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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Aug 11. 2021

장희빈이 국정을 농단할 때 다른 나라는?

그때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


몇 해 전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우리나라가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정당하게 권력을 위임받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권력을 남용한 나쁜 사건이었죠. 조선시대에도 어느 여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장옥정으로 궁녀 출신이지만 희빈이라는 직책의 후궁이 되며 흔히 '장희빈'으로 부릅니다. 

장옥정은 1659년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역관은 통역과 번역을 담당하는 직책으로 외교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며 두루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 입궐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11세가 될 때 아버지 장형이 죽은 전후로 입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궁궐 내부의 암투에 깊숙이 휘말리게 됩니다. 

당시 조선의 왕은 19대 숙종입니다. 늘 그랬지만 이때도 당파싸움이 치열했습니다.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45년 동안 장기 집권한 숙종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대왕인 현종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현종은 한쪽 당파에만 힘을 싣는 것이 아닌 고른 등용으로 일종의 당파 연립 방식을 취했다면 숙종은 상황에 따라 한 쪽에만 힘을 실어줍니다. 붕당이라는 이름으로 나뉜 정치세력을 필요에 따라 교체하는 방식으로 이런 것을 '환국(換局)'이라 부릅니다. 당시 사대부 권력자들은 남인과 서인이라는 세력으로 나뉘었는데 숙종은 즉위한 1674년에는 남인 세력에게 주도권을 줍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1680년에는 서인에게 권력을 줍니다. 이를 경신년에 발생했다고 해서 경신환국이라 부릅니다. 권력을 잡은 서인은 다시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론과 윤증을 중심으로 모인 소론으로 나뉩니다. 9년이 지나 1689년에는 장희빈이 낳은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과정에서 다시 남인이 권력을 갖게 되니 이를 기사환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5년 뒤인 1694년에는 장희빈을 사형시키고 서인의 노론이 기득권을 갖는 갑술환국으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남인은 장희빈을 앞세워 권력을 잡으려 했고, 숙종의 원래 중전이었던 인현왕후와 다른 후궁인 숙빈 최 씨 쪽은 서인의 노론 쪽 세력입니다. 그래서 장희빈 개인에 의한 국정농단으로만 보기에는 조선의 당파 경쟁이 매우 심각했고, 왕인 숙종 역시 그 당파 싸움을 이용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노론은 이후 경종 다음으로 즉위하는 영조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기득권이 됩니다.  


청나라


만주족이 한족을 지배하는 청나라는 4대 황제인 강희제(康熙帝) 때에 세계 최강국의 모습을 갖춥니다. 

1662년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황제로 즉위한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긴 재위 기간을 가진 황제로 재위 기간이 61년이나 됩니다. 

강희제는 강력한 팔기군을 활용해 영토 확장을 위한 정복 전쟁을 추진합니다. 당시 대만은 정성공이 지배하는 왕조가 있었는데 청나라를 등진 사람들이 대만으로 많이 건너갑니다. 정 씨 왕조는 해상 강국이던 네덜란드의 세력을 몰아낼 정도로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683년에 강희제는 대만을 정벌하고 정성공 사망 후 후계자가 된 정극상을 청나라의 관리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1721년에는 몽골과 티베트에서 힘을 키우던 준가르의 세력도 정벌해 영토가 지금의 중국 영토와 비슷하게 넓어집니다. 

강희제는 예수회 선교사들과도 관계가 좋아 서양의 지리, 천문, 수학, 음악 등의 교류를 했습니다. 중국 황제 중 처음으로 피아노를 친 황제가 강희제이며, 1692년에는 선교도 허락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세력이 제사와 같은 중국 전통의 문화를 우상숭배로 몰아가며 마찰이 생기자 1706년에 중국 전통을 존중하는 예수회를 제외한 나머지 기독교 세력은 추방하기도 합니다. 


유럽 -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영국


프랑스는 태양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루이 14세가 재위하던 시기입니다. 그는 왕의 권력은 신에게 받은 것이란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절대 군주임을 자처합니다. 청나라의 강희제의 재위 기간도 길었지만 루이 14세 역시 길었습니다. 1715년 9월에 사망할 때까지 72년 3개월 18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왕의 자리에 있었는데 유럽의 군주들 중에서 가장 긴 재위 기간으로 기록됩니다. '짐이 곧 국가다(L'État, c'est moi)'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역사학계에서는 그가 직접 한 말이 아니라 정적이나 볼테르가 퍼뜨린 헛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키가 작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신은 신발이 최초의 하이힐이며, 7살부터 발레를 하여 최초의 직업 무용수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습니다. 15살이 되던 1653년 '밤의 발레(Ballet de lanuit)'에 아폴로 역할로 출연해 '태양왕'이라는 호칭을 얻게 됩니다. 

재위 기간 중에 프랑스는 조용할 날은 없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도 영토 확장을 위한 침략 전쟁이 이어져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와 전쟁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영국, 스페인과도 식민지 영토 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폭탄이 이어져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집니다. 내치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위생도 나빠지고 거지도 늘어납니다. 전염병이 돌고 굶어 죽는 시체가 즐비하니 또다시 병이 도는 악순환도 반복됩니다. 귀족들은 지저분한 파리의 거리 때문에 너도나도 하이힐을 신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 프랑스인 평균 수명이 25세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루이 14세를 비롯한 왕실의 낭비벽은 심해 화려한 궁전을 짓기도 합니다. 나중에 성난 민중들에 의해 대부분은 부서지고 지금 남아있는 궁전은 베르사유 궁전입니다. 


전 세계 해상무역의 가장 강자로 우뚝 선 네덜란드에서는 렘브란트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를 식민지로 삼으려 했던 스페인은 왕위 계승 다툼으로 다시 한번 어려움을 겪다가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가 스페인의 왕으로 인정받으며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같은 부르봉 왕가의 사람들이 프랑스와 스페인 모두의 왕이 되어 둘의 사이는 한동안 좋아지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식민지 경쟁은 치열하게 이어집니다. 


추운 겨울의 땅에서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러시아가 이제야 제국으로 성장합니다.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을 이룬 사람들을 루스인 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830년에 루스 카간 국을 만들며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큰 나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1721년에 급격하게 서유럽화를 지향한 표트르 대제가 제국을 선포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1725년 표트르 대제의 사망 이후 그의 아내인 예카테리나 1세를 비롯해, 안나 이브노브나, 엘리자베타, 예카테리나 2세로 이어지는 여제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여제의 통치 기간 중에 러시아는 유럽에서 강력한 국가로 자리 잡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도버 해협 너머에 있는 영국 역시 큰 변화의 시기를 갖습니다. 

1665년에 흑사병이 다시 유행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도 휴교를 하게 되는데 그중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던 아이작 뉴턴은 2년 동안 고향에 내려가 지내는데 수학, 광학, 천문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수많은 발견을 하게 됩니다. 사과나무를 보며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이 이 시기입니다. 1684년에는 천문학자 애드먼드 핼리가 핼리혜성을 발견하고 뉴턴과 행성 운동에 대한 토론을 벌이며 학문적 발전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1707년 연합법에 의해 웨일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가 합쳐져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됩니다. 대영제국으로 불리게 된 거죠. 아일랜드는 1800년에 대영제국과 합쳐졌다가 1922년에 분리 독립을 해서 지금은 북아일랜드만 영국에 소속되어있고 나머지는 아일랜드 공화국이라는 별도의 나라로 남게 됩니다. 

대영제국이 된 영국은 유럽의 전쟁에 조금씩 발을 걸치며 개입하는 한편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전 세계 식민지 개척에 몰두합니다. 


아는 척 더하기 - 장희빈을 연기한 배우


조선시대 희대의 악녀로 손꼽히며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었기 때문일까요? 사극에서도 장희빈의 역할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맡았습니다.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이소연, 김태희,... 등등 수많은 여배우들이 장희빈을 연기했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장희빈을 연기한 배우는 1961년 영화 '장희빈'에서 김지미 배우입니다. 그리고 TV에서는 얼마 전에 오스카에서 여우 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배우가 1971년 MBC의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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