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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Oct 30. 2019

[한국사] 신라 장군 이사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고구려의 위대한 영웅 광개토태왕 다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신라 장군 이사부'입니다.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막상 설명하려니 누구인지 잘 기억이 안나죠?

아마 이름은 이 노래에서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독도는 우리 땅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설명해줄 정도의 짧은 버전으로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이사부 장군은 신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인 김유신 장군보다 약 100년 정도 앞선 시대의 장군입니다. 

골품제가 있었던 신라이기에 이사부 장군도 당연히 왕족이었죠. 

주요 업적으로는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을 정복해 신라 영토로 편입시킨 것과 고령 지역의 대가야를 정복한 것이 있습니다. 대가야 정벌 작전에는 화랑 '사다함'도 함께 출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업적으로는 진흥왕에게 역사 기록서인 '국사' 편찬을 제안한 것입니다. 당시 편찬은 했지만 지금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죠?

그러면 조금만 더 깊이 공부해볼까요?


언제나 그렇듯 저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이사부는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에 대한 기록에 제대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지증왕~진흥왕의 기록에 간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대략 6세기로 고구려 최고 전성기였던 장수왕의 시대를 지나 힘의 균형이 다시 엇비슷해질 때입니다. 이미 지난 2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백제와 고구려에 밀려 잔뜩 웅크리고 있었던 신라는 국가 재정비 사업을 통해 거듭나고 있는 중입니다. 


사회적으로는 군현제를 실시하고, 경제적으로는 소를 이용한 경작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원화'를 중심으로 모였던 것을 '화랑'을 중심으로 모일 수 있게 제도적으로 정비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차곡차곡 잘 진행되었기에 6세기 후반에는 신라가 삼국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고, 이후 7세기 후반에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죠.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이사부입니다. 


이사부는 단순히 병권을 움직인 장군만이 아니었습니다. 골품제인 신라 사회를 고려하면 당연히 왕족이었을 것이고, 벼슬은 지금의 삼척 지역인 실직주(悉直州) 군주, 병부령 등을 했습니다. 당시 병부령은 상대등과 시중을 겸한, 지금으로 해석하자면 참모총장에 국무총리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해도 될 것입니다. 

즉, 신라가 앞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초를 닦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인이 아니죠. 높은 벼슬이라고 뒷방에서 명령만 내리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우산국을 정벌할 때에는 나무로 사자를 만드는 속임수로 항복을 받아내고, 대가야를 정벌할 때에는 새롭게 재편된 '화랑'을 전선에 직접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화랑은 이후 삼국통일 전쟁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내죠. 지금 독도에 이사부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것까지는 맞지만 독도까지 같이 신라의 땅으로 복속시킨 것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당시 우산국이 지금의 울릉도와 독도를 모두 포함한 지역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울릉도만을 지칭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속초지역을 실직주로 두어 군주으로 임명이 되고 우산국을 정벌하는 등 동해의 해상권을 장악한 과정에서 본다면 독도까지도 당연히 함께 정복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무관으로서 영토 확장에 큰 기여를 했다면 문관으로서는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진흥왕 6년 "六年 秋七月 伊飡異斯夫奏曰 國史者 記君臣之善惡 示褒貶於萬代 不有修撰 後代何觀 王深然之 命大阿飡居柒夫等 廣集文士 俾之修撰" (6년 가을 7월, 이찬 이사부가 아뢰어 말하였다.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좋은 것 나쁜 것을 먼 후손에게까지 보이는 것입니다. 역사를 편찬하지 않으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 임금이 진심으로 그렇다고 여겨 대아찬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문사들을 널리 모아 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 출처 :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역사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기에 왕에게 건의를 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하였죠. 아쉽지만 지금은 '국사'가 전해지지 않지만 이사부의 뜻은 충분히 후대에 전해 내려 오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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