있습니다.) 'BMW가 생산라인에 사람의 신체와 형태가 비슷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냥 미래 어느 날 그렇게 할 생각을 해봤다, 이런 게 아니고 굉장히 구체적인 계획이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 공장에 투입할 거라는 겁니다. 로봇을 만든 회사, 피규어의 CEO는 '향후 2년 안에 인간형 로봇이 실제로 사용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2년이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거든요. 하다못해 테슬라의 사이버 트럭도 인도 시기가 계속 지연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중요하게 보는 건 첫 번째, 학교나 연구기관이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인 BMW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고, 실제 구체적인 계약을 맺었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로봇이 더 이상 공상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넘어오고 있다는 거죠.


 저도 동의합니다. 소장님 아까 LLM과 일론 머스크의 로봇 옵티머스 얘기를 잠깐 하셨는데요, 과학자가 아닌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따로따로가 아닌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진도를 너무 빨리 빼시는 거 아닌가요? (웃음) LLM을 이야기하려면 인공지능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하고, 로봇에 대해 얘기를 하려면 그 또한 짚을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동의합니다. 먼저 로봇 얘기부터 풀어보죠. 로봇이란 말은 극작가이자 각본가인 카렐 차페크가 쓴 희곡 R.U.R에서...


 아니요. 저도 다 아는 얘기고요. 그리스신화의 탈로스 얘기도 지겹도록 읽었습니다. 로봇의 역사는 그냥 건너뛰시죠.


 그렇죠? 아는 사람들끼리 그럴 필요 없겠죠? 그냥 스킵하고 최근까지 로봇 분야 선두주자였던 보스턴다이내믹스 얘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제가 보스턴다이내믹스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다가 얼음판에서 미끄러질 듯 미끄러질 듯하면서 중심을 잡는 개? 소? 같은 사족보행 로봇을 봤습니다. '빅 독'이죠. 깜짝 놀랐어요.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라고요. 누가 조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로봇에 대해 제가 갖고 있던 상식을 완전히 깨는 영상이었습니다. 

이 회사는 DARPA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미국 당국이 군사용 목적으로 쓰일만한 기술이라고 본 거죠. 같은 회사에서 개발한 두 다리로 걷는 로봇 아틀라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틀라스는 지금 유연하게 공중제비를 넘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특징을 잡는다면 두 가지입니다. (1)로봇의 움직임에 인공지능을 결합했다는 것이고 (2) 빅독이나 아틀라스 모두 모터 구동형이 아닌 유압식 제어방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피겨나 옵티머스는 빅 독이나 아틀라스와는 크게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아직 동작의 수준으로 보자면, 아틀라스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던데요. 이제 걸음마를 걷는 정도랄까? 그래서 연합뉴스나 악시오스 보도가 가짜뉴스가 아닐까 생각을 했던 것이고요.


 작가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특히 머스크가 작년에 처음 옵티머스를 무대에 데리고 나와 직접 소개했을 때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비웃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머스크가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 계획을 밝히고 있다. 머스크 왼쪽 편에는 겉면이 외장으로 덮인 차세대 옵티머스 모델이 서 있다. (사진= AFP)


그런데 제가 보는 관점은 완전히 다릅니다.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을 썼죠. 제가 보기엔 작년에 그리고 올해 벌어지고 있고 벌어지는 일들은 '특이점'에 해당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봅니다.


로봇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글쎄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죠? 저도 SF를 쓴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2001년에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세상이 오지 않았고, 2020년이 벌써 지났지만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의 세상은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말 자르지 말고 들어보세요. 자꾸 끼어드니까 정신이 없잖아요. ( 그렇다고 화를 내실 건) 제가 크게 달라졌다고 했죠? 설명을 위해서는 일단 빅 독의 움직임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걸을 때 생각을 해보자고요. 내가 오른쪽 허벅지 근육을 움직여서 일단 다리를 들고,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을 이용해서 내리고 발목에 힘을 주어 디디고, 그다음에는 왼쪽 다리를 비슷하게 움직이고... 이렇게 하지 않죠? 인간의 뇌는 매우 다층적입니다. 가장 낮은 단위에서 반사행동은 뇌를 거치지도 않고 척수가 처리하고요, 신체 균형 유지는 소뇌의 역할입니다. 그 밖의 다른 기능들과 관련해서는 뇌를 '삼위일체'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파충류의 뇌(Reptilian Complex)'와 변연계(Limbic System), 대뇌피질(Neocortex)이 그것입니다. 뇌과학과 관련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까 여기서 줄일게요.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요. 

제가 빅 독의 움직임에 대해 말한다고 했죠?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대단했던 이유는 로봇이 걷는 방법을 프로그래밍(인간이 계획한 대로 움직이게 하는) 한 게 아니라, 로봇이 스스로 배우도록 했다는 데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쳐서요. 이게 되게 복잡한 것이긴 한데, 일단은 이렇게만 얘기할게요. 아까 인간이 움직이는 방식과 인간의 뇌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도 이걸 설명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아주 쉽게 말해서 로봇에게 인간의 척수와 소뇌를 준 겁니다. 그러니까 발로 밀어도 안 넘어지고 심지어 빙판을 잘못 디뎌도 이리저리 발을 움직여서 균형을 잡을 수가 있는 겁니다. 인간이 조종을 안 하는 데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빅 독이나 아틀라스 특징의 첫 번째는 이해가 되는 거죠?


 네, 저는 아는 내용입니다.


 들으면서 모르는 눈치던데... 하여튼 아는 내용이라고 하시니까 다음으로 건너가겠습니다. 그런데 빅 독이나 아틀라스가 나오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시면 아마 '윙'하는 소음이 들릴 겁니다. 그게 뭐냐면 유압모터가 작동하는 소립니다. 왜 포클레인이나 기중기 이런 장비들을 보면 팔에 유압장치가 달려있잖아요? 디젤엔진으로 유압, 그러니까 기름펌프를 작동시켜서 실린더에 밀어 넣어서 팔을 들고 내리고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규모는 작지만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들도 바로 그 유압장치로 작동합니다. 전기 모터가 아니고요. 

왜 이런 방식을 채택했냐면, 중장비가 그러하듯 힘을 쓰기가 유리하고 어떤 면에선 전기 모터보다 설계가 덜 복잡합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단점도 많습니다. 첫 번째, 시끄럽습니다. 만약 집에 그런 로봇을 들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견딜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아주 미세한 움직임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달걀을 잡는다던지 이런 동작은 할 수가 없죠. 유튜브에 들어가서 보스턴다이내믹스 동영상을 보세요. 공중제비를 도는 아틀라스는 손이 없습니다. 

참, 그리고 아틀라스나 빅 독이나 유심히 살펴보시면 공통적으로 머리나 몸통 앞에 뭔가 계속 돌아가는 부품이 있습니다. 그게 뭔 지 아세요?


 글쎄요.


 소설을 쓴다면서 관찰력이 부족하시군요. 그게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라는 부품입니다. 초기 자율주행차에 흔히 부착되었던 부품입니다. 레이더(Radar)는 아시죠? 그거랑 비슷한 것이긴 한데 전파를 쏘아서 그 반향으로 물체나 지형을 탐색하는 레이더와 달리 라이다는 레이저를 360도로 쏘아서 탐색을 하죠. 그러니까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이 방식으로 주변의 사물과 지형을 인식하도록 로봇을 개발했습니다.


 라이다가 자율주행차에 쓰인다고요? 뭘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 아니신가요? 테슬라 모델엔 그런 부품이 안 보이던데요?


 그렇죠. 제가 하려던 얘기를 먼저 꺼내셨네요. 그럼 자연스럽게 이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과 제가 '특이점'이라고까지 찬사를 바친 새로 나온 두 로봇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루하실까 봐 두괄식으로 먼저 정리를 한 번 하죠. 

첫 번째, 새 로봇(앞으로 피겨와 옵티머스를 간단하게 '새 로봇'으로 줄여 부르겠습니다)은 개념적으로 인간이 있는 자리에 함께하거나 그 자리를 대체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인간의 체형, 인간의 손). 두 번째, 새 로봇은 차원이 다른 인공지능과 연계되어 개발되고 있습니다(시각정보로 주변 사물을 인식, LLM과 연계). 세 번째, 새 로봇은 전기모터(전기 액추에이터)로 작동합니다.


(계속) 



https://www.yna.co.kr/view/AKR20240124057600009

Humanoid robots will join BMW's production line (axios.com)

https://www.youtube.com/watch?v=Q5MKo7Idsok

머스크가 야심차게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성능은? : ZUM 뉴스

https://www.figure.ai/  

카렐 차페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서양고전학자 김동훈의 물질인문학](8)고대인이 상상한 로봇은 자기조절력 갖춘 ‘탈로스’…오늘날의 AI와 닮았다 - 경향신문 (khan.co.kr)

BigDog Reflexes (youtube.com)

Atlas Gets a Grip | Boston Dynamics (youtube.com)

특이점이 온다 | 레이 커즈와일 - 교보문고 (kyobobook.co.kr)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나무위키 (namu.wiki)

2020 우주의 원더키디 - 나무위키 (namu.wiki)

뇌 | 인체정보 | 의료정보 | 건강정보 | 서울아산병원 (amc.seoul.kr)

삼위일체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레이더와 라이다 (tistory.com)

액추에이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전기, 공압, 유압 액츄에이터의 차이점-뉴스-Tianjin Freya Automation Technology Co., Ltd (autovalveactua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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