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있는 이야기
어머니의 거짓말은 때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죄가 제 자식의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이 땅의 어머니들은 기꺼이 지옥의 불길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곤 하죠. 수라나루터에 쏟아지는 빗줄기는 마치 오늘 벌어질 비극을 미리 알고 흐느끼는 통곡 소리 같습니다.
어둠을 뚫고 도망치던 도윤의 발이 진흙탕에 미끄러집니다. 뒤를 쫓던 횃불들이 순식간에 소년을 에워쌉니다. 빗물에 젖은 칼날이 번뜩이며 아이의 목을 겨눕니다.
“이놈, 드디어 찾았구나. 죽은 줄 알았던 왕실의 씨앗이 이런 누추한 곳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니.”
아이의 눈에 공포가 서립니다. 칼끝이 도윤의 여린 목살을 파고들려던 그 찰나, 숲속에서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정심이었습니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진흙바닥을 기어 나와 도윤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멈추시오! 내 아들... 내 아들을 죽이려거든 차라리 나를 먼저 베시오!”
정심은 품 안에서 해진 비단 뭉치 하나를 꺼내 던집니다. 빗물에 젖었음에도 황금색 봉황 문양이 선명하게 빛나는 왕실의 포대기였습니다. 사내들의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이것은 10년 전 사라진... 네놈이 이걸 어찌 가지고 있는 거냐!”
정심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합니다. 그 웃음에는 슬픔보다 더 깊은 한(恨)이 서려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아이를 살리기 위한, 생애 가장 처절한 연극을 시작합니다.
“가져본 적 없는 금붙이가 탐이 나서 그랬소! 10년 전 눈보라 치던 밤, 숲에 버려진 궤짝을 내가 먼저 발견했단 말이오. 그 안에 든 비단과 보석들이 탐이 나서... 나는 그 안의 진짜 아이를 내 손으로 물에 던져버렸소!”
도윤의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정심의 말은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가짜 진실을 뱉어냅니다.
“저 아이는... 저 아이는 내 배로 낳은 천한 자식이오! 그날 죽인 아이 대신 비단 포대기에 싸서 키우면, 언젠가 귀한 집 자식 노릇이라도 시켜 돈이라도 벌 줄 알았단 말이오! 저 멍청한 놈이 내 자식이 아니면 누구란 말이오!”
사내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눈앞의 아이는 분명 기품이 넘치지만, 정심의 손에 든 포대기와 그녀의 처절한 자백은 거부할 수 없는 증거처럼 보입니다. 정심은 도윤의 뺨을 거칠게 내리칩니다.
“이 미련한 놈아! 왜 함부로 입을 놀려 이 사단을 만드느냐! 네 에미를 죽일 셈이냐!”
도윤의 마음은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난생처음 겪는 매질보다, 지금 정심의 말은 나랏님의 물건을 함부로 빼돌리고, 왕자의 시신을 유기했다는 말입니다. 대역죄입니다. 국법에 따라 극형을 피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걸 알기에 정심의 말은 더욱 도윤의 가슴을 난도질합니다. 지금 어머니의 손바닥이 떨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자기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 스스로를 희생하려고 자신을 때리는 그 손이 세상 그 무엇보다 뜨겁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결국 관군들이 정심을 에워쌉니다. 왕실의 물건을 훔치고 귀한 핏줄을 해쳤다는 대역죄.
정심은 스스로 씌운 그 멍에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포승줄이 그녀의 여린 몸을 파고 듭니다.
하늘도 이런 일이 슬픈지 비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저들이 있던 땅은 이내 진흙탕으로 바뀝니다. 그
리고 진흙탕 위로 정심이 끌려갑니다.
도윤은 빗속에서 무릎을 꿇은 채,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부르지 못했던,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 있던 그 이름이 마침내 터져 나옵니다.
“어머니! 어머니! 안 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심은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니, 돌아볼 수 없습니다.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 지독한 거짓말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비는 멈출 줄 모르고 쏟아집니다. 나루터의 과부 한정심은 그렇게 유괴범이자 살인자가 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오직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차가운 옥사로 끌려가는 정심의 얼굴 위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흐릅니다. 과연 이 처절한 거짓말은 도윤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요? 옥사 바깥, 최판석의 서늘한 웃음소리가 다시금 나루터를 가로지릅니다.
[삽입된 노래는 유튜브 '가락야담'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Garak_Yad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