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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Dec 10. 2016

책과 음악과 옷차림

일상 속 행복의 3박자

아침 출근 길,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 한권을 손에 들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출근 길 지하철에서 편하게 책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빽빽하게 겹쳐 있다시피 한 사람들 속에서 책 한 권 가슴 높이로 올려들 공간이 좀처럼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금요일이서인지 평소보다 사람도 적을 뿐더러 주위엔 책을 읽는 사람이 여럿 있기까지 하네요. 반가운 마음에 그 속에서 저도 흐뭇하게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하루키의 <잡문집>이라는, 여기저기에 하루키가 기고했거나 발표하지 않은 잡문을 모아 만든 책입니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왔던 책들을 하나하나 순조롭게 읽어치우며 작은 성취감을 느끼던 차, 아껴두었다 가장 마지막에 손에 잡은 책이지요. 뒤늦게 하루키라는 사람의 산문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있지만 책 자체가 참 마음에 듭니다. 양장도 아닌 페이퍼백도 아닌 형태로 적당한 캐쥬얼함을 갖추었고, '잡문집'이라는 제목도 어떤 글쟁이가 성실하면서도 자유롭게 써온 글의 모음집이라는 인상을 주지요. 적당히 두둑한 책의 두께도, 종이 한 장의 무게와 손끝에 느껴지는 질감도 딱 좋습니다.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나희경의 보사노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가끔 지니 뮤직에서 추천해준 오늘의 선곡 속에서 좋은 음악을 건져올릴 때가 있는데 이 분도 그렇게 알게 된 음악가라지요. 원래도 보사노바 리듬을 좋아하는데, <사랑하오> 라는 노래를 듣다가 그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의 세련됨과 애절함에 반해버렸습니다. 나희경의 노래 모두를 플레이 리스트에 걸어놓고 음악 속에 책을 읽으니 저에게서도 오랜 시간 잠자고 있던 영감 같은 것이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회사까지는 다섯 정거장. 읽던 책을 접고 광화문 역에서 내려 계단을 향해 걸어가면서 문득 오늘의 옷차림이 매우 가볍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옷차림에 자유로운 회사이긴 하지만, 오늘은 두툼한 점퍼에 청바지, 그리고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둘러멘 더욱 가볍고 편안한 옷차림이에요. 대학생 때 한 손에 책을 안은 채 주로 입고 다니던 그런 옷차림 말이지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라는 영화를 보면서 매 장면 패션쇼를 하는 듯한 앤 해서웨이의 화려한 옷이 너무나 예뻤지만,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간 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홀가분하게 웃던 그 얼굴과 옷차림을 저는 훨씬 더 좋아했으니까요.


책과 음악, 그리고 편안한 옷차림.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3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나는 나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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