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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Apr 02. 2016

밀라노행 완행열차 - 복도가 있는 열차의 풍경

아들과 함께한 이태리 20일 #4 밀라노행 완행열차

계획을 세우면서 힘들었던 대목은 어떤 교통수단으로 움직일까 하는 것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어떻게 일정을 짜고, 어떤 교통수단으로 움직일까 하는 것이었다. 이태리라는 곳을 처음 가는 입장에서 교통수단이 각각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고, 특히 10년 전 경험에 비춰 열차를 탄다는 것이 매우 위험천만한 일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휴양지의 옛 유적

10년 전에 무작정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스페인의 한 시골 휴양지에서 기차역에 갔다가 도무지 어떤 열차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알지 못해 몇 번의 심각한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당시 스페인의 시골 역에선 티켓 오피스를 비롯해서 어떤 사람도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었다. (천우신조인지 당시 플랫폼에서 만난 붉은색 재킷을 걸친 현지 남자가 영어를 할 줄 알았고, 그 사람이 가는 곳이 우리가 가는 곳과 동일했기 때문에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는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택한 코스는 먼저 로마로 들어가서 밀라노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그 뒤에는 여느 관광객들처럼 밀라노 - 베니스 - 피렌체 - 로마 이런 코스를 밟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로마에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 여행이 어쩌면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린트한 승차권을 탑승권으로 교환할 필요는 없다



위 사진은 티부르티나에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표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렇게 프린트된 기차표만 있으면 될 뿐 이걸 다시 탑승권으로 교환할 필요가 없다. 검표원이 몇 차례 지나가는데 프린트된 이 종이를 보여주면 만사 오케이다. 


트란이탈리아 사이트를 통해서 표를 예매했는데, 비교적 서두른 탓인지 성인 두 명에 18유로로 티켓을 샀다. 물론 7시간 이상 걸리는 완행이긴 하지만 비싸지 않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열차의 이름은 인터시티(InterCity590)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첫 번째 상자 중간쯤에 기차 종류가 표시된다. 

내가 이 글을 별도로 쓰는 이유는 내가 선택한 로마-밀라노 열차 여행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이다.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별로 공유할 필요가 없는 경험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정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보통 촉박한 일정으로 이태리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에는 기차 안에서 7시간이나 시간을 쓴다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이하게 20일을 이태리에서 보내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이 가능하다. 


우리가 탔던 인터시티 열차는 구조가 매우 특이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열차는 열차의 좌 우로 좌석이 배치되고 가운데에 통로가 위치하는 구조인데, 이 열차는 열차의 한쪽에 좌석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통로가 자리 잡고 있는 형태였다.


장단점이 있을 텐데, 한 가족이 격실로 분리된 칸에 함께 갈 수 있다면 긴 여행이라도 매우 아늑하고 쾌적하겠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탈 경우라면 상당히 불편하고 괴로울 수 있는 구조였다. 

잘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구조이기 때문에 가족단위가 아닌 자투리 남은 좌석을 아주 싼 값에 내놓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격실은 총 6명이 함께 앉는 구조이다. 그리고 의자와 의자 사이에 충전용 USB 포트가 달려있는 등 현대적인 시설이 갖춰져있긴 하지만 반대로 앞사람과의 간격이 매우 좁아서 거의 무릎이 부딪칠 정도다. 

7시간은 이태리 농촌 풍경을 감상하고 푹 잠을 자는 것으로 소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USB 포트가 달려있는 만큼, 배터리 소진을 염려하지 말고 미리 다운로드하여놓은 영화를 한 편 감상하는 것이 좋다. 

이태리에 가 보면 주인의 손에 이끌려 거리를 걷는 개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아 반려동물이 정말 많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우리 앞자리에 앉은 동행인은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과 정확한 품종은 알 수 없으나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털을 가진 개 한 마리였다. 물론 7시간을 보내는 동안 잘 생긴 이태리 남자,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등등으로 한 자리의 승객이 계속 바뀌었지만 여자와 개는 밀라노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함께였다. 


동행인은 동물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을 매우 기뻐했다. 아래 그림은 그 증거이다. 


개의 이름은 '쉬라'였다. 놀라웠던 건 사람이 견디기에도 쉽지 않은 7시간 동안 쉬라는 별 말썽도 없이 잘 지냈다. 

스케치에 집중하는 동행인과는 달리, 나는 창문 밖 이태리 풍경을 감상하려고 애썼다. 기차를 탄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태리라는 나라의 느낌을 도시 아닌 농촌의 풍경에서도 느끼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나갔던 곳에는 평야가 많이 관찰되었다. 우리 농촌지역과는 달리 비닐하우스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겨울인데도 인공잔디를 깔아놓은 듯 채도가 높은 초록색으로 펼쳐진 들판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 때문인 건지 사각형에 삼각지붕을 세운, 아니면 사각형만으로 모양을 낸 집들이 가끔씩 아담하게 그 채도 높은 벌판 위에 서 있었다. 정말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었다. 


마침 우리가 서울을 떠나온 그 시점에, 서울에는 심각한 한파가 몰아쳤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의 문명, 그리고 문화라는 것은 우리가 처한 자연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후에 보겠지만 로마나 피렌체 등등 이태리 곳곳에는 돌로 만들어진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대리석이라는 가공하기 좋고 불에 타지 않는 재료를 구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리라.

대신 로마에서는 수돗물은 물론 생수에서도 석회 덩어리가 나온다. 정말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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