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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Jun 28. 2021

조선이 개국될 때 다른 나라는?

그때 다른 나라는?

중국


1351년 중국에서는 백련교도들이 중심이 된 도적떼가 등장합니다.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르고 다녀 홍건적이라 부르는데 한나라 말기에 등장했던 황건적은 머리에 노란 수건을 둘러서 황건적이라 불렸습니다. 황건적의 난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삼국시대를 연 것처럼 홍건적의 난 역시 원나라를 멸망으로 이끕니다. 홍건적은 백련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화되었지만 원나라의 권력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이 모였고, 몇 년에 걸친 전쟁 끝에 주원장이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그리고 1368년 본인이 속해 있던 종교인 명교의 이름을 따 나라의 이름을 '명(明)'이라 짓습니다. 중국은 몽골의 시대에서 다시 한족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1398년 초대 황제인 홍무제 주원장이 죽고 2대 황제 건문제가 즉위하지만 정난의 변을 일으키며 1402년 영락제가 3대 황제로 즉위합니다. 영락제의 재위 시절이 제2의 건국이라 불릴 정도로 초기 명나라를 강력하고 안정적으로 정착되는 시기입니다. 1403년 수도를 난징(南京, 남경)에서 지금의 수도인 베이징(北京, 북경)으로 옮기고 1406년부터 1420년까지 자금성을 짓습니다. 

영락제 시절의 군사력은 육군뿐만 아니라 해군력도 우수했습니다. 환관이자 무관인 정화(鄭和, 본명 마삼보馬三寶)는 남쪽 바다를 향해 대원정을 떠납니다. 1405년 6월에 시작된 바닷길 원정은 대형 함선을 포함한 62척에 승무원 27,800명이나 되는 대규모였습니다. 1431년까지 총 7차례나 이어진 정화의 원정은 태국과 스리랑카를 지나 중동지역의 메카와 아덴, 아프리카 동쪽의 캐냐 말린디까지 도달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홍건적은 고려에도 침공합니다. 1359년 1차 침공은 압록강에서 막았지만 1361년 2차 침공 때는 수도인 개경까지 함락당해 공민왕이 안동까지 몽진을 가게 됩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은 권문세가의 폭정에 흑사병까지 돌아서 경제가 파탄 났고, 군사력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습니다. 원나라의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신돈을 내세워 개혁정치를 하던 공민왕은 홍건적을 막기 위해 다시 원나라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공민왕의 개혁도 막을 내립니다. 

고려를 괴롭힌 건 홍건적 뿐만 아니라 왜구도 있습니다. 왜구는 일본 규슈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까지 맹위를 떨치던 해적 세력입니다. 예전에도 왜구는 있었지만 이 시기에는 아주 조직적으로 운용이 되어 강력한 해상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중국의 해적 왕징이 가지고 온 화약무기까지 겸비한 왜구의 힘을 막아낼 정부가 사실상 없었습니다. 고려에 침공할 때 500척이나 되는 대규모 선단이 왔다는 기록만 보아도 그 정도의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최무선은 특별한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갖은 노력 끝에 1362년 결국 화약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1380년에 금강 하구의 진포에서 왜구의 배 500척을 불태우는 성과를 거둡니다. 


홍건적과 왜구들이 설치니 이를 막아내는 신흥 무장 세력도 등장합니다. 바로 최영과 이성계입니다. 최영은 올곧은 성격으로 신망이 두터웠지만 권문세가 쪽의 세력을 대표하게 됩니다. 이는 성리학을 내세우며 혁명을 꿈꾸는 신진사대부의 세력에 대립하고자 기존의 권문세가들이 최영 뒤에 숨었기 때문이고 고려 왕조의 충신인 최영은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그렇게 흘러갑니다. 

무장의 힘이 필요하다고 느낀 신진사대부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힘을 키웁니다. 최무선이 만든 화약 무기로 500척이나 되는 왜구의 배를 불태우니 왜구들은 내륙으로 도망치며 약탈을 하지만 이성계가 이끄는 부대가 다시 섬멸시킵니다. 이를 황산대첩이라고 부릅니다. 황산대첩 이후 원나라를 등에 업은 권문세가와 명나라를 따르는 신진사대부의 갈등을 더욱 심해지고, 당시 고려의 권력을 쥐고 있던 권문세가의 세력은 이성계를 제거하고자 요동 정벌을 명령하니다. 이미 중국은 명나라에 의해 새롭게 정리되었지만 북원 세력의 잔당이 일부 남아있어 주원장은 그 세력을 제거하고, 고려의 친원 세력에게도 경고하기 위해 일부러 '철령위'라는 북쪽 지역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이미 그전부터 기고만장한 명나라의 군대와 마찰이 이어져 오고 있던 터라 최영 역시 크게 분노하여 명나라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상황입니다. 당시 최영은 이미 최고 실권자이면서 왕의 장인이기 때문에 이성계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성계는 '사불가론(四不可論)'을 내세우며 반박해보지만 어쩔 수 없이 출병합니다. 이때의 사불가론은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해서는 안된다.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해서는 안 된다. 셋째, 군사를 북쪽으로 빼면 왜구가 침략한다. 넷째, 장마철이라 활의 위력이 약해지고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 

이 내용을 가만히 보면 첫 번째 이유 말고는 그냥 핑계일 뿐입니다. 이성계는 요동을 정벌을 성공해도 문제, 성공하지 못해도 문제이기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만약 요동 정벌을 성공하지 못하면 명령 위반이기 때문에 고려로 돌아갔을 때 사형에까지 이를 수 있는 문책이 따를 것이고, 요동 정벌을 성공해도 문제입니다. 당시의 고려 상황에서 요동을 차지한다고 한들 유지를 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영토를 확보해서 완전히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인구도 이주해야 하고, 행정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관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을 새롭게 통일한 명나라에 맞서 유지할 힘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에 명나라에서 도발해왔을 때 고려는 전쟁으로 맞서든가 아니면 당시 정벌 책임자인 이성계 본인이 희생하며 마무리해야 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마침내 이성계와 함께 출병한 군대는 1388년 압록강에 있는 섬인 위화도에서 방향을 다시 바꾸어 개경으로 내려옵니다. 이성계의 쿠데타는 성공해 최영을 죽이고 신진사대부가 실권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키자는 정몽주마저 제거하며 1392년에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합니다. 1393년에 나라의 이름을 조선으로 바꾸고, 1394년에는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합니다. 1395년에는 경복궁까지 창건하면서 안정되는가 했지만 1398년에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조선 건국의 두뇌를 담당했던 정도전을 제거합니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이성계는 왕위는 정종에게 내어주고, 다시 1400년에 2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은 왕으로 즉위해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이 됩니다. 


일본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와 함께 시작된 남북조의 시대가 마무리되어 다시 천황이 1명으로 됩니다. 무로마치 막부에 의해 요시노로 탈출한 남조의 천황 고다이고의 후손들 역시 다시 힘을 얻지 못하고 1392년 북조의 고코마쓰 천황을 중심으로 정리됩니다. 

일본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왜구가 들끓어도 정부 차원에서 관리가 힘들었습니다. 


이슬람


중앙아시아와 중동은 오스만 제국의 성장이 두드러집니다.

1364년에 무라드 1세는 예니체리를 만듭니다. 정복한 기독교 지역의 병사들을 이슬람교로 강제 개종시킨 뒤 특별한 군사 훈련으로 강하게 키운 조직입니다. 예니체리는 튀르크어 '예니센'에서 유래한 말로 '새로운 병사'라는 뜻입니다. 술탄의 친위대 역할도 담당하는 최정예부대로 자리매김하고, 터키에서는 아직도 예니체리를 최강의 군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1389년에는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 왕국을 정벌하며 발칸 반도에 진출하고, 1396년에는 불가리아 제국이 멸망시켜 1878년까지 500년 정도 오스만이 지배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1402년의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 왕조에게 패배하고 왕자들의 후계 싸움으로 오스만 제국의 성장은 잠시 멈춥니다. 


유럽


유럽은 여전히 백년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전쟁과 휴전이 반복된 백년전쟁은 크게 3개의 시기로 구분입니다. 처음 시작한 1337년~1360년의 전쟁을 1기 또는 에드워드 전쟁이라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장궁병이 프랑스 기사단에게 승리하고 칼레도 잉글랜드가 점령하는 등 잉글랜드가 유리한 상황으로 휴전합니다. 1369년~1389년까지 이어진 2기는 캐롤라인 전쟁으로 부르는데, 이 시기에는 주변의 다른 나라들도 각자의 이유로 전쟁이 벌어집니다.

브르타뉴 왕위 계승 전쟁(1341년-1364년), 카스티아 내전(1366년-1369년), 아라곤의 두 페드로의 전쟁(1356년–1375년)등 크고 작은 전쟁들이 유럽 전역에서 일어납니다. 

1415년에 다시 시작되는 3기 백년전쟁은 랭커스터 전쟁이라고도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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