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한 이태리 20일 #11 베니스 거리의 악사
베니스를 떠나며
24시간, 바포레토 티켓은 아직 유효했다. 우리는 다시 광장으로 나와 베니스에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 사람들이 북적였다. '빨간 머리의 사제' 안토니오 비발디와 리하르트 바그너가 머물렀던 곳. 우리가 떠난다고 해도 아쉬워하지 않을 이방인들의 섬.
산마르코 광장 앞바다에는 보트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찾아보니 베니스에서는 매년 9월 첫째 일요일에 30km 거리를 노를 저어 겨루는 'The Venice Historical Regatta'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바포레토는 햇살이 반짝이는 대운하(Grand Canal)를 따라 나아갔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구겐하임 미술관, 아카데미아 미술관, 리알토 다리, 프란케티 미술관 등등을 지나가는 코스였다. 이런 명소들 앞에는 거의 대부분 바포레토 정류장이 있었다.
바포레토에서 '체사 디 산게르미아'를 보게 된다면, 산타루치아 역에 거의 다 도착한 셈이 된다.
열차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며 역 오른쪽으로 나있는 좁은 골목길(Rio Tera Lista di Spagna)을 구경했다. 여기는 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만큼 막 도착한 사람들이나 떠나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러 가게 되는 장소인 것 같았다. 한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많았는지 한국어로 된 메뉴판을 창문에 붙여놓은 식당도 눈에 띄었다.
그 골목길을 따라서, 베니스의 특산품인 가면들과 젤라토 같은 먹거리를 구경하다 보면 조그만 광장(Campo San Geremia)이 나온다. 이 광장은 넓이도 그렇고 거리 연주를 하기에, 그 연주를 듣기에 아주 적당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베니스에서 본 것은 내 안에 흐르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마침 콘트라베이스, 포크 기타, 클래식 기타 등 3인조로 구성된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음악성이 뛰어난 연주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관광객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기엔 더없이 좋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연주였다.
베니스를 떠나며 생각했다. 나는 베니스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이 남았을까?
수로에 찰랑거리는 물결과 좁은 골목에 드리우는 변화무쌍한 빛과 그림자. 화석처럼 시간을 잊고 서있는 건물들과 노란 조명 아래 오가는 사람들.. 그보다는 거리의 악사들, 그 연주의 빠르고 느린 템포처럼 우리 안에 흐르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아니었을까?
다음 행선지로 우리를 데려갈 기차가 보였다. 다음 행선지는 피렌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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