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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Apr 17. 2017

유럽의 중심 베를린의 아침

독일 베를린

새벽을 지나 아침이 시작되는 풍경에는 묘한 긴장감이 있다.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표정에 그 긴장이 엿보인다. 

그 느낌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이곳. 베를린은 베를린 나름대로의 새벽 풍경과 긴장감이 있다. 


큰 가방을 갖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가벼운 차림으로 출근하는 사람도 그 나름대로. 

오늘 하루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반 설렘반. 

시외버스 터미널의 광역버스의 목적지는 독일 시외뿐만 아니라 유럽의 각 다른 나라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여행용 가방을 들고 이동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독일은 유럽의 9개국과 국경이 맞닿아있다. 

위치는 유럽에서 약간 북쪽에 있지만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에 너무 편리하다. 

그런 이유로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 베를린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여행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베를린에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이유는 교통의 편리함 뿐만 아니다.

독일어를 하지 못해도 지내는 데 큰 불편함이 없는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다.

식당에 들어가면 처음 물어보는 말이 'English or Deutsch?'

내가 외국인으로 보여서인지는 몰라도 거의 대부분의 식당에서 처음 듣는 말이 저 말이다. 

English라고 대답을 하면 영어로 된 메뉴판을 준다. 

나야 뭐... 독일어나 영어나 둘 다 모르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독일어에 비해서는 알아볼 수 있는 단어가 더 많기는 하니...

내 지인 중 독일에서 4년째 살고 있는 형님과 친구 부부가 있다. 

이번에 만나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아직 독일어를 잘 못한다는 것!

그 형님은 중국어 전공으로 나와 함께 일을 할 때는 중국 쪽 마케팅 업무를 했었다. 

그리고 약 4년 전 잠깐 다시 같이 일을 할 때에는 나와 영어로 업무를 진행했다. 

이번에 만날 때 물어봤다. 

"형님은 이제 4개 국어 하시겠네요. 중국어야 예전에도 잘 하셨고, 전에 보니 영어도 잘 하시는 것 같던데 이제 독일어도 잘하시면 4개 국어~ 우와~~"

하지만 그 형님의 대답은 전혀 반대였다. 

"나는 예전에 그 나라에 몇 년 살면서도 그 나라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을 무진장 욕했는데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이유를 들어보니 베를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식당에서부터 모든 것이 영어만 사용해서 큰 불편함이 없는 도시가 베를린이다.

어디서든 독일어와 영어가 혼재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독일어를 배울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만난 사람 중에 민박집을 운영하시지만 스스로 독일어는 아직 서툴다는 다른 한 분을 만났다. 

독일에서 지낸 지 이제 5년이 넘어간다. 

독일어가 많이 필요할 때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 딸이 통역을 해준다고 한다. 

딸은 학교도 다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다 보니 영어와 독일어 모두 현지인과 비슷하게 구사할 수 있다. 


이러니 베를린이 유럽의 중심 역할을 하기 너무 쉬운 곳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이동이 많아지고 교류가 풍성해지면 정치, 경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

실제로도 유럽의 많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베를린이 하고 있다. 

DJ들의 클럽문화,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미술,... 

정책적으로도 문화사업에 많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배낭여행을 즐기는 젊은 친구들도 베를린을 많이 찾는다. 

그 친구들을 위해 민박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지도를 따로 만들었다.

‘여행’을 왔다는 한국 친구들이 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지도를 만드신 이유는 조금 씁쓸하다.

베를린에서 어디를 가면 좋냐는 질문에 먼저 어떤 목적으로 여행을 온 것인지를 되묻는다. 

목적에 맞게 추천을 해주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온 대부분의 청년들은 인증샷을 찍기 좋은 곳만을 찾고 있었다. 

29박 30일의 배낭여행을 왔다면서 배낭이 아닌 캐리어를 끌고 다니고 숙소와 교통수단을 모두 정해 놓고 온다. 

심지어 29박 동안 28개 지역을 다니기도 한다. 

그런 인증샷 놀이를 보다 안타까워 인증샷을 찍기 위한 베를린 주요 명소를 따로 표시해 지도를 만들었다. 

‘여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인증샷 놀이’를 하는 친구들은 그게 그 나름의 만족일 수도 있으니까.

남들이 모두 가니까 떠나는 유럽.

패키지여행은 아저씨 아줌마들이나 다닌다며 싫다고 선택한 자유여행 상품.

정작 자유여행이라는 미명으로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며 따라가기 바쁜 일정을 보내며 다니고 있다.

패키지가 아니라고 자기 위안을 하지만 실상은 패키지만도 못한 일정들이란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냥 유럽에 와봤다는 자위와 자기소개서에 한 줄 쓰기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박집 사장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경주도 최소한 2박 3일은 돌아다녀야 어느 정도 다닌 기분이 들 정도인데 베를린은 서울 면적의 1.7배나 되는 넓은 도시다. 여기를 하루 만에 다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정이고 욕심이다. 베를린에서 무엇을 마음에 남기고 갈 것인지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일정을 짜야하지 않을까?"


베를린이니 부란덴부르크의 문에서 사진 찍고 허물어진 장벽에서 사진을 찍고.

사진을 찍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인증샷을 찍는 것이 여행의 전부가 아니길 바라는 것뿐이다. 

SNS에 올리는 사진은 겨우 인증샷을 찍지만 사진만 찍고 바로 이동하기에 이야기가 부족하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글을 그대로 복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민박집에 초여름에 방문한 사람이 귀국해서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글의 내용은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이 내린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있는데 민박집 사장님의 기억과 집에서 함께 찍은 사진의 날짜에 의하면 분명 초여름이다. 

그리고 함께 올린 그 글은 예전에 민박집 사장님이 본 적이 있는 글이다. 

초겨울에 와서 쓴 사람의 글을 그대로 베꼈으니...


유럽 사람들은 여행을 다닐 때 자기 나름의 테마를 갖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인증샷을 찍기도 한다. 

다만 차이는 인증샷을 찍는 것 자체가 목적이냐 나름의 다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인증샷도 추가되느냐!


눈에 담는 '관광' 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에 담는 '여행'을 관광과 너무 혼동해서 사용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유럽의 중심 베를린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노라면 '관광'을 다닌다는 느낌보다는 '여행'을 다닌다는 느낌을 더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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