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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Nov 16. 2019

더 종속되던지, 따로 살 길을 찾던지

[분석] 네이버 '미디어 커넥트 데이'가 뉴스 콘텐츠 업계에 던진 화두

네이버 '미디어 커넥트 데이'(2019.11.12)의 맨 마지막은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이번 개편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성숙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저희가 가고 있는 기술 플랫폼의 방향성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김성철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팬 비즈니스(fan-business)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예전에는 사실 언론사를 유저들이 직접 구독하고 선택하고 집에 신문이 배달되거나 본인이 원하는 방송을 보고 하는 그런 구조 속에 있었는데, 네이버가 골라내고 네이버가 하고 하는 여러 가지 구조속에 있다 보니 통칭해서 '네이버 뉴스'라고 언급되는 이런 구성도 좀 이상한 것 같고 그런 부분에서 각 언론사들의 브랜드도 더 잘 보이고, 독자들이 원하는 언론을 선택해서 보시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인터액션(inter-action)도 좀 더 언론사 중심으로 바꿔내는 게 저희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성숙 대표의 말속에 '기술 플랫폼', '구독', '네이버 뉴스', '인터액션' 등 눈에 띄는 키워드들이 있었다. 이 행사와 관련해 '전재료 폐지'를 제목으로 뽑은 기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필자는 이번 발표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요컨대 플랫폼으로서의 포털이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이다. 우리나라 뉴스 콘텐츠 시장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순간이다.


구독과 인터액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디지털 시대에 성공한 '뉴스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구독'이다. 그리고 이 구독 모델의 핵심은 독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터액션'이다. 즉 디지털 시대에 뉴스 생산자는 독자들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해야 함은 물론, 그 제공된 콘텐츠를 독자들이 언제 얼마나 오랫동안 소비했는지 등의 반응을 계측해 다시 '맞춤형 콘텐츠'를 만드는 데 반영해야 한다. (물론 돈을 내고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콘텐츠의 힘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네이버 뉴스 


이를 위해 각 언론사는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역시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독자가 찾아와야 한다는 아주 당연하고 근본적인 조건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즉 손님이 찾아오지도 않는 식당에 '맞춤형 메뉴'라는 게 의미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다른 어느 나라와도 달리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뉴스 소비가 포털 안에서 '인링크(in-link)'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즉 언론사로 손님이 찾아오지도 않고, 각 언론사들은 독자들의 반응을 감지하고 인터액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 대표가 "네이버가 (뉴스를) 골라내고 네이버가 (편집을) 하고 하는 여러 가지 구조속에 있다 보니 통칭해서 '네이버 뉴스'라고 언급된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런 맥락이다.


기술 플랫폼의 방식 


그런데 기존 언론사들이 포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지금까지 '기술 플랫폼'의 방식이 아니었다. 좀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해마다 갱신되는 종이 계약서를 매개로 언론사가 갑, 포털이 을의 위치에 있었다. 포털(네이버)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언론사와 비교할 수 없이 힘이 약했고, 그래서 당시 포털은 언론사에 '뉴스 콘텐츠를 제공해 달라'라고 고개를 숙였었다. 종이 계약서는 그 당시 '힘의 관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네이버는 이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네이버 발표 후반에 앞으로의 일정이 제시되는데 자세히 보면 2020년 2월, "새로운 약관 시스템 오픈"이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다. 즉 이제 네이버도 종이로 된 계약서를 주고받지 않고 글로벌 플랫폼인 페이스북이나 유튜브가 하듯이 '기술 플랫폼'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이는 과거의 갑과 을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겠다는 선언이다.  


질의응답 시간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 대표는 슬쩍 흘리듯 이런 얘기를 한다. "그동안 연말만 되면 계약서를 갱신하느라..." 한 대표가 입 밖으로 내보내지는 않았지만, 필자는 이 말에 '껄끄러운 언론사들을 상대로 계약서를 갱신하느라 그동안 고생을 했는데 앞으로는 이런 시간 낭비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속내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김진규 네이버 홍보부장은 “70개 넘는 언론사와 1년 내내 개별 협상을 해왔는데 매우 소모적이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학계와 지표를 개발해 수익 모델을 변경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더 종속되던지, 따로 살 길을 찾던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네이버는 이번 발표에서 '더 정교한 지원 툴'과 '언론사 중간광고'라는 두 가지 당근을 던졌다. 즉 △ 뉴스 콘텐츠 유통의 대세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구독 모델'을 언론사들이 실현시킬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더 잘 도와주고 △ 광고 영업도 언론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게 기사 본문 중간 광고를 포함해 광고판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전제가 있다. 네이버 안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물건을 마트로 다 가져와서 그 안에서 팔라는 것이다. 심지어 언론사가 제보를 받는 시스템도 네이버 안에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어뷰징 기사가 더 많아지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지만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당장은 달라질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네이버가 도입하겠다는 'not good 팩터'때문에 그동안 어뷰징, 보도자료 기사 등으로 돈을 벌어왔던 일부 매체들이 그런 류의 행동을 중단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좀 더 큰 그림에서 볼 때, 이번 네이버의 발표를 기점으로 '포털에 종속된 뉴스 콘텐츠 산업'이 지금보다 더 종속의 강도가 심해지는 방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지금 언론사들은 새로운 구독 모델을 구현할 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는 데다 포털에 의존하는 길이 당장 더 쉽고 달콤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모바일이 모든 광고를 빨아들이는 현상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고 신문이나 방송 모두 앞으로는 광고주를 찾기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SBS는 '스브스 뉴스'를 내놓는 등 지상파 방송사 가운데서는 그나마 새로운 흐름을 잘 따라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지금 SBS 구성원들이 느끼는 조직에 대한 위기감은 심각한 것 같다.  


"SBS는 기후 변화로 녹아버린 유빙 위에서 먹이를 찾지 못해 야위어 가는 늙은 북극곰의 처지가 됐습니다. 점점 녹아가는 빙하 위에서 버틸 것인가. 생존을 위해 바다로 뛰어들 것인가. 우리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SBS 미래 주체들이 내놓은 10가지 제언, 전국 언론노조 SBS본부(2019.11.12 )


종이신문 가운데 '디지털 퍼스트'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중앙일보도 최근 인재 몇 명이 회사를 나가 뒤숭숭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카카오가 새로운 메일 서비스를 내놓았다. 정식 서비스는 내년에 한다고 한다. 그런데 카카오의 이 새로운 메일 서비스는 노림수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앞서 '뉴스를 바꾸겠다'는 카카오의 속내에서 필자는 카카오가 내년에 '구독형 뉴스 서비스'를 내놓을 거라고 한 바 있는데, 새로운 메일 서비스는 이를테면 '전주곡'에 해당되는 준비 단계로 보인다.

 


구독 서비스의 기반은 대개 메일이다. 성공한 구독 모델은 다 이메일로 작동한다. 그런데 사용자들이 그동안 써왔을 것으로 여겨지는 기존 메일은 잡다한 스팸들이 다 섞여있다. 새로운 구독 서비스를 하기엔 지저분하다. 어느 날 한 언론사가 "앞으로 독자들을 위한 구독 서비스를 할 테니 메일 주소를 새로 만들라."라고 공지한다면 사람들은 "뭐야, 돌았어?"라고 하겠지만 대형 플랫폼 사업자(카카오)가 하면 상황이 다르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워너비 메일 주소로 새롭게 시작하세요!"라는 구호에 끌리게 된다. 즉 플랫폼을 위해 자진해서 나의 정보를 헌정하는 행위를 유도할 수 있다.


뒤 번째 위 그림에 보면 '카카오 콘'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새 이메일을 만들려면 '카카오 콘'이 있어야 하는데 메일을 만들 때 필요한 '10 카카오 콘'은 공짜로 준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예상이지만, 이 카카오 콘은 콘텐츠를 유료 구독하는 데 사용되는 교환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즉 별도의 결제 모듈에 들어가 결제하는 수고를 덜도록 함으로써 구독 경제의 가장 큰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2020년 4월. 앞으로 4년 정치권력의 향방이 정해지는 시점이기도 하지만, 뉴스 콘텐츠의 영역에서는 과거의 질서가 무너지고 플랫폼이 우뚝 서는 새로운 질서가 선포되는 시점이 될 것 같다. 아닐까?


네이버 미디어 커넥트 데이 발표 내용

https://brunch.co.kr/@storypop/186

네이버 미디어 커넥트 데이 QnA

관련기사 및 자료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46841 

http://www.zdnet.co.kr/view/?no=20191112113134

http://www.zdnet.co.kr/view/?no=20191112145137

http://www.sbsunion.or.kr/news/articleView.html?idxno=784

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9176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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