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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May 21. 2021

장보고가 바다를 누빌 때 다른 나라는?

그때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입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무엇을 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매우 부족한 편입니다. 배를 만드는 조선업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 중국으로 이어지는 육지의 길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농경 위주의 사회여서 상대적으로 상공업을 중심으로 한 무역에는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도 바다를 호령하며 해상 무역을 이끈 영웅이 있었으니 바로 장보고입니다. 


우리나라


787년에 태어난 장보고는 젊은 시절 당나라로 가서 출세할 생각에 군에 입대까지 합니다. 하지만 821년에 당나라에서 무령군을 축소하고 별 볼일 없다는 생각에 다시 신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청해진을 만들고 서해안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시작합니다. 무역의 범위가 서해를 넘어 동남아시아까지 포함되었고, 일본에서는 장보고의 물건을 사기 위해 가산을 탕진한 사람도 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때 신라 왕실은 완전 개판 상태입니다. 780년부터 839년 까지 60년 동안 왕이 10명이나 바뀌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쿠데타입니다. 신라 왕실이 철저한 골품제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형제, 사촌끼리 왕위 자리를 두고 피 터지는 싸움을 계속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왕위 다툼에 군사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서해안의 청해진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장보고에게도 왕족의 손길은 다가옵니다. 장보고는 839년 민애왕이 신무왕이 즉위하는 것을 돕지만 신무왕은 즉위한 지 181일 만에 병으로 죽고, 아들 문성왕이 즉위합니다. 문성왕 때 장보고는 장군의 관직까지 받지만 결국 846년에 왕실의 명을 받은 염장에게 살해당합니다. 그리고 851년에 문성왕은 청해진을 없애버립니다. 


아시아 - 중국, 일본


왕실이 개판인 것은 당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라는 가족들끼리 싸웠다면 당나라는 환관들이 황제를 농락하고 죽이던 시대입니다. 황제가 바로 서면 나라가 안정이 될 수 있었겠지만 황제들 조차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휘둘리니 나라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당나라에서도 나름 '개원의 치'를 이끌며 성군의 이름에 오른 현종도 결국 여자에게 빠져 타락의 길로 빠집니다. 현종을 타락시킨 여자는 자신의 18번째 아들의 아내이니 사실상 며느리인 셈인데 아들을 강제로 출가시키면서 자신의 비로 데리고 오는 만행까지 저지릅니다. 그녀의 이름은 양옥환으로 현종의 귀비가 되면서 양귀비라 불리게 됩니다. 황제가 국정에서 물러나 있으니 가장 가까이에 있는 환관들이 황제를 농락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755년 양귀비가 연관된 안사의 난 이후 환관의 세력이 압도적으로 커지며 황제의 힘을 넘어섭니다. 820년에 헌종이, 826년에는 경종이, 840년에는 문종이 환관에게 살해당합니다. 


일본은 나라시대를 지나 794년에 간무 천황이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하면서 헤이안 시대가 열립니다. 나라시대에 율령에 의한 정치가 자리 잡고, 헤이안 초기까지도 천황에 의 한 통치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 승려의 세력이 커지고 천황의 외척으로 실질적인 권력을 잡은 후지와라 가문의 부패 때문에 반란과 도적이 늘어납니다. 그 들을 진압하면서 무사 계급의 힘이 커지고 나중에는 무사계급이 정권을 잡는 막부 시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슬람


이슬람 제국이 된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아바스 가문이 750년에 우마이야 칼리파 제국을 무너뜨리고 아바스 칼리파 국을 세웁니다. 그리고 아바스를 피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로 피신한 우마이야 가문의 왕자 아브드 알 라흐만 1세는 코르도바 지역을 중심으로 756년에 새로운 왕조를 세웁니다. 우마이야 가문을 잇는다는 의미로 후우마이야 왕조라 부르기고 하고 나중에 스스로 칼리파를 주장하고서는 코르도바 칼리파 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왕조를 시작하는 이 시기에는 스스로를 칼리파가 아닌 아미르라 불렀습니다.  지중해 동쪽에 있는 아바스 왕조와 비교해 서칼리파 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때의 동칼리파 국은 아바스 왕조를 말합니다. 


유럽


유럽에서는 변화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프랑크 왕국은 아바르에 이어 이탈리아 반도를 차지한 롬바르드까지 멸망시키며 유럽의 맹주로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카롤로스 대제 사망 후 세 아들의 후계자 다툼 끝에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프랑크 왕국에 3개의 나라로 분열됩니다. 동프랑크는 오늘의 독일, 서프랑크는 오늘의 프랑스, 중프랑크는 오늘의 이탈리아로 보면 됩니다. 하지만 얼마 뒤 중프랑크를 통치하던 큰 아들 로타르 1세가 855년에 죽고, 그의 아들 로타르 2세마저 869년에 죽자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동프랑크와 서프랑크로 영토가 나뉘게 됩니다. 


프랑크의 분열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북쪽에서는 유럽을 뒤흔들 엄청난 세력의 날개가 펼쳐집니다. 793년에 영국의 홀리 아일랜드에 침공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 세력은 바로 바이킹입니다. 북유럽을 기반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배로 물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돌아다니며 유럽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든 바이킹. 


우리나라에 바다의 왕자 장보고가 동남아시아까지의 바다를 지배했다면, 유럽은 바이킹이 바다와 강을 호령하고 다녔으니 원조 대항해시대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아는 척 더하기 - 알고리즘


이 시기에 정말 주목할 것은 특별한 수학자의 등장입니다. 780년 정도에 태어나서 850년 정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이 수학자는 인도에서 도입된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해 사칙연산을 만듭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정리한 사람이죠. 기본적인 개념을 정리하면서 방정식을 비롯한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 수학자의 이름은 알 콰리즈미.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해진 일련의 절차와 방법을 순서를 정해 공식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알고리즘이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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