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if 2020을 설명하는 네 가지 키워드
만약 현재를 기억한 채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도 많은 시간을 수학 공부에 투자할 것이다. 인문학도로서, 그것도 종교학 전공에 철학을 부전공한 사람으로서 말과 글, 생각의 위대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종종 열패감을 느낄 때가 있다. 여전히 콘텐츠의 힘은 세지만 그 콘텐츠가 전달되는 방식은 혁명적으로 변하고 있고 그래서 과정(혹은 유통, 생태계) 자체가 본질을 흔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생태계 변화의 핵심은 기술이고 그래서 기술을 손에 쥔 사람들이 변화를 선도한다. 공대생이 아니라도 그 변화의 구조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그 변화의 중심으로 깊이 뛰어들고 싶은데 그러기엔 앞에 선 장벽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런 다소 생뚱맞은 말을 서두에 꺼내는 이유는 여기서 하려는 얘기가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kakao if) 내용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발자 대상? 그 얘기를 왜 내가 읽지?' 이런 식으로 회피하지 말자는 얘기다. 기술이 주도하는 키워드들을 이해지 못하면 흐름에서 뒤처지고 도태되고 나아가 증발하게 된다.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을 통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카카오(김택수, felix)에 따르면 내년부터 카카오톡에 몇 가지 새로운 기능들이 생긴다. 카카오톡의 #클라우드 기능이 강화된다. 대화로 오간 문자, 사진, 동영상 등을 별다른 조작 없이 클라우드에 담기게 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톡서랍' 기능이다. 카카오톡 대화방은 더 유용한 #연결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선된다. 이른바 '팀채팅' 기능이 도입된다고 한다. 또한 사용자가 상황에 맞게(즉 보이는 대상에 따라) 다른 프로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신분증'을 카톡 안에 저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런 기술적 기반 위에서 특별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카톡 안에서 찾는 '인물 검색'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카오톡 채널도 큰 틀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거라고 한다. 지금도 카카오톡 채널을 통한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홍보, 메시징 서비스 등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카카오톡 채널을 그 목적에 따라 '스토어 채널', '상담 채널', '미디어 채널' 등으로 용도에 따라 특화해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다른 페이지로 벗어나지 않고 #구독자들이 들어와 있는 그 채널 화면에서 바로 구매, 상담 등의 비즈니스를 실행할 수 있다고 카카오(정의정 Charles)측은 설명했다.
앞의 두 패러그래프에서 제목에 강조했던 키워드 4개를 '#' 기호를 붙여 구분해놓았다. 이렇게 한 이유는 뒤에서 전개하는 설명들을 읽은 뒤 다시 앞으로 와서 다시 보면 같은 키워드들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 카카오가 시도하는 변화는 연결과 구독의 경제를 '카카오 톡'이라는 플랫폼에서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이고, 만약 이 시도들이 제대로 성공한다면 코로나로 더 가속화되고 있는 질적인 변화가 산업의 구조를 통째로 흔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카카오가 새로운 구독 모델, 특히 유료 구독 모델을 설계하고 있다는 걸 필자가 안 것은 상당히 오래전이다. 초기에 이 구독 모델은 콘텐츠 유통만 고려했다. 그러나 카카오 수뇌부의 결정으로 별도로 진행되고 있었던 커머스 모델과 통합해서 진행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 결과 서비스를 시작하는 시점은 상당히 늦어졌다. 그런데 나는 '통합하자'는 결정이 맞는 방향이었다고 본다.
“모든 참여자는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중개사, 중개상, 대리인, 묶음 상품 판매자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 결과 거대한 중개자 한 명만 살아남게 된다. 바로 플랫폼 소유자다. 이제 플랫폼 소유자가 모든 거래에서 '통행료', 곧 수수료를 거둬들인다.” <증발>, 로버트 터섹 지음 김익현 옮김 p.82
<증발>은 콘텐츠 유통 생태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즉, 핸드폰의 등장으로 신문, TV나 Radio를 통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드물어진 것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동네 책방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승승장구하던 대형마트들도 쓰러져간다. 심지어 백화점도 '드라마 커머스'를 하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같은 맥락에서 구독 서비스는 이제 손에 잡을 수 있는 것과 잡을 수 없는 것, 콘텐츠와 가리지 않는다. '거대한 중개자', '플랫폼 소유자'에 의해서 장악되어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거래는 연결, 연결에 기반해 흐르는 정보가 중요한데 플랫폼이 연결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장면 1 : 그냥 구독이 아니라 유료 구독이다. 지금은 포털이 각 언론사의 기사를 인링크 방식으로 배치하고 그 대신에 '전재료'라는 걸 준다. 얼마 전 네이버도 유료 구독 서비스를 5개 언론사와 시범적으로 실시한 바 있다. 카카오도 언론사들에게 '유료 구독 모델'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 서비스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을 때 카카오는 굳이 뉴스 전재료를 따로 내줘야 할 필요를 느낄까? 전재료를 주지 않게 된다면 뉴스를 배치하는 (안 그래도 정치적으로 매번 곤란한 상황이 나오는데) 방식도 달라질 것이고, 포털에 기대 생존하는 9천여 개의 언론사는 다른 생존 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유료 모델의 OTT가 등장한 뒤 기존 지상파 TV나 IPTV까지 생존을 걱정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진정한 의미의 '신문의 위기'가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장면 2 : 전문가 집단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변호사 업계의 관행도 상당히 달라질 것 같다. 지금은 카톡에서 누가 '변호사다'라고 자기를 소개하면 그걸 믿을 수가 없었다. 신분이 인증된 상황이라면 (요즘 놀랍게도 우리는 QR 코드를 통해 저항 없이 플랫폼에 의존에 신분을 인증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대면이 쉽지 않은 요즘 멀리 소개 소개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기보다 일단 카톡으로 상담을 받아보는 경우가 많아질 것 같다. 전문의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상담과 처방만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생기지 않을까?
#장면 3 : 내가 소규모로 도자기를 제작하는 도예가라고 할 때 카카오에서 채널 개설 만으로 구독도 채팅도 판매도 결재도 된다면 가게를 내지 않아도 되니까 '팔아 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게 훨씬 더 쉬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영업자들이 많아진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형 책방이 사라진 것처럼 또 많은 자영업자들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의 수 보다 '비트코인'이라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다. 블록체인 기술은 내가 이해한 대로 쉽게 말하자면 어떤 거래가 일어난 증명을 조각으로 #분산해서 거래 당사자들이 다 영수증처럼 보관하는 거래를 말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이런 기술의 기반에서 각국의 #중앙은행 통제를 벗어난 화폐를 발행해보자는 시도 가운데 일종이다. 즉 지금까지의 모든 금융시스템은 중앙 집중적인 방식으로 인증을 하는 것인 데 반해 블록체인 기술은 그걸 참여하는 거래당사자들의 분산된 시스템으로 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한재선 그라운드 X CEO의 얘기를 들어보자.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뭔가 혁신적이긴 한데 이상하고 어디에 서야 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물건이었던 거죠.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웹이나 이메일 같은 킬러 스비스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기술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고 이제는 인터넷이 주는 파괴력과 영향에 대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블록체인은 같은 정보를 여러 대의 컴퓨터에 복사해서 저장을 합니다. 어떤 컴퓨터든 정보를 조작하게 되면 그것이 들통나게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컴퓨터들의 정보와 비교를 해보면 조작 여부를 쉽게 알아낼 수가 있거든요." "중요한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 블록체인입니다." "블록체인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기술입니다. 더 이상 컴퓨터를 운영하는 그 운영기관을 우리가 신뢰할 필요가 없습니다."
카카오가 이런 블록체인 기술에 돈을 들여 회사를 만들고 그 기술의 기반에서 여러 시스템을 돌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카카오라는 플랫폼은 앞서 강조한 것처럼 연결과 구독, 그 플랫폼을 통한 거래(신용, 물물, 정보 등등)가 더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돈을 많이 벌게 되는 회사인데 그 흐름에 '깨질 수 없는 신뢰'라는 안전장치까지 달아놓겠다는 뜻이다. 특히 이 안전장치는 중앙이 정한 기준(예를 들어 공인인증서)에 얽매이지 않고 다중 간의 분산된 시스템으로 암호를 구축하기 때문에 한국은행이나 한국 정부라는 국가 단위를 넘어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이게 되겠어? 어떻게 믿겠어?'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 19, 그리고 판데믹 상황에서 더 빨라지고 있는 모바일 디바이스 중심의 생태계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음식점에 들어갈 때 아무 생각 없이 네이버 앱이나 카카오톡을 실행시켜 'QR코드 인증'을 하고 있고 이걸 수기로 명부에 적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곰곰이 따져보면 이 과정(포털에 인증을 해 놓은 전화번호 등 나의 개인정보가 암호화되어 QR코드로 변환되고 음식점의 단말이 나의 신분증명을 읽어 확인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의 신분증명을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서막이다.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공인인증서가 PC 인터넷 시대, 중앙집중적인 금융서비스의 상징이라면 이제 포털을 통한 신분 인증이 'Next 공인인증서' 시대의 대세가 될 것이다. 휴대폰이 카메라, 다이어리, 달력 등을 빨아들인데 이어 면허증, 신분증, 학생증, 각종 자격증 등등을 전부 흡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나는 삼성전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즉 삼성전자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접으니 그동안 클라우드에 올라간 사진이나 메모 등등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서비스 원드라이브로 올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단언컨대 삼성은 앞으로 기계를 만드는 일 외에 다른 서비스를 절대로 성공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삼성은 소프트웨어와 관련해 여러 서비스들(음악, 클라우드, OS 등등)을 내놓았지만 단 한 번도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끌고 가지 않았다. 이건 고객에 대한 '신뢰'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언젠가 중단될 서비스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클라우드에 소중한 데이터를 올려놓겠는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같은 시기에 삼성이 클라우드를 접은 반면 카카오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키우면서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고민하다 결단을 내렸고 10만 대 이상의 서버를 수용할 수 있는 최고의 데이터 센터라고 했다.
"모바일 시대 이후 많은 변화들이 있었는데 그 변화의 속도가 코로나로 저는 더 빨라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의 경우에 그 사용하는 세대가 전 세대로 완전하게 이제 확대된 것이 예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는 화상회의나 화상강의 등 이런 온라인으로 한 경험들이 많아지면서, 예전에는 꼭 오프라인으로 해결했어야지 했던 것들이 온라인으로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일상화되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이런 변화로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들이 더욱 늘어나게 되고, 결국 이제 그것을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앞으로 많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기술적으로 보면 그 데이터를 활용하고 또 그것을 사용해서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시도들이 많이 생길 것 같습니다."
신정환 / 카카오 CTO
클라우드 서버의 성능이 좋으면 좋을수록 데이터를 잘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서비스가 빨라지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네이버도 자체 데이터 센터를 갖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구글의 서비스를 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질문을 던져본 일이 있다. '왜 구글은 공짜로 메일 서비스를 하고 엄청난 저장 공간을 공짜로 줘서 사진들을 올려놓을 수 있게 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그럴까?'
필자의 브런치 글 가운데 거의 매일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글이 <간단히 요약해보는 AI의 역사>라는 글인데, 인공지능 역사에서 돌파구를 만드는 것이 인공신경망(ANN)이고,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이른바 '딥러닝'도 바로 개와 고양이 사진을 비교하는 식의 시각적인 학습에서 시작되었다. 그럼 그 수많은 데이터, 개 고양이 사진은 도대체 어디서 조달할 수 있는 걸까? 안면인식을 할 때 각종 인종의 사람들 사진이 필요한데 도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걸까? 인간인지 아닌지 테스트하는 '신호등 찾기', '건널목 찾기' 등등의 퍼즐에서 동원되는 사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즉, 클라우드 그리고 클라우드에 자발적으로 업로드되는 사진, 문서, 개인정보, 연락처, 예약 기록 등등 모든 정보들이 인공지능을 고도화하고 살찌우는 자양분이 된다.
필자가 입사한 뒤 몇 해 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보과학 뉴스를 담당하던 선배 한 분이 인터넷 페이지를 보여줬다. 당시 브라우저는 '넷스케이프'였고, 뭔가 상기된 표정으로 "대단한 것"이라고 설명을 하는데 나는 속으로 '칫, 그래서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땐 인터넷의 속도가 너무 늦어서 사람들이 '인'이 한자로 '참을 인'이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그 변화의 중심에 기술, 플랫폼이 있다.
#카카오if #연결 #구독 #플랫폼 #블록체인 #클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