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넛지
러시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요?
미녀? 불곰? 추위? 아니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 석유? 보드카?
특히 요즘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이슈 때문에 뉴스에서도 많이 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러시아입니다.
국토도 넓고, 겨울의 혹독한 기후 때문에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정복하지 못했죠.
하지만 그 가혹한 제국 러시아를 점령한 한류가 있습니다.
바로 라면 '도시락'입니다.
지난 2021년 4월 8일(현지시각). 러시아 특허청이 팔도의 라면 브랜드 'Доширак(도시락)'을 225번째 저명상표로 등재했습니다.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인데요, 약 2년여간의 법정 다툼 끝에 얻어낸 성과이기도 합니다.
'Доширак(도시락)'은 러시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상품입니다. 시장 점유율도 6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죠. 팔도가 러시아 특허청에 저명상표 등록을 신청한 것은 2019년 6월입니다. 러시아에서 저명상표 등록을 받게 되면 '도시락'이 컵라면 외 상품에까지도 상표의 보호 범위가 확장됩니다. 별도 갱신 절차 없이 반영구적으로 등록이 유지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해외 기업 가운데 러시아 저명상표에 이름을 올린 곳은 아디다스와 샤넬, 펩시 등으로 많지 않을 정도로 외국 기업에 저명상표 허가를 내주는 것에는 인색합니다.
문제는 러시아 특허청이 '저명성'을 판단할 때 세계적 추세와 다른 독자적인 기준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처음 신청할 2019년에 러시아 특허청은 "도시락 상표가 유명한 것은 인정하나, '팔도'까지 유명해야 저명상표로 등록할 수 있다"며 등록을 거절했습니다. 조금은 어설픈 핑계인데, 저런 핑계를 극복해 2년 만에 얻어낸 쾌거라 할 수 있습니다.
팔도의 도시락은 1986년 4월 출시된 라면입니다.
1990년대 부산항에 정박한 러시아 선원들이 당시 러시아에서는 귀했던 생필품을 사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도 예전에 일본에 가면 생필품 같은 물건들을 사 오기도 했었죠. 그런데 러시아는 땅이 너무 넓어서 기차나 배를 오래 탈 경우가 많습니다. 이땐 둥근 용기보다는 사각형의 용기가 더 갖고 다니기에 더 편리합니다. 게다가 맛도 러시아 전통 수프와 비슷하니 사람들이 점점 많이 찾기 시작합니다. 보따리장수들에게 인기 끌면서 나중에는 러시아 정식으로 진출했고, 공식 첫 수출은 1994년에 21,000 상자입니다.
1997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사업소 열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죠. IMF에 구제금융을 받으며 모두가 힘들 때 러시아도 모라토리움을 선언했습니다. 러시아에 진출한 대부분의 나라는 이때 철수했지만 팔도는 매몰비용이 적어서(초기 투자비용이 다른 나라들보다 적었단 말)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고, 이 일을 계기로 팔도는 '의리'의 기업이라는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까지 얻게 됩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후 2005년에는 현지법인 '코야'를 만들면서 모스크바 인근의 라멘스코예시에 3만 평 부지의 공장도 준공합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리잔에 두 번째 현지 공장을 세웁니다.
일반 도시락 컵라면은 42 루블. 약 800원 정도가 되는데 봉지라면과 소용량은 더 저렴하다고 합니다. 지하철이 55 루블 (약 1000원)이니 물가 대비로 어느 정도인지 예상할 수 있겠네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포장과는 다르게 러시아에서는 포크가 포함되어 있어서 먹기에 더 편리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편의점에서 먹을 때는 젓가락을 무료로 제공하죠.
연간 판매량이 2016년 4억 3천만 개, 2017년 4억 8천만 개, 2018년 5억 2천만 개 (100억 루플. 2천억 원) 돌파했습니다. 2021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누적 판매량은 50억 개가 넘었습니다. 국내 판매량보다 7배 많은 수치입니다.
러시아에서는 라면을 먹을 때 보통 마요네즈를 섞어서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흔히 음식에 고추장을 섞어 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마요네즈가 러시아에서는 고추장 같은 역할을 해주는 양념이라 생각해도 될 듯합니다. 그래서 2012년에 마요네즈가 포함된 도시락 플러스를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마요네즈를 함께 먹는 문화로 인해 도시락 라면의 판매와 함께 오뚜기 마요네즈도 함께 판매량이 많아진 것은 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리온 초코파이도 판매량이 엄청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시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물에 밥을 말아먹지만 러시아에서는 국물에 빵을 찍어먹는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문화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세계 인스턴트 라면 협회(World Instant Noodles Association)가 전 세계 주요 라면 소비국 5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9년 한 해 동안 19억 1000만 개의 라면을 소비했다고 합니다. 19억 1000만 개의 라면 소비는 전체 조사 국가 중 12번째로 많은 양이며, 러시아는 유럽에서 최대 라면 소비국이라고 하네요. 하긴 저도 유럽은 라면보다는 파스타가 더 인기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판매량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고 느껴집니다.
2021년 1분기 누계(잠정) 농식품 수출액을 살펴보면 2020년 대비 13.7% 증가한 19억 8천1백만 달러라고 합니다. 1분기 기준으로 봤을 때 신선 농산물과 가공식품 수출이 역대 최고 실적입니다. 김치가 54.4% 증가했고, 포도는 49.7%, 딸기가 29.2%, 라면이 18.9% 증가했다고 합니다. (출처 : 농림축산식품부)
러시아에서의 국별 수입동향을 보면 한국 라면, 러시아 수입 시장에서 20% 이상 점유 중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2019년 기준 450만 달러 가량으로 한국은 중국에 이어 러시아 라면 수입 시장에서 2위입니다. 한국의 대 러시아 인스턴트 라면 수출액은 2012년 1000만 달러를 넘기도 했으나 점차 감소해 300만 달러 규모까지 축소됐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통계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는 팔도 도시락이 점유율 60%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중국에 이어 2위? 이건 또 무슨 말일 까요? 그 이유는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도시락 라면은 수입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니까 수입 시장 집계에 포함이 안된 거죠. 다른 라면 제품들인 삼양, 농심, 오뚜기 라면들에 대한 수치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2019년 기준. 러시아에서는 용기라면이 467억 루블, 봉지면이 43억 루블로 용기라면이 10배 이상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는 2019년 6월에는 노보시비르스크 중심부에 한국식 편의점 형태를 갖춘 Tiko가 개장했습니다. 이 유통업체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된 곳으로 주로 러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제품을 파는 곳입니다.
이 매장에서는 주로 한국산 가정용 화학제품 및 보디케어 제품, 라면, 스낵, 소스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의 편의점과 같은 테이블, 의자,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등 편의 시설이 구비되어 한국 라면을 구입 후 바로 먹을 수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음.
9월~12월 진행되는 가을학기 한국문화원 강좌에는 1천700명이, 원광학교 강좌에는 900명이 등록해 초·중·고급 과정의 한국어를 익히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원 강좌의 경우 코로나19 전파 전 오프라인 수업이 진행되던 2018년(약 1천300명)이나 2019년(약 1천600명) 보다 오히려 학생 수가 더 늘었다고 합니다.
위명재 한국문화원장께서 "한국어 강좌 온라인 신청은 개설 5분여 만에 마감될 정도로 수강생들의 관심이 높다"는 말씀을 하셨다니 확실히 인기가 좋은 듯합니다.
예전 MB정권 때 추진한 한식 세계화의 실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불고기 같이 그냥 우리 시각에서 외국인이 좋아할 것 같은 생각으로 아이템을 밀어붙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따로 있거든요.
외국인들은 감자탕, 삼겹살, 소주,... 이런 것들은 매우 좋아합니다. 제 주변의 외국인 중 미국과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늘 가장 먼저 찾았던 한국 음식이 삼겹살에 소주였습니다.
그리고 김과 라면의 인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합니다.
현실 인지력이 떨어지는 윗선의 지시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그대로 이행하는 꼰대 문화가 한식 세계화의 실패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