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언론정보학회 언론인 교육 세션 발제문
지난해 필자는 언론재단 후원으로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월드 뉴스 미디어 콩그래스(WNMC)에 참석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 종합 발제를 맡은 캐린크로스는 신문업계와 택시, 백화점을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비교했다. "현재 상황에서 미디어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다. 런던의 택시 기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백화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 이 사람은 난데없이 택시와 백화점을 거론했을까? 변화의 본질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스티브 잡스가 들고 나온 휴대폰은 런던의 택시운전사도(vs 우버), 백화점도(vs 모바일 쇼핑) 집어삼켰다. 로버트 터섹은 이 변화를 ‘증발’이라고 표현한다. 단순히 상품(콘텐츠)이 어떻게 고객에게 전달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유통의 변화가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참여자는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중개사, 중개상, 대리인, 묶음 상품 판매자는 설 자리를 잃는다. 그 결과 거대한 중개자 한 명만 살아남게 된다. 바로 플랫폼 소유자다. 이제 플랫폼 소유자가 모든 거래에서 '통행료', 곧 수수료를 거둬들인다.” <증발>, 로버트 터섹 지음 김익현 옮김 p.82
지난해 연말 시작된 COVID-19은 변화의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고 있다. 이제 '뉴스'라는 콘텐츠의 정의 또는 '언론인'이라는 업의 정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캐린크로스의 방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전화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던 카메라가 전화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뉴스는 더 이상 '텍스트로만 이뤄진 글'이나 ‘TV를 켜면 흘러나오는 일방의 영상’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언론인'이라는 정의도 모호해졌다. 첫 번째, 뉴스룸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어디까지가 언론인인지 분명하지 않으며, 두 번째 이른바 '언론고시'를 통해 기자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맡는 임무가 어디까지인지 예를 들어 최근 유튜브에서 매회 수십만의 조회 수를 올리고 있는 <소비 더 머니>를 진행하고 있는 조현용은 보도국 기자 출신이지만 그의 역할은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에 가깝다. 구독자들은 댓글을 달면서 그를 ‘기자’라 칭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의 직업이 기자였다는 사실이 그의 말에 권위를 주는 것도 아니다. 한계 지을 수도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 변화된 환경의 중심, 플랫폼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가 나왔는데 그 이후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뉴스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 환경이 계속 바뀌었다. 2015년 당시에 썼던 글을 읽어보면 변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새삼 체감할 수 있다.
국내 상황을 보자면 피키캐스트가 잠깐 흥했고 뒤이어 페이스북이 큰 물결을 일으켰다. 지금은 페이스북이 퇴조하고 유튜브가 대세다. 포털도 ‘메인’ 구성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편집에 알고리즘을 도입하는가 하면 일부 영역에서 댓글과 순위가 폐지됐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언론사 내부 환경은 뭐가 달라졌을까?’라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뉴스룸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온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전통적인 영역, 종이신문과 TV 방송 외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심지어 “소셜미디어 같은 건 ID조차 만들지 않는다.”라고 자랑하는 사람도 봤다. 디지털 담당자들은 대개 이중의 고통에 허덕인다. 목표는 높다. 그러나 지원은 없다. 한 발 앞서 전면적인 '디지털 전환'에 나선 매체들에선 예외 없이 내부 갈등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왜일까? 아직 국내에서 '변화에 성공한 검증된 모델'이 나오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한국 언론환경이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가 탄생한 미국과 같다고 볼 수 없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포털’이라는 독특한 플레이어가 콘텐츠 유통에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언어의 문제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존 구성원들, 그리고 좀 더 범위를 넓히자면 이들을 바라보는 독자들까지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언론인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공감대를 마련할 기회를 갖지 못한 탓이 크다. ‘디지털 환경의 언론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 제목을 누르면 포털 안에서 콘텐츠가 열리는 인링크(in-link) 방식의 소비다. 지금은 매우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처음부터 이런 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온신협이나 신문협회 차원에서 포털과 힘겨루기를 한 적도 있었다.
다른 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구글 검색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아웃링크(out-link) 방식으로 소비되는 게 일반적이다. 뉴스 콘텐츠 유통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유통이 본질을 흔들고 있다. 기사가 포털로 집중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포털 자체가 언론사로 인식된다. 독자들은 대개 어떤 언론사의 기사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기사를 보게 된다. 반면 독자가 언론사로 직접 찾아오는 비율은 매년 전 세계 꼴찌 수준이다.
디지털 시대 언론사의 기본 생존 방식을 시험해보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독자와의 연결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기사를 자사 홈페이지에 올리고 이를 통해 독자를 끌어들이고 유료 구독으로 이끄는 시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각국 언론사의 온라인 유료독자가 늘고 있다는데 우리는 그런 현상이 벌어질 수 없다. ‘구독 서비스’는 언론사가 아니라 포털이 하고 있다.
필자는 포털 제휴평가위원을 1년간 맡았다. 입점 심사와 제재위원회 결과를 놓고 매번 잡음이 나온다. 그건 밖에서 보기에 ‘포털 제휴평가위원회’가 권력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포털이 뭔데 언론사들이 그렇게 입점에 목을 매고, 포털이 뭔데 언론사의 자격을 심사하게 된 것일까? 그렇게 보면 권력이 맞다. 요컨대 포털, 소셜미디어, 유튜브 등 디지털 유통 환경이 어떻게 조성되어 있고 거기서 어떤 방식으로 콘텐츠가 유통되는지, 플랫폼 회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그 돈을 어떻게 언론사들과 나누는지는 가장 먼저, 가장 핵심적으로 교육되어야 할 분야다.
언론인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은 예산 규모나 전문성 등 모든 측면에서 볼 때 한국 언론재단의 프로그램이 가장 권위가 있다. 2019년 ‘언론인 연수팀’에서 진행한 교육과정은 총 20개인데, 이 가운데 ‘데이터 저널리즘 기초’ 등 콘텐츠 제작과 관련된 교육이 11개, ‘디지털 매체 환경 변화와 인터넷 저널리즘’등 달라진 유통 환경에 대한 교육과정이 4개다. 이 4개 가운데도 ‘모바일 콘텐츠 독자 확보 전략과 활용’ 등 두 개는 콘텐츠 제작에 관한 내용이 융합되어 있다. 즉, 콘텐츠 제작 교육 비중이 훨씬 많은 것이다.
디지털뉴스 부장을 맡고 있을 때 후배 한 명이 데이터 저널리즘 콘텐츠를 만들어 달라며 엑셀 파일이 들어있는 USB를 가져왔다. 나는 그 후배에게 좋은 시도라며 칭찬을 했다. 그런데 그 파일 중 하나를 열어보자마자 필자는 ‘이건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엑셀 파일이 맞긴 맞는데 어떤 칸에는 ‘1’로 쓰고, 어떤 칸에는 ‘하나’로 쓰는 등 일관된 기준 없이 입력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제가 전혀 안 된 상태여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수정을 해줘야 할 판이었다.
2012년 뉴욕타임스가 인터랙티브 뉴스 '스노우폴'을 내놓은 뒤 우리나라 언론사들도 콘텐츠 제작에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보통 뉴스룸과 뚝 떨어진 별도의 팀에 맡긴다. 그래서 데이터 저널리즘 콘텐츠들이 따로 노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데이터 저널리즘 콘텐츠 등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끼리는 흔히 ‘피라미드를 세운다’는 표현을 쓴다. 멀리서도 우뚝 솟은 모습이 웅장하지만 실용적 목적의 살림집에 비해 숫자도 너무 적고 효용도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데이터 저널리즘 콘텐츠도 엄연히 기사이다. 또 기사의 소스를 구하는 일만 놓고 봐도 별도 조직보다 뉴스룸 기자들이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소수의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뉴스룸에 소속된 기자들이 디지털 콘텐츠의 기본 소양을 갖추게 하는 것이 사실 더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사진과 동영상 음성파일 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마크업 언어인 HTML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CSS나 자바스크립트는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 ‘데이터 정제’란 무엇을 말하는지, D3.js 같은 시각화 툴이 뭔지 등에 대해 겉핥기 수준으로라도 알아두게 하는 게 필요하다.
WNMC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그렉 바버(Greg Barber Director of Newsroom Product, Washington Post)는 자신들의 뉴스룸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설명했다. 그가 소개한 워싱턴 포스트의 뉴스룸 구조를 보면 그곳은 한눈에 봐도 종이 신문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하는 그런 구조가 아니었다. 그랙 바버는 특히 기술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별도의 대화 자리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기자 3명에 꼭 한 명씩은 기술 인력이 붙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 뉴스룸 조직(트리 구조의 왼쪽 상단)과 함께 사진, 비디오, 그래픽, 오디오를 다루는 조직이 협업하고(좌측 하단) 그와는 별도로 오퍼레이션(콘텐츠 확산 전략 등), 소셜미디어 탑재, 프로젝트, 라이브 뉴스 등 뉴스 전략을 담당하는 '스트래터지 레이어(Strategy Layer)'를 두고 있었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새로운 디지털 유통 환경에서 이익을 내기 시작한 언론사들은 거의 ‘테크 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인적 구성을 달리 하고 있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가 자랑하는 “Gone In A Generation” 같은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들은 전문적인 엔지니어들의 도움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언론재단이 이런 수요를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재교육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데이터 저널리즘 기초’는 20개 교육과정 가운데 가장 낮은 80점대의 평가를 받았다. 추측컨대 교육과정에서 소화해야 할 내용이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주 간단한 데이터 저널리즘 콘텐츠를 만들려고 해도 엑셀을 모으고 정제하고 그걸 웹에서 인터랙티브 하게 작동할 수 있는 데이터 형식으로 바꾸고 서버에 올리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자로 선발된 다수의 사람에게 그런 교육을 받도록 하거나,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처럼 별도의 인력을 체계적으로 뽑아야 하는데 한국의 상황은 양쪽 다 아닌 것 같다. 필자는 처음 디지털 뉴스 유통 관련 업무를 맡게 된 2015년 이후부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써볼까 하는 생각에 블로그에 연재를 했는데 10회를 마지막으로 멈춰있다. 그 연재의 첫 글, “머나먼 디지털”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내가 처음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신문사, 방송사, 언론재단, 신문협회 등의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신문사 기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육두품'(六頭品)이라고 불렀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쪽 일 하는 사람들 다 비슷해. 그냥 육두품이라고 보면 돼."
기존 신문과 방송 등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들 역시 '디지털'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렇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번 후순위로 밀리고, 사람과 예산 등 자원 분배에서도 항상 서자 취급을 받는다는 얘기였다. 구성원들은 '육두품'들이 모여있는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지형이 오늘날의 '뉴스 콘텐츠 생산자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만난 한 언론사의 디지털 뉴스 간부는 한숨을 쉬면서 이런 말을 했다. "가르쳐 봐야 금방 다른 부서로 발령 나고... 그럼 제로 세팅이야. 다시 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지." 이 언론사는 레거시 미디어에서 이른바 '선두 주자'로 분류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