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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Dec 25. 2016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

나의 친구에게

그녀는 대학원 때 만난, 10년이 조금 안된 저의 친구입니다. 제가 그녀를 좋아하는 정도는.. 그녀같은 사람을 시누이로 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녀의 오빠와 결혼을 하고 싶을 정도였지요. 비록 올케 - 시누이 관계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녀를 알게 된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이 변함 없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녀를 좋아하는 건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좋아해서 그녀가 일하던 조교 사무실에 뻔질나게 드나들곤 했지요.

그녀는 섬섬옥수를 가졌습니다. 살결이 희고 보드라우며 적당한 살집이 있는 그녀의 손은 언제 보아도 덥석 잡고픈 충동이 들게 만드는 '보암직도 하고 잡음직도 한' 손입니다.

그녀는 무던합니다. 무슨 일에 호들갑을 떠는 경우도 없고 커다란 리액션을 하지도 않습니다. 담담하게 상대의 말과 행동을 받아줄 뿐이지요. 말수도 많지 않아 말을 하면 훨씬 많이 들어주는 쪽은 언제나 그녀인데, 그녀 특유의 편안함으로 본인이 갖고 있는 상식에 의존해 상대에게 시의적절한 조언을 해주곤 합니다. 조금 더 친밀한 자리에서는 하나씩 뭉툭하게 풀려나오는 그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억지로 애쓰지 않고 물 흐르듯 상황을 바라보는 그녀의 삶의 이야기들을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그녀를 만날 땐 언제나 편안함을 느끼고 그녀를 대하는 마음은 부담스럽지가 않지요.


그녀는 입이 무겁습니다. 여럿이 같이 모인 자리에서 혹시 섣불리 이야기를 꺼낸 것 같으면 따로 연락이 오곤 합니다. "아까 누구는 모르는 눈치던데 내가 실수한 건 아니지?" 별 상관도 없거니와, 그렇게 타인의 이야기를 조심히 다루어주는 그녀에겐 앞으로도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본인의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도 쉬이 옮기지 않는 그녀는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땐 치매 투병 중인 할머니께 가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지요. (반전은 그때 잠시 할머니의 정신이 돌아오신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녀는 배려심이 많습니다. 친구들끼리 모임을 가질 때, 멀리서 와야 하는 사람이 있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친구가 많이 불편하지 않도록 앞장서 말을 꺼내는 것은 그녀의 몫입니다. 우르르 약속을 잡다가 간과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말이지요.


그녀는 적절한 유머를 가졌습니다. 그녀의 유머는 작심하고 빵빵 터뜨리는 유머가 아닌, 무심한 듯 내뱉는 말로 사람을 웃게 만드는 그런 유머입니다. 이런 유머 스타일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더욱 빛을 발해,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발표를 할 때 아무렇지 않게 개그를 치는 뚝심을 발휘하기도 했다지요.


그녀는 따뜻합니다. 물론 그녀의 따뜻함은 보란듯이 손을 잡아주고 포근하게 껴안아주는 그런 종류의 따뜻함은 아닙니다. 때마다 잊지 않고 챙겨주는 마음이 은근한 그런 따뜻함이지요. 엄마가 수술을 하셨을 때도, 지난 시간 동안 연말이면 잊지 않고 보내오는 그녀의 카드도, 일이 있을 땐 일찌감치 가서 자리를 지켜주는 마음도 그녀의 따뜻함을 증명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저는 아픈 허리를 위한 복대를 사놓고 제때 주지도 못하고 우리집에 놀리고 있네요.


얼마 전 가진 소박한 연말 송년회 자리에 그녀는 별거 아니라며 한 명 한 명의 선물을 사들고 왔습니다. 건네준 편지에는 휴직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제 좀더 자주 보자는 이야기가 적혀져 있었네요. 그래요. 좀더 자주 볼 겁니다. 이 친구를 만나러 대학로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편안하고 또 기대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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