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니아주 쿡아일랜드
포근한 날씨의 바닷가.
수정처럼 맑은 물이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해변.
해먹 하나 펼쳐놓고 즐기는 여유.
누구나 한번 정도는 상상했을 법한 호사로움이다.
정말 맘먹고 움직이면 불가능도 아니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하기는 참 어렵다.
바닷가에 놓인 해먹을 보자니 문득 필리핀의 보라카이가 생각났다.
아름다운 해변과 부드러운 모래.
뭐랄까...
동해안의 모래가 설탕이나 굵은소금이라면 보라카이의 모래는 밀가루 같은 느낌?
보라카이는 신혼여행이라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지는 모르겠다.
남태평양의 바다를 보니 그냥 보라카이에서의 좋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 행복함과 편안한 여유가 연상되는 것도 아마 남태평양의 바다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일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여유'라는 단어를 적용할 수 있을까?
여유라는 말을 하면 가장 먼저 '돈'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해는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고 돈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돈은 중요하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는 요트가 많이 정박해있다.
고급 요트들도 상당수 온다고 한다.
요트는 부의 상징이다.
오클랜드의 요트를 보니 '돈이 얼마나 많으면...'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솔직히 저런 요트를 살 수 있는 '부'는 부럽다.
그런데 그런 부러움의 정도는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약해졌다.
얼마 전 SBS 스페셜에 방송되었던 스웨덴의 아빠들을 보며 삶의 질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했다.
나도 직장의 직원으로 출근하던 시절엔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아침 7시에 회의 시작.
내 고유의 업무가 끝나는 시간은 밤 10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표현이 더 맞는 상황이었다.
그때 아이도 태어났고, 몇 달을 더 고민하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더 힘들어졌고, 아직도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당시에 실행한 '퇴사 결정'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지금은 오히려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1년, 2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빚은 늘어났지만 아직 버틸 수 있는 정도의 빚이다.
빚이 늘어나며 많은 집들의 불화가 시작된다지만 우이 가족은 그 반대다.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가족 구성원이 모두 함께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 시간과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문제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가족은 나름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그 시작이 바로 '여유'다.
'경제적인 여유'는 없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노력했다.
그렇게 조금씩 쌓여간 마음의 여유가 우리 가족의 '삶의 질'을 높였고, '행복감'이 높아졌다.
쿡아일랜드에서 한 현지인의 집에 갈 기회가 있었다.
50대 중반의 아저씨인데 호주 출신으로 쿡아일랜드에 농장 사업을 하기 위해 넘어온 지 벌써 20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집을 보니 사업이 꽤나 잘 되고 있는 모양이다.
낮에 보여준 농장만 봐도 몇 개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여러 군데인 걸로 보니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쿡아일랜드에서는 인터넷이 불편하니 대부분의 문화생활을 오프라인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DVD와 CD도 꽤나 갖고 있었다.
동양적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보였다.
불교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니 그냥 예뻐서 사 온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 맥주를 마시러 오라길래 갔더니 정말 맥주에 과자만 준다.
우리의 문화적 상식으로는 맥주를 마시며 식사를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여기는 아니었다.
남태평양의 문화가 그런지 이 아저씨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맥주 마시러 가서 맥주만 먹고 왔다.
그래도 집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 탁 트인 바다를 보며 마시는 맥주라 그저 좋기만 했다.
물론 그 날 저녁 식사는 숙소에 돌아와 다시 먹어야 했지만...
며칠 뒤에는 스테이크와 저녁 식사를 하러 오라고 해서 또 갔다.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또 맥주를 마시며 기다렸다.
아내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서 굽겠다며 다른 샐러드 요리를 먼저 시작한다.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재료와 도구들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잘 아는 것을 보니 한두 번 해본 실력이 아니라 자주 해왔다는 티가 난다.
샐러드까지 모두 만들었는데 아직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다.
전화를 하더니 조금만 더 기다리자며 함께 맥주를 마셨다.
남편이 요리를 하며 준비하는 그 시간 아내는 친구들과 서핑보드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매우 다른 모습니다.
남편이 손님 대접을 위해 요리를 하는데 아내는 놀고만 있는다?
이게 뉴질랜드 '키위 문화'라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사람은 아빠가 많다고 한다.
실제 필자가 본 오클랜드에서 아이들 하교 시간에 아이와 함께 다닌 사람은 모두 아빠였다.
아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고기는 구워지고 우리의 식사도 시작되었다.
쿡아일랜드가 작은 섬이라 그런지 비행시간이 2시간도 남지 않았지만 우리는 공항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의 집에서 스테이크로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이 또한 복잡한 도시의 큰 공항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사일 것이다.
세상 살이 각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는 또 자살률 1위다.
얼마나 각박하고 힘들게 살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을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얼마나 현명하게 해결하느냐일 것이다.
휴가라는 것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휴가조차도 마음 편하게 사용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사람도 많다.
삶의 여유가 없기 때문 아닐까?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방법을 모를 수도 있다.
삶의 여유는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꼭 저런 해외의 휴양지가 아니면 어떠리...
귀국하면 가족과 함께 1박 2일의 나들이를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